“엄마 아빠는 환경파괴 주범”이라는 아이, 그래 네 말이 맞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만 6세가 됐다. 우리 아이는 지금 유치원에 다닌다. 작년까진 유치원에서 놀기만 했던 것 같은데, 요즘 아이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를 유치원에서 배워오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환경’, ‘기후위기’ 이슈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 우리 부부도 아이가 유치원에서 듣고 말하는 내용에 집중하는데, 최근 그것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만 6세가 됐다. 우리 아이는 지금 유치원에 다닌다. 작년까진 유치원에서 놀기만 했던 것 같은데, 요즘 아이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를 유치원에서 배워오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환경’, ‘기후위기’ 이슈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 우리 부부도 아이가 유치원에서 듣고 말하는 내용에 집중하는데, 최근 그것
나는 손으로 하는 모든 것을 좋아했다. 물론, 지금도 좋아한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고, 핀셋을 사용하여 섬세하게 미니어처 집을 꾸미는 일도 좋아했다. 레고로 피겨를 만드는 것도 좋아했다. 십자수, 뜨개질, 코바늘뜨기 등 손으로 할 수 있는 온갖 것들을 했다. ‘DIY’라고 적힌 모든 것들을 수행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내가 대학원 시절 가진 취미
지난 여름, 코로나가 슬며시 잠잠해지는 듯했다. 내가 강의를 맡은 학교에선 2학기엔 온라인 수업 대신 대면 수업을 하겠다고 알려왔다. 아이가 다니던 유치원도 예정대로 개학한다고 했다. 휴원까지 해야 하는 거대한 집단 감염이 없어서, 드디어 많은 사람들이 드디어 코로나에 적응하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상황이 무섭게 급변했다. 그 시국에 집회가
육아 동지가 3주간 사라졌다. 7일 중 5일은 타 지역 출장지로 출근을 하고 주말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그 일정은 3주간 지속됐다. 즉, 우리는 의도하지 않게 주말부부를 하게 됐다. 다시 말해 프리랜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제 주중 돌봄노동에 나를 갈아넣어야 했다. 사실 나는 그간 흔히 말하는 독박육아, 전일제 돌봄노동에 투입이 된 적이 거의
감염병의 시대다. 치료제도 백신도 없이 그저 버티며 살아남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다. 이전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우리 집엔 마스크가 많다. 우리 부부가 실험 노동자인 덕이다. 기침할 때 옷소매로 가리라는 것 또한 감염병 유행 이전부터 아이에게 일러두었다. 아이는 손도 잘 씻는다. 아이 맡길 곳이 유치원뿐인 우리는 최선을 다해, 버티고 있다. 코로나 덕에
누군가 나에게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좋았던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대학원생 때라고 말할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더럽게 힘들었던’ 시절이 언제냐고 묻는다면, 그 또한 주저하지 않고 대학원생 시절이라고 말할 것이다. 엄마의 삶과 학생의 삶을 비교하자면, 학생으로 살던 시절이 세상에서 가장 좋았던 시절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그런데 왜
바야흐로…백신과 치료제 없는, 감염증과 전쟁을 벌이는 시절이 와버렸다. ‘진화’라는 ‘만랩’ 능력치를 보유하여 인간 ‘유저’를 좌절시켜온 코로나바이러스는 신종플루와 메르스를 거쳐 이제 ‘코로나19’라는 ‘초사이언’이 되었다. 항바이러스를 연구하는 이들이 혹여라도 심심할까, 혹은 매너리즘에라도 빠지지 않을까 걱정한 신의 배려인 것인지, 대학원생들에게 큰 좌절
나는 어쩌다 보니 시민단체 활동가로도 살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엄마도, 과학자도, 내가 다 ‘해 먹으려’ 결심하게 된 계기, 바로, ‘정치하는 엄마들’의 ‘하마’로 살게 된 ‘썰’을 풀어보고자 한다. ◇ 나를 갈아 넣으며 일했는데, 회사의 평가는 가혹했다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 나는 아이 낳은 후 기업에서 직업 과학자로 삶을 시작했다. 좋은 시절이었다. 나
나는 집안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종일 “엄마!”를 외쳐대는 아이 돌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지, 그 외 요리를 하거나, 빨래하거나, 청소하는 일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남편 역시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타이밍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오히려 우리는 가사노동이 아이 돌보는 일보다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
퇴직 ‘시즌 2’가 도래했다. 이번엔 지난번과 달리 나름 할 일이 많았다. 막연한 내 생각을 현실로 옮기기 위한 작업도 해야 했고, 이 사업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수익구조도 생각해봐야 했고, 밀린 글도 써야 했고, 사업을 위해서 나름 공부해보고 싶은 것들도 있었고, 그리고…. 아이랑 놀고 싶었다. 아직 아이가 엄마를 찾을 때, 아이와 하고 싶은 일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회사를 망치는 ‘빌런(창작물에서 악당이나 악역을 뜻함)’ 꼭 한 명씩은 만난다. 이 빌런은 질량 보존의 법칙에 따라, 기존 빌런이 없어지면 새로운 빌런이 들어오고, 아니면 내부에서 갑자기 신종 빌런이 탄생하기도 한다. 우리 회사에선 누가 빌런이었냐. 바로 대표였다. 직원들에게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안겨주고, 대표를 ‘없앨’ 방법까지 고
신랑이 먼저 재취업에 성공하고, 나도 열심히 구직에 나섰다. 면접도 열심히 봤다. ‘자체’로 시행한 육아휴직 덕에 땡그리와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에, 다음 회사를 선택하고 지원하는 일에 무척 신중히 임했다. 밤마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나의 ‘이직 조건’에 대해 깊은 토론을 나눴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연봉을 택할게.
결혼 초기. 명절이었던가, 가족 행사가 있었던가…. 아무튼 정확한 건 기억나지 않지만, 시댁 어른들을 만난 날이 있었다. 그날 시부모님이 나를 ‘공부하는 며느리’라고 소개하며, 박사과정 중임을 밝히니 많은 어른들이 내게 공통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태어날 애는 머리가 좋겠네.” ‘응? 뭐지?’ 싶었지만, 어른들에게 그런 감정을 티 내면 예의가 아니란
백수가 됐다. 심지어 남편하고 ‘세트’로…. 그래도, 그간 모은 적금도 있었고, 구직급여도 받을 수 있었으며, 퇴직금도 있으니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 계산을 끝낸 뒤 우리는 ‘앞으로 뭘 할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은 이력서를 뿌리면서 놀기로 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노는 것’을 우리의 새로운 목표로 설정했다. 우리는 그동안
우울한 면접 이후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쳤다. 아니, 바닥을 치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가 관을 짜고 누워 있었다. 바야흐로 혼돈의 시기가 찾아온 것이다. 박사 이후 반짝반짝한 삶을 꿈꾼 것은 아니지만, 성별로 까이고 애엄마라 까일 것이라고 사실 예상을 못했었기에 데미지가 컸다. 사실 내가 박사과정에 진학한 것에는 상당히 많은 이유들이 존재했다. 토익 보기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기, 나는 한 번도 내가 여자이기에 불리하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대학원생 때만큼 평등을 누렸던 시절이 내게는 없었던 것 같다. 아무도 내가 여자라고 굳이 지나치게 배려하지 않았고, 왜 “여자가 화장도 안 하고, 치마도 안 입냐”라고 묻지 않았다. 그랬기에, 임신부 시절 ‘쭈글이’로 살았을지언정 내가 단지 ‘여자
복직하고 3개월이 흘렀다. 시간을 압박하는 칼퇴근 덕에 실험 스킬은 나날이 발전했다. 연차도 오래되어 이제 논문세미나쯤은 3~4일 전에 발표자료를 만듦과 동시에 쭉쭉 읽어나갈 정도가 됐다. 역시 집중과 선택의 힘은 위대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내가 스스로 ‘만렙’이구나 라고 깨달았을 때 지도 박사님도 내게 ‘하산’을 명하셨다. 드디어 내게 ‘졸업’
대학원생 엄마로 사는 것은 그럭저럭해볼 만한 일이었다. 왜냐. 아이가 어렸다. 내가 복직하고 졸업을 향해 달리던 시기는 아직 아이가 막 100일이 지났을 시기였다. 먹고-자고-싸고의 패턴이 일정했다. 나의 ‘클라이언트’인 우리 땡그리의 요구 사항도 무척 단순했다. 밥 아니면 잠, 아니면 기저귀였다. 그리고 아이가 늘 누워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아이가
출산휴가 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매일 집에만 갇혀 쪽잠 자며 아이를 돌봤다. 그런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이에 대한 사랑도 커졌지만 그만큼 짜증이 솟구치던 시기. 아이를 사랑하긴 하지만 아이가 울 때 모른 척 귀 틀어막고 잠자고 싶다는 인간 본연의 욕구가 단전에서 올라오던 시기. 하지만 결국 한 손엔 아이를 안고 한 손으로 아이 먹을 분유를 타던 그 시기.
우리 땡그리가 태어났다. 글로 배운 출산의 과정과는 달랐다. 난산을 겪어가며 힘들게 아이를 낳았다. 진통은 왔는데 자궁경부가 열리지 않아 부득이하게 촉진제(분만을 유도하기 위한 약물)를 맞았다. 그런데도 진통은 오고 경부는 열리지 않았다. 심지어 양수가 새고. 더 이상한 건 내 링거도 샜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링거 바늘이 불량이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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