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싶은 유모차, 갈 수 없는 서울역
악명 높은 환승구간, 승강기 경사로 전무 유모차 엄마, 몇번 망설이다 결국 뒷걸음질
지난 13일 찾아간 지하철 서울역 1↔4호선 환승구간은 장애인과 노약자, 아이를 동반한 승객 등 교통약자들에겐 마의 구간이었다. 이들은 환승하는 도중 마주친 계단 앞에서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무거운 짐 가방을 든 외국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환승구간에는 계단이 두 곳이나 된다. 두 곳 모두 엘리베이터나 경사로는 전혀 없고,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된 곳도 1곳뿐이다. “서울역을 이용할 때는 유모차보다 차라리 아기띠를 사용하는 것이 낫다.” 육아 커뮤니티에 종종 올라오는 육아맘들의 조언이다.
◇ 모든 시민들에게 불편한 서울역 환승구간





베이비뉴스와 뉴시스가 ‘유모차는 가고 싶다’ 연중캠페인(http://safe.ibabynews.com)의 일환으로 진행하고 있는 ‘유모차 보행을 돕는 따뜻한 시민상’의 두 번째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낮 12시 30분께부터 이곳 환승구간을 관찰했다. 베이비뉴스와 뉴시스는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설치돼 있지 않아 보행에 불편을 겪고 있는 유모차 이용자를 돕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시민을 발굴해 시상하고 있다. 물론 엘리베이터와 경사로를 설치하는 것이 궁극적인 대안이지만, 당장 어려움에 처한 유모차 이용자들에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바쁘게 오고 가는 사람들로 가득한 환승구간. 이곳은 4호선에서 내린 승객들이 서울역, 롯데마트에 가려면 이곳을 반드시 거쳐야 하기 때문에 더욱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다.
유모차에 세 살배기 아이를 앉혀 걷던 한 엄마는 계단이 보이자 아이에게 “내리자. 이제 걸어가야 돼”라며 재촉했다. 계단 앞에 다 와서야 유모차에서 내린 아이는 계단을 오르기 힘든지 7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의 누나에게 업혀 올라갔다. 엄마는 혼자 유모차를 든 채 아이들의 뒤를 따랐다. 이들 옆으로는 한 부부가 아이를 태운 채 디럭스급 유모차를 맞들고 힘들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손녀가 탄 유모차를 힘겹게 들고 올라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비교적 가벼워 보이는 유모차를 휴대한 엄마들은 아이를 유모차에서 내리게 하고 유모차를 접어 혼자서 계단을 오르내렸다.
엘리베이터와 경사로, 에스컬레이터가 전혀 없는 계단은 많은 이들은 힘들게 만든다. 무거운 짐을 들고 오르던 한 할머니는 “어휴, 정말 계단이 왜 이렇게 많아”라며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다리가 불편한 할아버지는 연신 무릎을 굽혔다 폈다 반복하며 계단을 올랐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대부분은 계단 중간중간 난간에 몸을 기대 숨을 고르곤 했다. 자기 몸집만한 여행용 트렁크를 끄는 외국인 여행자들도 계단에선 끙끙대는 모습이었다.
◇ 국가인권위, 지난 2011년 장애인 차별 결정
이 환승구간은 장애인들에게 악명 높은 곳이다.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없는 계단을 휠체어 이용 장애인은 오를 수 없다. 4호선에서 1호선으로 환승하는 장애인들은 이 환승구간을 이용하지 못하고 게이트 밖으로 나가 휠체어 리프트가 설치돼 있는 계단을 이용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한다. 휠체어 리프트는 사고가 잦고 이동시간도 오래 걸려 장애인들이 기피하는 시설이다.
이와 관련 지난 2011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현병철)는 서울메트로(사장 장정우)에게 “휠체어 리프트만 설치돼 있는 것은 장애인 차별”이라며 전문가 자문 결과를 참고해 1↔4호선 서울역 환승 구간에 경사로를 설치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경사로는 설치되지 않고 있다.
◇ 몇 번을 망설이다 결국 뒷걸음질 ‘위태위태’
두 시간 가량이 흘렀을 때, 1호선 승강장 방향에서 디럭스급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걸어오던 한 젊은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계단을 내려 보더니 도저히 내려갈 엄두가 안 났는지 발길을 돌려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5분 정도 지났을까. 다시 계단 앞에 젊은 엄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또 다시 계단 앞에서 망설이다 다른 통로를 찾으려는 듯 이내 사라져버렸다. 젊은 엄마는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유모차를 뒤로 돌려 뒷걸음질을 하며 위태롭게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유모차에는 남자 아이가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렇게 젊은 엄마가 몇 계단을 내려서자 뒤에서 오던 두 남성이 “도와드릴까요?”라며 유모차를 잡아들었다. 두 남성은 젊은 엄마와 함께 유모차를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이 남성들은 앞서 내려온 계단보다 두 배정도 긴 계단도 끝까지 함께 했다.
두 남성의 도움을 받아 겨우 계단을 내려올 수 있었던 박미나(37, 오산시) 씨는 “가끔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을 이용하지만 이처럼 엘리베이터가 없는 환승통로에서는 참 곤란하다”며 “하필 사람이 많은 이곳에 엘리베이터가 없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계단 앞에서 몇 번을 망설였던 이유가 뭐였는지 묻자 박 씨는 “안내센터에 찾아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문의했지만 안내 직원은 다른 통로가 있다고 대답할 뿐이었다. 다른 통로를 찾고 싶은 마음에 계단 앞에서 여러 번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박 씨는 “유모차를 끌고 온 엄마들뿐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 등 계단을 이용하기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며 “엘리베이터가 빨리 설치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유모차를 같이 들어주신 두 분께 정말 감사할 따름”이라고 고마움의 인사를 전했다.




◇ 두 번째 따뜻한 시민상 주인공들 “도와드리는 게 당연”
‘유모차 보행을 돕는 따뜻한 시민상’의 두 번째 주인공들은 공무원이었다. 대통령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국가건축정책기획단 소속 진태승(34) 씨와 국토교통부 국토도시실 소속 백대성(42) 씨. 세종시에 거주하는 이들은 회의에 참석하려고 서울을 방문했다고 했다.
이들은 따뜻한 시민상에 선정됐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는 처음에는 “괜찮다”며 정중히 상을 거절했다. 하지만 따뜻한 시민상을 수락하는 것도 유모차 이용자의 보행권을 확보하는데 기여하는 것이라는 취지로 설명을 이어가자 결국 따뜻한 시민상 수상을 수락했다. 진 씨는 “특별히 보행 권리에 대해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힘들게 다니시는 분들이 보이면 유모차든 누구든 도와드리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 서울메트로 측 “2015년 상반기까지 경사로 설치 예정”
많은 사람들 불편하게 만드는 서울역,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서울메트로는 시민들의 불편함을 고려해 지난 2011년부터 ‘서울역 혼잡도 개선공사’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1↔4호선 환승구간도 공사 계획에 반영해 오는 2015년 상반기까지 경사로를 설치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1·4호선 환승통로 쪽은 수평으로 길게 이어져 있어 수직 이동을 하는 엘리베이터 설치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교통약자들의 이동권 보장을 위해 경사로 공사를 추진하고 있다. 공사는 지하철 이용객이 없는 새벽 2시~4시까지만 진행되기 때문에 완공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조금씩 개선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서울역뿐만 아니라 모든 역의 불편한 통로는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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