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 섬노예로 끌려가진 않았는지”
“내 새끼 섬노예로 끌려가진 않았는지”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5.02.17 1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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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펀딩] 42년전 실종된 아들 찾는 전길자 씨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엄마가 이렇게 둬서 미안해.” 실종 아들을 42년째 찾고 있는 전길자(69) 씨가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 사거리, 가로수에 설치된 플래카드 속 아들 사진을 매만지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om ⓒ베이비뉴스
“엄마가 이렇게 둬서 미안해.” 실종 아들을 42년째 찾고 있는 전길자(69) 씨가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 사거리, 가로수에 설치된 플래카드 속 아들 사진을 매만지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om ⓒ베이비뉴스
 
“엄마가 이렇게 둬서 미안해.” 실종 아들을 42년째 찾고 있는 전길자(69) 씨가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 사거리, 가로수에 설치된 플래카드 속 아들 사진을 매만지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om ⓒ베이비뉴스
“엄마가 이렇게 둬서 미안해.” 실종 아들을 42년째 찾고 있는 전길자(69) 씨가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 사거리, 가로수에 설치된 플래카드 속 아들 사진을 매만지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om ⓒ베이비뉴스
 
“우리 아들 정훈이, 얼굴색이 왜 이렇게 변했어? 사진이 다 바랬네, 바랬어! 엄마가 안 오는 동안 다 바랬어! 이렇게 둬서 엄마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정훈아!”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지하철 2호선 이대입구역 사거리, 가로수에 설치된 한 플래카드 앞에 멈춰선 전길자(69) 씨. 낡은 플래카드 속 빛바랜 아들 사진을 이리저리 살핀다. 차들이 옆으로 쌩쌩 지나가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들 사진을 손으로 더듬고 더듬던 어머니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42년 전 실종된 이정훈(당시 4살, 현재 나이 46살). 강산이 변해도 네 번도 더 변했을 시간이 흘렀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20대 꽃다운 나이 때부터 아들을 찾아 전국을 헤매던 전 씨는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는 할머니가 됐다.
 
아들과 함께 살았던 이화여대 뒤쪽 언덕 위 오거리 골목, 옛 동네에는 큰 아파트단지가 들어선지 오래다.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그리움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되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 뚜렷하고 강해지고 있다.
 
‘오늘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오늘은 소식을 들을 수 있겠지’. 전 씨는 매일매일 아들이 실종됐던 42년 전 그날로 돌아가 아들의 흔적을 찾아 헤매고 있다.
 
4살 때 실종된 이정훈 씨의 예전 사진(왼쪽)과 이정훈 씨의 성인 추정 모습. ⓒ실종아동찾기협회
4살 때 실종된 이정훈 씨의 예전 사진(왼쪽)과 이정훈 씨의 성인 추정 모습. ⓒ실종아동찾기협회
 
■ 실종아동
-이 름 : 이정훈
-나 이 : 실종 당시 4세(만 3세), 현재나이 46세, 1970년 음력 2월 9일 생
-실종일자 : 1973년 3월 18일
-실종지역 : 서울시 서대문구 대현동
- 신체특징 : 눈이 둥글고 쌍꺼풀이 크며, 왼쪽 눈 쌍꺼풀 사이 흉터 3개 있음
- 발생경위 : 집 앞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정

 

 
생일 전날 집 앞에서 사라진 아들
 
정훈이는 귀한 아들이었다. 친가와 외가를 통틀어 첫 손자였다. 네 살 정훈이는 엄마, 아빠, 이모, 삼촌 등 가족 이름을 줄줄이 읊을 정도로 영리했다. “엄마, 나는 크면 장군이 될거야”라며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 거수경례를 하던 활발했던 아이. 그 아이가 10분 남짓한 사이 집 앞에서 사라졌고,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정훈이가 경북 상주 할머니댁에서 지내다가 엄마와 동생과 함께 서울 집으로 올라온 다음 날이었다. 정훈이는 아침식사를 마치고 외출하는 아빠를 따라나서겠다고 떼를 썼다. 전 씨는 겨우 정훈이를 달래 집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집 앞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과 “10분만 놀겠다”며 투정을 부렸다. 집 문만 열면 훤히 다 보이는 동네긴 했지만, 아이를 혼자 내보내는 게 영 마음에 쓰였다.
 
아들과 함께 살았던 옛 동네 위치를 가리키고 있는 어머니 전길자 씨.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아들과 함께 살았던 옛 동네 위치를 가리키고 있는 어머니 전길자 씨.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생후 100일이 채 되지 않은 정훈이 동생은 젖을 달라며 울기 시작했다. 전 씨는 할 수 없이 “10분만 놀아라”고 허락해줬다. 마음이 놓이지 않아 집 앞 구멍가게 아주머니에게도 아이들 간식비를 챙겨주며 “정훈이가 놀고 있으니 잠깐만 신경 써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젖을 다 먹이고 정훈이를 데리러 나가기 전 잠깐 세수를 하던 그 순간, 전 씨 가슴이 막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무언가 꽉 막힌 느낌에 번뜩 정훈이 생각이 나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뛰쳐나갔다. 다른 아이들은 다 놀고 있는데, 정훈이만 보이지 않았다. “정훈이 어디 갔느냐”는 물음에 아이들은 모두 “모른다”고 했다. 1973년 3월 18일 오전 11시, 정훈이는 생일을 하루 앞두고 그렇게 엄마와 헤어지고 말았다.
 
목격자도 없는 4살 아이의 실종
 
“앞으로 몇 살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살아야죠. 그래야 정훈이를 만나죠.” 인터뷰 도중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전길자 씨.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앞으로 몇 살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살아야죠. 그래야 정훈이를 만나죠.” 인터뷰 도중 아들 생각에 눈물을 흘리는 전길자 씨.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전 씨는 미친 사람처럼 온 동네를 헤매고 다녔다. 남자 아이가 실종되면 위쪽으로 올라간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윗동네도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정훈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얀 고무신에 쥐색 바지, 빨간줄과 검정줄이 들어간 티셔츠, 보라색 조끼에 똑딱이 모자를 쓰고 나간 정훈이. 그게 아들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안되겠다 싶어 오후 2시께 서대문경찰서로 달려가 아들이 없어졌다고 신고했다. 목격자도 없고,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진 네 살배기 아들. 답답한 부모의 마음과 달리, 경찰은 당장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했다.
 
“정훈이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실종된 그날 밤 바로 점을 보러 갔어요. 점쟁이가 펄쩍펄쩍 뛰면서 ‘아이고 답답해, 뭔지 몰라도 못 찾겠어. 꽁꽁 숨겨져 있는데 어떻게 찾느냐’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어서 제 스스로 찾아 나섰죠.”
 
아들을 찾는 건 결국 부모의 몫이었다. 아들이 살아있을 거란 믿음 하나로 전국의 아동보호시설, 아동양육시설, 입양기관까지 찾아 나섰다. 전 씨는 정훈이 동생을 업고 행상을 하며 전국 곳곳을 누비기도 했다. 미역이랑 미숫가루를 넣은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눈에 보이는 가정집은 다 들어갔다. 혹시 남의 집에서 정훈이가 자라고 있을까봐, 아이가 그 집에 있는지 없는지만 정신없이 살폈다. 
 
아들을 찾는 건 결국 부모의 몫···고난의 42년
 
전길자 씨가 1월 27일 서울 홍대입구 전철역에서 실종아동찾기협회가 진행한 ‘실종아동 찾기 가두 캠페인’에 참가해 시민들에게 실종아동 찾기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전길자 씨가 1월 27일 서울 홍대입구 전철역에서 실종아동찾기협회가 진행한 ‘실종아동 찾기 가두 캠페인’에 참가해 시민들에게 실종아동 찾기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전길자 씨가 1월 27일 서울 홍대입구 전철역에서 실종아동찾기협회가 진행한 ‘실종아동 찾기 가두 캠페인’에 참가해 시민들에게 실종아동 찾기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전길자 씨가 1월 27일 서울 홍대입구 전철역에서 실종아동찾기협회가 진행한 ‘실종아동 찾기 가두 캠페인’에 참가해 시민들에게 실종아동 찾기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그 작은 아이가 도대체 어디로 갔을까. 누가 데리고 갔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전 씨 가족은 답답한 마음으로 “제발 아들을 찾아 달라”며 청와대에 탄원서까지 냈지만, ‘수사 중’이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청와대 진정에도 경찰은 적극적인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바로바로 아이를 찾아줄 생각을 안했죠. 경찰들이 더욱 빨리 적극적으로 (정훈이를) 찾을 생각을 했다면···. 모르죠, 지금은 정훈이가 제 옆에 있을지.”
 
정훈이가 없어진 그날 이후 전 씨 가족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특히 집안 장손이었던 정훈이었기에, 며느리였던 전 씨의 고통은 더욱 컸다.
 
“정훈이가 실종되지 않았다면 정훈이 생일잔치도 하고, 정훈이 동생 백일잔치도 해야 했죠. 하지만 차마 시부모님에게 정훈이가 실종됐다고, 못 찾았다고 말할 수가 없었어요. 벌벌 떨려서 어떻게 할 수가 없었죠.”
 
전 씨는 시댁에서 사랑받던 큰 며느리였다. 아들만 셋이던 시어머니는 큰 며느리를 딸처럼 대해줬다. 전 씨도 시어머니에게 “엄마”라고 부르며 모녀지간처럼 잘 지냈다. 그러나 첫 손자가 실종됐다는 충격에 시어머니는 전 씨를 사람취급하지 않았다. 전 씨는 눈을 감을 때까지도 손자에 대한 그리움을 놓지 못했던 시부모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
 
“차라리 실종되기 전날 상주 할머니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오지 말걸, 그 생각도 했어요. 서울 집에 간다니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가서 좋아’라고 웃던 아이였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전 씨는 자궁근종수술, 갑상선수술, 위암수술까지 대수술만 다섯 번을 했다. 온갖 병으로 심신이 망가져, 몸이 앙상하기만 하다. ‘아들과 헤어진 슬픔과 고통이 병이 된 것은 아닌지….’ 전 씨는 죽고 싶다는 생각에 자살 시도도 여러 번 했다.
 
“제가 아픈 건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나도 나이를 먹고 가야 할 시간이 좁혀져만 가는데, 우리 정훈이를 못 찾고 죽으면 어떡하지? 그 생각만 하면 정말 견딜 수가 없어요.”  
 
아들을 찾지 못한 어머니는 그렇게 모진 세월을 견뎌왔다.
 
“혹시 섬 노예로 팔려가지는 않았을까?”
 
아들 이정훈 씨를 찾기 위해 모아둔 자료들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는 전길자 씨. 몇 십 년 전에 찍은 아들 사진과 신문기사들은 빛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졌다. 전단지 종류도 여럿이다. 전 씨에게 이 낡은 자료들은 아들 정훈이와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아들 이정훈 씨를 찾기 위해 모아둔 자료들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는 전길자 씨. 몇 십 년 전에 찍은 아들 사진과 신문기사들은 빛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졌다. 전단지 종류도 여럿이다. 전 씨에게 이 낡은 자료들은 아들 정훈이와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아들 이정훈 씨를 찾기 위해 모아둔 자료들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는 전길자 씨. 몇 십 년 전에 찍은 아들 사진과 신문기사들은 빛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졌다. 전단지 종류도 여럿이다. 전 씨에게 이 낡은 자료들은 아들 정훈이와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아들 이정훈 씨를 찾기 위해 모아둔 자료들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는 전길자 씨. 몇 십 년 전에 찍은 아들 사진과 신문기사들은 빛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졌다. 전단지 종류도 여럿이다. 전 씨에게 이 낡은 자료들은 아들 정훈이와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아들 이정훈 씨를 찾기 위해 모아둔 자료들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는 전길자 씨. 몇 십 년 전에 찍은 아들 사진과 신문기사들은 빛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졌다. 전단지 종류도 여럿이다. 전 씨에게 이 낡은 자료들은 아들 정훈이와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아들 이정훈 씨를 찾기 위해 모아둔 자료들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는 전길자 씨. 몇 십 년 전에 찍은 아들 사진과 신문기사들은 빛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졌다. 전단지 종류도 여럿이다. 전 씨에게 이 낡은 자료들은 아들 정훈이와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아들 이정훈 씨를 찾기 위해 모아둔 자료들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는 전길자 씨. 몇 십 년 전에 찍은 아들 사진과 신문기사들은 빛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졌다. 전단지 종류도 여럿이다. 전 씨에게 이 낡은 자료들은 아들 정훈이와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아들 이정훈 씨를 찾기 위해 모아둔 자료들을 꺼내 기자에게 보여주는 전길자 씨. 몇 십 년 전에 찍은 아들 사진과 신문기사들은 빛이 바래고 너덜너덜해졌다. 전단지 종류도 여럿이다. 전 씨에게 이 낡은 자료들은 아들 정훈이와 이어주는 소중한 끈이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전 씨는 아들의 어릴 적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엄마, 내가 크면 엄마 많이 사랑해줄게”라고 속삭이던 사랑스런 목소리, 깊고 짙은 눈망울. 작고 앙증맞았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살아갈 희망을 찾는다.
 
지금 정훈이의 나이 46세. 중년이 된 모습은 어떨지 상상으로나마 아들을 그려본다. ‘결혼은 했겠지?’ ‘아이의 아빠가 돼 있지 않을까?’ 전 씨는 길을 가다가도 40대 남자를 보면 혹시 정훈이가 아닐지 찬찬히 훑어보곤 한다.
 
“전국의 유명하다는 점집은 다 수소문해서 찾아갔어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갈 수 있는 곳은 전부다요. 한 천 곳은 갔었던 것 같아요. 가는 곳마다 한결같았어요. ‘정훈이는 살아있다’고요. 어느 한곳도 정훈이가 죽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모두 살아있다고 했죠.”
 
아들이 잘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전 씨를 살 수 있게 한다. 전 씨는 언제 또 몸이 잘못될까 하는 두려움도 크지만, 아들을 만날 생각으로 매일 거르지 않고 운동을 하며 건강관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은 혹시 아들이 섬에 팔려가서 노예처럼 일하고 있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캐리어 하나 끌고 통영, 부산, 목포, 진도 등의 섬들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양식장과 염전에서 힘겹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훈이면 좋겠다’ 싶다가도 ‘안 돼, 우리 정훈이는 이곳에 있으면 안 돼’라는 생각이 교차할 때가 많았다고.   
 
“정훈이가 제게 힘을 주고 있어서, 그래서 이 나이에도 찾아다닐 수 있어요. 어떤 때는 내 잘못인데, 정훈이를 핑계 삼아 이렇게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내가 정말 나쁜 엄마인가 할 때도 있어요. 그럴수록 ‘아니야, 정훈이 너에게 잘못한 것도 있지만, 난 널 찾기 위해 이렇게 몸부림 치고 있어. 엄마를 도와다오’라면서 다시 힘을 내죠.”
 
전 씨는 다가오는 봄에도 아들을 찾기 위해, 경찰의 협조를 받아 섬 지역 수색을 떠날 계획이다.
 
‘아들 찾았다’ 연락에 유전자 검사만 서른 번
 

‘아들’ 주변 사람들은 ‘그만하면 됐다’고 하지만, 전길자 씨는 아들을 찾기 전까진 멈출 수 없다. 2012년 5월 실종아동의 날 기념식장에서 눈물을 보인 어머니.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아들’ 주변 사람들은 ‘그만하면 됐다’고 하지만, 전길자 씨는 아들을 찾기 전까진 멈출 수 없다. 2012년 5월 실종아동의 날 기념식장에서 눈물을 보인 어머니.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전 씨는 최근 경찰청에서 연락을 받았다. 아들과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고. 현재 유전자 검사 의뢰에 들어간 상태다. 42년을 기다렸지만 몇 주 기다리는 지금이 더욱 길게만 느껴진다고. ‘아들과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고 해서 기대를 걸었다가 실망한 경험만 서른 번이 넘지만, ‘이번에는 아들이 맞을 거야’라는 마음을 접을 수 없다.
 
지난 2005년에도 한 방송을 통해서 전 씨의 사연이 소개된 직후 ‘정훈이와 비슷한 사람을 찾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이름, 나이, 생일은 물론 발뒤꿈치에 흉터가 있는 것까지 똑같았다.
 
“그 아이를 만나러 불광동으로 갔죠. 처음에는 정말 내 아들이겠거니 싶어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작은 아들의 손녀 이름과 그 사람의 딸 이름도 똑같았거든요. 어쩜 이렇게 같을까,  이번엔 맞겠구나 싶었는데···.”
 
유전자 검사 결과, 전 씨와 그의 DNA는 일치하지 않았다. 믿을 수 없다며 피검사도 다시 하고 머리카락까지 뽑아 유전자 검사도 다시 했지만 일치하지 않았다. 큰 실망감에 사흘 밤낮을 끙끙 앓으며 일어나지 못했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설마 맞겠어?’하면서도 ‘이번엔 정훈이일거야’ 기대를 버릴 수가 없죠.”
 
수십 년의 세월, 주변 사람들은 ‘이제 그만하면 됐다’며 전 씨를 말린다. 전 씨의 다른 아들들도 ‘할 만큼 다 하셨다’고, ‘이젠 짐을 내려 놓으시라’고 한다. 하지만 엄마는 눈을 감을 때까지 아들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차라리 죽었으면 흔적이라도 알고 내 가슴에 묻겠죠. 근데 우리 정훈이가 죽었다는 소식은 없잖아요. 살아있다는 거죠. 정훈이는 제가 목숨처럼 생각하고 잡아왔던 끈이에요. 긴 시간을 왔는데, 그 끈을 놓으면 정훈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던 게 모두 수포로 돌아가잖아요. 제가 앞으로 몇 살까지 살지 모르겠지만, 살아야죠. 그래야 정훈이를 만나죠.”
 
전 씨가 기대하는 건 아들 측에서 엄마를 먼저 찾아주는 것이다. 열심히 전단지도 뿌리고 방송사나 신문사에 인터뷰도 많이 할 테니, 꼭 엄마를 잊지 말고 기억해서 돌아와 주길 바라고 있다고.
 
“정훈이는 기찻길에서 살아난 적이 있어요. 세 살이던 가을, 상주 할머니집 근처에서 달려오는 기차를 피하려고 자갈밭에 엎드렸어요. 어렸지만 충격이 컸겠죠. 우리 정훈이는 진짜 똑똑했기 때문에 이 일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전 씨는 아들을 만나면 아들이 좋아했던 된장찌개와 달걀요리를 해주고 싶다고 했다. 아들은 없지만, 매년 빠지지 않고 챙겨왔던 아들의 생일상을 차려 먹여주는 게 소원이라고. 그리고 꼭 아들에게 미안하단 말을, 사랑한단 말을 하고 싶다는 어머니. 그는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사에 꼭 실어달라고 부탁했다.
 
<엄마 전길자 씨가 아들 이정훈 씨에게 전하는 편지>
 
전길자 씨가 2012년 5월 열린 실종아동의 날 기념식에서 두 손으로 전자촛불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전길자 씨가 2012년 5월 열린 실종아동의 날 기념식에서 두 손으로 전자촛불을 들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사랑하는 나의 분신 ​정훈을 실종당한지 벌써 42년째. 1973년 3월 18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19-153번지 집 앞에서 빨간색 티셔츠, 보라색 털조끼, 곤색 털바지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털모자를 쓰고 10분만 바람을 쐬게 해달라고 애원해 친구 4명과 같이 놀던 네 살배기, 나의 분신인 정훈이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연기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친 듯이 너를 찾아 헤매던 엄마는 실신을 하고 결국은 병원 신세를 져야 했고 몸져눕고 말았단다.
 
백일이 갓 지난 너의 동생 정민이는 동네 아줌마들의 젓 동냥으로 몇 달을 자랐다. 늦어도 그날 오후쯤은 널 만날 줄 알았는데 42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이 엄마에 가슴은 피멍으로 한이 맺혔단다. 나의 분신인 큰아들 정훈이를 잃어버리고 42년 동안에 있었던 고통, 절망, 좌절감으로 죽음을 선택하려 했으나, 죽음조차도 이 엄마에게는 사치였나보다.
 
사랑하는 나의 큰 아들 이정훈아! 정말 보고 싶구나. 네가 보고 싶어 베갯잇을 적시고 울며  지새운 수많은 밤들이 원망스럽다.
 
엄마는 지금도 너를 내 가슴으로 불러보고 대답하기를 42년째다. 네가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 있다면 대답이라도 해주렴. 앙증맞은 너의 모습을 생각하면 미쳐버릴 같구나.
 
이 다음에 키가 크고 어른이 되면 꼭 장군이 되겠다고 장난감 병정놀이를 하면서 이 엄마에게  거수경례를 하던 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구나.
 
​정훈아! 엄마한테 한말 생각나니? “엄마야 밥 좀 빨리도. 훈이가 배고프데이. 알았나?”하며 사투리를 쓰던 네 목소리, 42년이 지나가는 지금도 이 엄마에 귀에 생생하단다. 
 
너를 보고 싶어 밤마다 울며 지샌 긴 세월을 아기였던 네가 어찌 알겠느냐. 사랑하는 나의 정훈아 대답 좀 해주면 안 될까? 차라리 아파서 하늘나라에 갔다면 체념이나 하지, 당장이라도 “엄마, 훈이 여기있데이”하면서 뛰어 들어 올 것 같은 환상에 미쳐버릴 것 같아.
 
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다면 착하고 건강하고 아름답게 사회에 이바지하는 멋진 사람이 되어주길 바라면서 오늘도 이 못난 엄마는 너의 이름을 살며시 불러 본다.
 
정훈아! 정훈아! 정훈아! 사랑하는 나의 정훈아.
 
올해로써 너의 나이가 벌써 46살이구나. 1970년 양력 3월 9일, 음력 2월 9일인 너의 46번째 생일이 돌아오고 있구나. 어딘가에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 있을 내 사랑 정훈이에게 못난 엄마가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써본단다. 우리 만날 날을 꼭 손꼽아 기다린다.
 
엄마가, 사랑하는 나의 훈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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