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 뽑는 면접, 왜 나한텐 '애는 누가 보냐고' 물어볼까
'과학자' 뽑는 면접, 왜 나한텐 '애는 누가 보냐고' 물어볼까
  • 칼럼니스트 윤정인
  • 승인 2020.05.29 0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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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과학자 생존기] 그땐, 결혼하고 아이있는 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기, 나는 한 번도 내가 여자이기에 불리하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대학원생 때만큼 평등을 누렸던 시절이 내게는 없었던 것 같다. 아무도 내가 여자라고 굳이 지나치게 배려하지 않았고, 왜 “여자가 화장도 안 하고, 치마도 안 입냐”라고 묻지 않았다.

그랬기에, 임신부 시절 ‘쭈글이’로 살았을지언정 내가 단지 ‘여자’이기 때문에 과학자로 사는 삶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취업이 어려울진 몰라도, 아주 큰 차별이 있을 것이란 예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주 큰 ‘건방’이었다. 

◇ 취업 어려운 줄은 알았어도, ‘아이 있는 기혼 여성’이라 안 될 줄은 몰랐다 

박사 마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내가 '아이 있는 기혼 여성'이라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베이비뉴스
박사 마치고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 내가 '아이 있는 기혼 여성'이라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베이비뉴스

박사까지 마치면 취업이 잘 될 것이란 오해를 참 많이 받는다. 그런데 그건 사실과 다르다.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어서 취업이 잘되는 것이 아니라, 피라미드 정점에 있기에 이를 필요로 하는 직업군이 적다. 도리어 취업은 석사> 학사> 박사 순으로 잘 된다.

석사 연구직은 ‘테크니션’이라는 이름으로, 학사 연구원은 ‘공정팀(=생산) 연구원’으로 찾는 곳이 많지만, 굳이 세세하게 공부하여 머리만 굵어진 박사급 연구원을 많이 반기진 않는다. 그리고 전공 분야가 좁아져서 맞는 직군을 찾기도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 박사급은 이러한 이유로 학교에 남거나 공공기관을 희망한다. 회사보단 전공 매칭이 더 쉽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취업을 걱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나의 성별이 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생각은 안 했다. 어차피 박사를 마친 처지에서 누구에게나 취업 문은 좁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취업시장에 나가서야 내가 ‘여성’ 과학자란 사실을 마주해야 했고, 심지어 ‘기혼 여성’ 과학자라는 사실을 확인받아야 했으며,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 과학자는 불편한 존재란 사실 또한 알게 됐다. 

적어도 면접장에서 나는 상당히 결함이 있는 존재였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내가 처음 취업전선에 뛰어들었을 때 겪은 일이며, 현재 나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일임을 미리 밝혀둔다. 고구마 답답 주의! 

졸업이 확정되고 나는 미친 듯이 이력서를 뿌려댔다. 석사 이상 학력, 유기합성 전공이라 적힌 회사엔 무조건 보냈다. 매일 한 개의 회사에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내고 기도했다. 하나만 걸리면 평생직장으로 성실히 다니겠다고(평생직장은 무슨!). 주변 박사님들도 나의 취업에 도움을 주기 위해 지인 찬스도 많이 활용해주셨다. 나는 비빌 언덕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디든 가서 비비적거렸다. 

어느 날, 운 좋게 대기업 공채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인적성시험을 봤는데 결과는 탈락. 졸업논문 준비하느라 시험 준비를 못 하기도 했고, 나는 그 회사가 원하던 인재상이 아닌가 보다 하고, 첫 번째 회사는 그렇게 ‘빠이빠이’ 했다. 억울함이 조금도 없는 탈락이었다. 

나의 서류를 통과 시켜 준 두 번째 회사는 새롭게 만들어진 어떤 연구소였다. 그때 내가 몸담고 있던 연구소 박사님들이 이미 많이 진출해계신 곳이었고, 내 전공과 완벽히 매칭됐기에 정말 가고 싶었다. 그래서 두 번이나 지원했고 박사님들의 추천서까지 받아 공개 면접, 실무자 면접, 이사장 면접까지 봤다. 그런데 그 면접… 이상했다.

◇ 애가 있어서, 남편 직장 멀어서, 부담스러워서 날 못 뽑는다고?

"공부를 일찍 마쳤네? 아, 군대를 안 가니…. 애도 있네? 여기 붙으면 애는 누가 키워요?" 이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었다니. ⓒ베이비뉴스
"공부를 일찍 마쳤네? 아, 군대를 안 가니…. 애도 있네? 여기 붙으면 애는 누가 키워요?" 이런 소리를 듣고 가만히 있었다니. ⓒ베이비뉴스

공개 면접은 전공 발표였다. 이건 연구직에서 자주 있는 일이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준비해 면접을 본 뒤 돌아왔다. 박사님들을 통해 들은 결과는 괜찮았다고. 내가 말실수를 하나 했는데, 그런 것 치곤 잘 넘어간 것 같아서 다음 면접에서 꼭 만회하리라 다짐했다. 그다음 면접도 통과해 이사장 면접까지 가게 됐다. 이때부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을 보는데 질문이 묘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내 나이를 걸고넘어졌다. 

“어이구, 선임이나 책임급으로 오기엔 너무 어리네. 박사를 빨리 했나 봐?”

“네, 중간에 휴학 없이 쭉 석박사를 마쳤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석사 2년, 박사는 4년 반을 했는데 제가 또 빠른년생이라 이른 나이에 공부를 마치게 됐습니다.”

“아…. 군대에 안 가서 그렇구나. 남자는 군대를 다녀오니까 휴학 안 하고 공부를 마쳐도 서른이 넘는데, 윤정인 씨는 군대에 안 가니 이른 나이에 공부를 마쳤구먼.”

“…….”

“아이도 있네? 여기 오면 애는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제가 직접 키울 생각입니다. 이모도 도와주시기로 하셨고요.”

“아이가 있어서 연구하기 힘들겠네.”

“…….”

‘내가 스물아홉 살에 박사 하는데 돈이라도 보태줬습니까! 여기서 군대 얘기가 왜 나옵니까! 그리고 부모가 제 자식 키우는 게 당연하지! 왜 내 연구는 안 궁금해하고 내 애가 몇 살인지만 묻는 겁니까!!!’

라고 말하고 뛰쳐나갔어야 했는데…. 취업준비생 신분이었던 나는 그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 자리를 지켰다. 사실 실무자 면접에서도 조짐이 이상했다. 실무자 면접에선 면접관들이 나를 상당히 안쓰럽게 바라보며, 아이는 누가 키우며, 누가 육아를 도와줄 수 있으며, 남편의 직업은 무엇인지를 많이 궁금해했다. 그리고 나이가 어려서 책임으로 뽑을 수 없겠다는 말도 들었다. 언제부터 연구직을 나이순으로 뽑았다고!

왜 다들 내 연구에는 관심이 없을까, 마음이 참 복잡했다. 열심히 연구했고, 면접 보는 연구소에 대한 질문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아무도 나한테 관심이 없었다. 내 전공, 내가 잘하는 실험 테크닉, 아무도 물어보는 사람이 없었다. 그저 애가 몇 살인지, 육아를 대신할 사람이 있는지, 남편은 뭐 하는 사람인지만 물었다. 

이 연구소에 너무나도 들어오고 싶음을 어필하기 위해 “주말부부로 지낼 계획도 하고 있다. 나는 이 연구소에 합격하게 되면 이쪽으로 이사하려고 한다”고까지 말했는데, 오히려 이 각오를 밝힌 것이 나의 탈락의 빌미가 됐다. 면접 결과는 다음 날 우리 연구소 박사님들을 통해 알게 됐는데, “윤정인 씨가 합격하면 주말부부를 한다는데, 이러면 우리가 너무 부담스럽다”라며 나를 깠다고…. 차라리 다른 이유였다면 받아들였을 텐데…. 날 추천해준 박사님들이 그게 말이 되냐고 항의해주셨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 세상이 이상하단 생각을 못 하고… 아이와 남편만 지독하게 원망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아이와 남편은 죄가 없다. 그땐 몰랐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베이비뉴스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아이와 남편은 죄가 없다. 그땐 몰랐지만, 적어도 이제는 안다. ⓒ베이비뉴스

만약 내가, 저들이 면접에서 그렇게 운운한 30대 남자였다면 과연 저런 이유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을까? 이 면접으로 나는 ‘공공기관엔 절대로 가지 않겠다’라고 결심하게 됐다. 저런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다면 ‘가지 않겠다’가 아니라 애초에 난 뽑히지도 않을 것이다. 이때의 경험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면접에서 여자 운운하고, 군대 운운하고, 애 엄마 운운하고, 둘째 계획 있냐는 질문에서 나오는 무례함을 온몸으로 받아본 덕분에, 나는 내가 열심히 공부해서 석사, 박사를 따고 진출해봤자 내가 겪는 현실은 소설책에서 나오던 현실과 다른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고 나와도 아직 사회는 여자 연구원을 남자 연구원과 동등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알게 되었다. 억울하고 억울했지만, 현실이 그랬다. 내가 내 연구만으로 남자들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면 최소한 결혼은 했어도 애는 없었어야 했다. 정말이지, 욕 나오는 현실이었다.

‘내 잘못이다. 내가 운이 나빴다. 나 스스로 어떤 핸디캡이 있는지 파악을 했어야지. 아이가 있는 기혼자라는 핸디캡을 덮으려면 엄청난 연구를 했었어야지, 그 연구를 못 한 내 잘못이다. 아, 아니지, 아니지…. 그냥 나는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고, 결혼했더라도 아이는 낳지 말았어야지…. 내 실수다, 내가 잘못한 거야….’

매일 이런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안다.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 여자라서, 아이 엄마라서 이를 포장하기 위해 위대한 업적이 있을 필요도 없었다. ‘위대한 업적’이 있어야만 겨우 내가 과학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부터가 차별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나와 같은 평범한 과학자들이 아등바등 자기 자신을 증명하며 살길 원하지 않는다. 여성이라서, 아이 엄마라서 더 훌륭한 업적이 있어야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이 사회가 이상한 것이므로.

우리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이상하다는 것을 모두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래서 나처럼 아이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하고, 분명히 사랑해서 결혼한 배우자를 원망하지 않았으면 한다. ‘엄청난 업적’을 세우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고 자신을 채찍질하며 마음 졸이지 않았으면 한다. 그냥, 하루하루 본인이 하고 싶었던 연구를 하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지냈으면 한다.

나는 그러질 못했다. 그래서 아이가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시기에 아이를 미워했고, 인생의 동반자를 원망했다. 하지만, 엄마로 사는 인생, 정말 귀한 시간이다. 결코 ‘바보’로 지내는 시간이 아니다. 그러니 사회 진출을 꿈꾸는 누군가 내가 들은 말을 똑같이 듣는다면, 나처럼 그 ‘헛소리’ 다 참고 듣고 있지 말고 꼭 시원하게 한마디 해주고 나오길 바란다.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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