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그거 꼭 해야 하는 거 맞나요?
어떤 결혼 꿈꾸는지 행복 설계도 그리는게 우선
[연재] 결혼수다 'Something four'
12월이다 싶더니만, 트위터 타임라인에 트친의 고통 섞인 푸념이 올라왔다. “송년회에 왔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고 상사가 괴롭혀 ㅠㅠㅠㅠ”
비단 송년회 스케줄이 줄줄이 잡힌 연말연시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명절, 각종 행사, 심지어는 남의 결혼식까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듯, 때로는 덕담이라도 하듯 툭툭 던지는 “결혼은 언제 하느냐”는 말은 사실 삼십 대 독신 남녀를 공격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 중 하나다.
그렇다고 이 결혼 이야기가 “그 후로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행복한 결혼 후일담들 속에서 “그러니까 너도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면 좋겠다”는, 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나오는 거라면 또 모르겠다. 대개 이런 이야기의 앞뒤에는 마치 누가누가 더 불행한지 알아맞혀 봅시다 불행자랑 콘테스트라도 하듯 기혼자들의 시-처가 욕은 기본이고 양말 벗어서 뒤집어놓는 습관 같은 배우자에 대한 백만 스물한 가지의 불만사항이 쏟아져 나온다.
배우자 부모님과의 일촉즉발 갈등 앞에서 자기 부모님 편만 들고 있는 배우자를 비난하며 ‘역시 남편은 남의 편’이라고 못을 박아 놓고서,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독신자에게 ‘그런데 자기는 결혼 안 해?’하고 묻는 사람은 또 뭔가. 이건 뭐 나만 혼자 불행하게 살 수 없으니 너도 불행해 보라고 고사를 지내나 싶은 야속한 마음마저 몰려들기 마련이다.
간혹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혹은 결혼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어도 아직 아이가 없는 이들이 “그래도 내 배우자는 참 좋은 사람이에요”하고 자랑이라고 하려 들면 마치 철없는 어린아이를 보는 듯 그놈의 환상 조금만 더 있으면 깨질 거라는 투의 시선들이 쏟아진다.
이쯤 해서 누군가가 매듭을 짓듯 한 마디 추가. “지금은 잘 해주는 것 같지? 애 낳아 봐. 애 낳아봐야 알지.” 이런 식으로 앞으로 보나 뒤집어 보나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그 주제가 식기도 전에 독신자를 붙들고 결혼하라고 난리를 친다. 애인이 있는데 결혼을 미루고 있으면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이라며 시대에 맞지 않는 영양가 없는 이야기나 늘어놓고, 애인이 없다고 하면 하여간 억지로 소개팅이라도 시켜줄 기세다.
그러면서도 가난한 애인과 소박하게라도 시작하려고 한다는 말을 하면 약속이라도 한 듯 결혼할 때 얼마나 돈이 많이 드는지, 시댁에서 예단을 얼마나 많이 기대하고 있는지, 예물이나 예단을 소홀히 하면 앞으로의 결혼생활 자체가 얼마나 험난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젊구나”, “아직 철이 없어서”, “정말 사랑하나 보네” 같은, 비웃는 듯한 추임새가 따라붙기도 한다. 그야말로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어질 만한 상황이다.
과연, 결혼이라는 건 왜 해야 할까. 이쯤 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남들 다 하는 거니까 어련히 하는 것이 결혼이라면, 줄줄이 바닷 속으로 뛰어드는 레밍 떼와 같이 우리도 저 불행자랑의 바닷 속으로 함께 뛰어드는 것은 아닐까.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 치고 행복한 결혼을 꿈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 행복의 조건이 사랑이건 돈이건 다른 어떤 현실적인 이유이건 상관없이. 그렇게 생각하는 행복이 현실에서는 이루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것이라면 결국 19세기 사실주의 문학 속 여주인공들처럼 환상 속으로 도피했다가 환멸만 느낄 뿐이다.
행복에 대한 그림조차 그려보지 않은 채 상황에 떠밀려서 결혼해버리면 결국 당신을 괴롭히던 기혼자들과 마찬가지로 불행 자랑의 대열에 서게 될 테고, 미혼자들을 볼 때마다 “남들 다 하는 거니 너도 하라”며 결혼, 결혼 노래를 부르게 될 것이다. 그쯤 되면 결혼이라는 것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아니라 인생의 새로운 늪에 불과하지 않을까.
결혼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더 행복하게 살기 위해 결혼하자. 결혼할 상대는 있어도 그 행복의 설계도가 아직 보이지 않는다면 얼굴 마주 보고 한 번 진지하게 이야기라도 해 보자. 결혼하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수 있느냐는 뜻으로 ‘결혼, 우리 그거 꼭 해야 해?’ 하고.
*칼럼니스트 전혜진은 수학과 기계공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내추럴 본 공돌이이자 퇴근 후에는 SF소설과 만화 스토리를 쓰는 작가다. 주변의 온갖 것을 관찰하고 분석하고 메모하는 것을 즐기며, 자신의 결혼과정을 꼼꼼히 메모하며 생각했던 일그러진 결혼문화들을 '천만원으로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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