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명 죽인 가습기살균제 기업, 처벌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법적 책임 학술대회 열려

동네 마트에서 판매한 제품을 사용한 국민 142명이 죽었다. 이 죽음을 누가 책임져야 할까. 제품을 만든 기업? 위험한 제품을 팔도록 허락한 국가? 지금까지는 그 누구도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현재 상황이 그렇다.
가습기 살균제는 1994년 우리나라 기업, 당시 유공(현 SK케미칼)이 개발해서 판매를 시작했고, 2000년대 초반부터 판매가 본격화했다. 이때부터 원인 불명의 폐 질환 사망자들이 속출했다.
정부가 나선 건 이미 많은 이가 원인도 모른 채 목숨을 잃은 뒤인 2011년이다. 그해 산모 4명이 연이어 사망하면서 역학조사에 나섰고,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을 일으켰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제 사건이 정리되는 건 시간문제다.’ 피해자와 가족들은 정부가 나서 사건의 원인을 규명했으니 일이 빨리 정리되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다르게 돌아갔다. 정부는 기업과 개인 사이에서 벌어진 일이라며 거리를 뒀다. 문제가 된 제품의 이름을 바로 공개하지 않을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피해자와 시민단체, 일부 국회의원의 노력으로 피해자 구제 결의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나서야 피해자 사례를 접수하고 조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인 기업이 한 일은 없었다. 주요 가해 기업 중 하나인 옥시레킷벤키저 사장이 2년 전 국정감사에 나와 유감을 표시하고 기부금을 내놓은 것이 전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은 결국 알아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2012년부터 피해자들은 기업과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민사는 6건 이상, 형사는 2건이 진행 중이다. 형사소송은 살인과 과실치사 혐의로 제기했다.
이 중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은 올해 1월 1심에서 패소했다. “국가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었다”는 게 이유였다. 형사 사건은 조사가 지지부진하다. 답답해진 피해자들은 영국 땅으로 날아가 옥시레킷벤키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가 소극적이고 기업이 나몰라라 하는 사이,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수단이 소송이 된 것이다.
◇ 피해자 구제할 마지막 수단, 소송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법적 책임’이란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해자들이 어떻게 법정 투쟁을 해 나가야 할지 방법을 찾고 생각을 모을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술대회는 강원대학교 비교법학연구소 환경법센터 주최로 서울 종로구 혜화동 서울대 연건캠퍼스 교육관에서 열렸다. 학술대회에는 20여 명의 소규모 인원이 참석했지만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5시를 넘겨 끝날 정도로 열기는 뜨거웠다. 참석자들은 쉬는 시간에도 삼삼오오 모여 법리 문제를 따지고 확인했다.
학술대회는 총 3부로 나누어 진행됐다. 최예용 소장(환경보건시민센터)의 기조 발제에 이어서 1부에서는 ‘제조사의 책임’을 주제로 정남순 변호사(환경운동연합 환경법률센터)가 ‘민·형사 소송의 쟁점 분석’을, 크리시넨두 무커지 변호사가 ‘영국 소송의 특징과 쟁점 & 국제기구를 통한 책임 묻기’를 주제로 발표했다.
2부에서는 ‘국가의 책임’에 관해서 김용화 초빙교수(성균관대 약학대)가 ‘환경학적 관점’으로, 박태현 교수(강원대 법학전문대)가 ‘법학적 관점’으로 각각 발제했다. 마지막 3부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교훈의 법적 보완’을 주제로 이종현 소장(네오엔비즈 환경안전연구소)이 ‘사전 예방 조치로서의 화평법 등의 보완 방향’을, 장하나 의원실의 송용한 보좌관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구제를 위한 입법활동의 교훈과 과제’를 주제로 발제했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송의 핵심은 결국 인과관계의 증명이다. 현재 민사소송은 제품을 만든 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 마련된 제조물책임법에 근거해 진행되고 있다. 문제는 제품과 피해 사이의 관계를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가 실시한 피해자 조사 자료는 여기서 중요한 증거가 된다. 피해자들의 영국 소송을 담당하는 크리시넨두 무커지 변호사는 정부의 조사 보고서 같은 명확한 근거가 있기에 영국에서의 소송은 잘 풀릴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국내 변호사들의 견해는 달랐다. 법원은 소송에 참여한 피해자들의 개별 사례에 집중할 뿐 정부가 내놓은 보고서에 무게를 두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정남순 변호사는 “실무자로서 법원의 판단에 따라 사실 근거의 무게가 달라진다는 걸 느낀다. 법원이 사건을 볼 때 국가 경쟁력, 경제적 상황 등을 많이 고민한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피해자들을 위해 내놓은 대책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정부가 피해자들을 4등급으로 나누면서 3등급이나 4등급을 받은 피해자들은 소송에서 매우 불리하게 된 것.
정부는 등급을 나눌 때 ‘피해 사실과 가습기 살균제의 연관성’만을 기준으로 삼았다. 피해 정도는 기준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가습기 살균제로 가족을 잃고도 하위 등급을 받은 사람들은 소송조차 엄두를 내지 못한다.
피해 사실과 가습기 살균제 사이의 관계 외에 원고들이 규명해야 하는 일은 하나 더 있다. 바로 제품을 만든 기업의 책임 소재다. 현재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옥시레킷벤키저는 다국적기업으로 2001년 옥시를 인수했다. 한국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회사는 옥시레킷벤키저의 자회사인 것.
따라서 모기업인 옥시레킷벤키저에 책임을 물으려면 인수 과정을 살펴야 한다. 무커지 변호사는 옥시레킷벤키저가 “옥시를 인수하면서 해당 제품의 문제를 알고 있었는지 질의한 상태”라며 “인수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잘 지켰는지 한국 법에 따라서 점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 국가는 과연 위험성을 몰랐을까

학술대회 참석자들은 정부 역시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애초에 화학물질 관리를 철저히 했다면 이런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란 주장이다. 실제로 가습기 살균제로 사람이 사망한 국가는 한국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해당 제품이 다른 나라에서는 판매조차 되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한국화학연구소 부설 안전성평가연구소 김용화 전 책임연구원은 국가가 가습기 살균제 참사의 원인인 고분자 화학물질을 관리하는 데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호주, 일본 등은 일찍부터 고분자 화학물질의 안정성을 확인하는 작업을 해왔는데 어떤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우리나라는 관리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것.
특히 화학물질의 형태에 따라서 안전성을 점검하는 현행법의 허점이 비극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화학물질의 형태뿐 아니라 용도에 따라서 안전성을 다시 따져봐야 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종현 소장(네오엔비즈 환경안전연구소)은 국가가 참사가 일어나기 전 위험성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제품이 판매될 시점에 고분자 혼합물의 흡입독성평가방법이 이미 개발돼 있었고, 주요 유해 성분인 PHMB(염산폴 리헥 사매틸 렌비구아니드)의 흡입 독성 자료가 존재했다는 것.
이 소장은 “국가가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왜 적절한 조처를 하지 않았을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그때보다 지금은 사정이 조금 나아졌지만 제2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모으고 공유하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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