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과 미국 유학 사이, 이 꿈의 끝을 잡고 싶었다 
가족과 미국 유학 사이, 이 꿈의 끝을 잡고 싶었다 
  • 칼럼니스트 윤정인
  • 승인 2020.05.2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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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생존기] 나는 마리 퀴리가 되고 싶었고, 내 남편은 피에르 퀴리이길 바랐다

복직하고 3개월이 흘렀다. 시간을 압박하는 칼퇴근 덕에 실험 스킬은 나날이 발전했다. 연차도 오래되어 이제 논문세미나쯤은 3~4일 전에 발표자료를 만듦과 동시에 쭉쭉 읽어나갈 정도가 됐다. 역시 집중과 선택의 힘은 위대하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내가 스스로 ‘만렙’이구나 라고 깨달았을 때 지도 박사님도 내게 ‘하산’을 명하셨다. 

드디어 내게 ‘졸업’이 다가온 것이다. 졸업 준비 요건 역시 미리 채웠기에 당당하게 학교에 신청서를 냈다.

하지만 논문 신청을 할 때 결정할 사항이 있었다. 학위논문을 국문으로 할지 영문으로 할지 결정해야 했는데, 졸업을 앞둔 내겐 아주 큰 고민이었다. 일주일간 고민한 끝에 영문으로 결정했다. 원어민도 아니면서 영문으로 학위논문을 쓰겠다는 ‘건방진’ 결정을 내린 이유? 내가 ‘포닥’을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공부하기 싫어서 포닥 안 한다"고… 아니, 사실 정말 하고 싶었다  

"왜 포닥 안 해?"라는 주위의 물음에 "공부하기 싫어서"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정말 포닥 하고 싶었다. 포닥을 하려면 미국에 가야만했고, 정말 가고 싶었다. 그런데 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 ⓒpexels
"왜 포닥 안 해?"라는 주위의 물음에 "공부하기 싫어서"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정말 포닥 하고 싶었다. 포닥을 하려면 미국에 가야만했고, 정말 가고 싶었다. 그런데 할 수 없는 이유가 너무 많았다. ⓒpexels

이공계에서 대학생·대학원생이 된 뒤 학문의 길을 걷거나, 정부출연연구소(정출연)에 갈 때 필수 아닌 필수 코스가 있다. 바로 ‘해외 포닥(박사 후 연수 과정)’이다. 특히나 신약, 유기합성분야는 미국이나 유럽에서 포닥 정도는 하고 들어와야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포닥은 매우 중요한 경력이다.

이전 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나는 사실 정출연에 자리를 잡고 싶었다. 학교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저 학위과정 때처럼 정출연에서 지속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지내고 싶었다. 나의 어린 시절 꿈은 연구소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포닥을 한다면 미국에 꼭 가고 싶었다. 미국에 가서 국립보건연구원이나 스크립스연구소에서 포닥을 해보고 싶었다. 같은 연구실에 이곳에서 포닥하고 오신 박사님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나도 그곳에 가고 싶다는 꿈을 꿨더랬다. 석사를 시작한 게 2009년이었으니까, 그때 석사 과정 시작과 동시에 박사를 생각했고, 당연히 포닥까지 마친 후 연구원의 삶을 꿈꿔온 내게 포닥은 2009년부터 2014년 겨울까지 이어져 온 당연한 목표였다. 

그런데 그 계획을 접었다. 나는 포닥을 포기하고, 정출연 연구원이라는 꿈도 함께 포기했다. 주변에서 “왜 포닥 안 해?”라고 물었을 때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정말 가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내가 포닥을 가기에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 엄마가 되고 나니, 인생 계획에 '나'만 있다고 될 것이 아니었다 

제일 먼저 아이 문제가 있었고, 그다음은 남편, 그리고 시부모님까지 세 가지의 문제가 얽혀 있었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남편도 아직 모르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고민이 많았지만, 결혼생활도 곧 10년이 다 되어가고, 이 정도는 남편이 이제 ‘그러려니’하고 넘겨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글을 써 보겠다. 

내가 포닥을 준비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이는 빠르면 돌 직후, 늦어도 두 돌 즈음엔 외국에서 생활하게 된다. 문제는 내가 포닥을 나가려면 미리 3~6개월 정도 혼자 나가서 가족을 데리고 올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동안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었다.

아이가 없었을 때만 하더라도 신랑은 “내가 다 할게”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아이가 생기고 내가 슬그머니 이 문제를 지나가는 말로 물어보니 기겁을 한다. 자기 혼자서는 아이를 볼 수 없다고.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이를 데리고 미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만 해도 정말 포닥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기 때문에 혼자 갓난아기를 둘러업고서라도 포닥을 가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게다가 신랑은 영어 울렁증이 심했다. 그리고 낯선 환경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향의 사람이다. 그런 사람에게 나와 같이 새로운 곳에서 살자고 하는 게 좀 미안하기도 했다. 결혼 전엔 ‘포닥’ 남편으로 살겠다고 했지만, 살아보니 이 남자가 정말 그렇게 살긴 좀 힘들어 보여 함께 가는 것 자체를 포기한 부분도 있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성격의 남편과 함께 가면 아마 힘든 일이 더 많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신랑에게 “당신은 남고 나 혼자 1년만 다녀오면 안 될까?”라고 물어봤지만 거절당했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 이 이야기를 우리 신랑은 절대 기억 못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 나는 포닥을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다. 

그날도 신랑에게 미끼를 툭툭 던지고 있었다.

“나 1년만 혼자 다녀오면 안 돼? 아기 데리고 나 혼자 다녀올게. 아니면 당신이 땡그리랑 6개월만 기다렸다가 들어와. 내가 거기서 완전히 자리를 잡게 노력해볼게.”

내 말을 가만히 듣던 신랑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떡해?”

신랑의 말에 “그걸 왜 나한테 물어?”라고 하고 싶었으나 더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신랑의 말이 내게 쐐기를 박았다.

“왜 당신은 인생에 내가 없어? 당신의 인생엔 항상 당신만 있고 나와 아기는 없어?” 

남편의 그 말은 내가 인생 계획을 수정하게 된 첫 번째 계기가 됐다. 남편의 말이 맞다. 내겐 가족이 있다. 인생을 계획할 때 연구자로서의 나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가족도 함께 고려해야 했다. 포닥은 엄청난 기회고, 스릴 넘치는 모험이었겠지만, 단순히 나의 가족이란 이유로 함께 가야 하는 가족들에게는 녹록지 않은 삶의 시작이 될 수도 있었다.

낯선 나라, 낯선 환경, 낯선 언어…. 나는 연구라는 목표로 그 두려움을 극복하면 됐겠지만, 그건 내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 뿐, 내 가족에겐 극복하기 어려운 두려움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인생의 계획을 전면 수정했다. 연구소장이 되겠다는 꿈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포닥을 포기하고 정출연에 대한 미련도 접었다.

◇ 내가 조금 더 용기를 냈다면 나는 ‘마리 퀴리’가 될 수 있었을까?

포닥 포기 후 인생의 계획을 수정해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그리고 그 아쉬움의 끝에는 '내게 아이가 없었더라면', '내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pexels
포닥 포기 후 인생의 계획을 수정해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그리고 그 아쉬움의 끝에는 '내게 아이가 없었더라면', '내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pexels

나는 너무 쉽게 생각했다.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포닥 전에 가족이 있으면 나가서 외롭지 않을 테니 결혼을 했고, 아이가 생기는 것도 “뭐 그럴 수 있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선배들은 박사과정 때 결혼을 했고, 너무 자연스럽게 아이가 있었고, 그 아이와 아내와 함께 유학을 가거나 혹은 포닥을 갔으니까. 나 역시 그런 순서를 밟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선배들의 모습만 떠올렸지, 함께한 배우자들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았다. 함께 공부하는 처지가 아니라면, 집에서 출근한 남편만 기다려야 했을 선배의 배우자들이 어떤 삶을 보냈을지 고민해보지 않았다. 그 선배들은 남자고 나는 여자니, 만약 내가 포닥을 갔다면, 남편이 그 선배들의 와이프처럼 집에서 나를 기다려야 할 것이고,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아이를 교육기관에 보내고 데려오는 생활을 해야 했을 것이다. 

남편은 심지어 장남이다. 부모님 세대 대부분 그렇듯, 우리 시부모님도 노후준비가 완벽히 된 분들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부모님을 부양해야 할 날이 올 것이고, 나 역시 그걸 모르고 결혼한 게 아니었다. 외국에서 자리 잡고 싶어 하는 나의 삶이 남편에겐 부모를 버리란 뉘앙스로 들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복합적인 이유로 나는 포닥을 포기했다. 사실 늘 아쉽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문화에서 새로운 연구를 배우지 못한 아쉬움이 크다. 그리고 그 아쉬움의 끝은 ‘나에게 아이가 없었더라면’, ‘내가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이란 생각으로 이어질 때 있다. 

포닥 포기를 결심한 날, 나는 영문으로 학위논문을 쓰기로 했다. 아직 화학 분야에선 영어가 주된 언어로 쓰인다. 대부분의 용어가 모두 영어로 되어있고, 전문가들도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를 마쳤다. 토익 성적은 안 봐도, 이 연구원이 영어로 논문을 읽을 수 있는지, 쓸 수 있는지 관심을 많이 둔다. 그래서 나는 논문을 영어로 썼다. ‘나는 외국에서 포닥을 하진 않았지만, 영어로 학위논문을 쓴 사람이다’라는 커리어로 승화시켰다. 그 덕에 취업은 곧잘 했다.

나는 마리 퀴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내 배우자는 피에르 퀴리가 되길 꿈꿨다. 그러나 그것은 그냥 꿈으로 두어야 할 것 같다. 아이를 키우면서 실험에 올인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으므로 나는 마리 퀴리가 될 수 없었고, 내 남편은, 와이프를 위해 실험실까지 차려준 피에르 퀴리같은 남편이 될 수 없었다(뒷바라지의 개념은 서로 다를 수 있다).

어디선가 포닥을 고민하는 이가 있다면, 혼자 몸이라면 가길 추천한다. 두런두런 들어보자면 포닥은 결혼과 비슷해서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고 한다. 그러니 그냥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 그런데 아이 문제만으로 포기하진 않았으면 한다. 포닥의 삶과 엄마의 삶은 경쟁 선에 놓인 삶이 아니다. 이 두 삶은 충분히 공존 가능한 삶이며, 그 공존을 위해 할 방법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나처럼 속마음을 숨기고, 지레 겁먹고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 나는 용기가 없었다. 한 번도 신랑에게 정면으로 물어본 적이 없었다. 그저 툭툭 나오는 신랑의 이야기를 취합해 혼자 데이터화하고, 분석해서 결론을 내린 것뿐이다. 그러니 나처럼 용기없는 행동을 하지 않길 바란다. 

아까 나는 내 남편이 피에르 퀴리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지만, 사실 우리 신랑은 어쩌면 피에르 퀴리가 되고 싶었을 수도 있고, 당신의 배우자 역시 피에르 퀴리를 닮고 싶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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