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엄마의 첫 버스 타기 도전기
[특별기획] 유모차 엄마도 버스 타고 싶다
아이와 외출할 때 필수품인 유모차. 하지만 정작 유모차를 들고 외출하려 하면 발목을 잡는 게 한둘이 아니다. 베이비뉴스는 2013년부터 영유아의 보행권 보장을 위해 ‘유모차는 가고 싶다’ 캠페인(http://safe.ibabynews.com)을 펼쳐왔다. 매년 가을에는 캠페인 서포터즈 소망식을 열고 있다. 올해 소망식은 10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올해 소망식을 앞두고, 유모차 이용자들이 대중교통 중에서 가장 불편을 느끼고 있는 버스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정책 대안을 모색해보는 특집기사를 연재한다.

“두렵네요.”
23일 오전 버스정류장 앞에 아이와 함께 선 염혜경(34·서울 양천구) 씨가 나지막이 말했다. ‘유모차는 가고 싶다’ 캠페인 기획기사 동행취재에 응했지만, 막상 처음으로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타려니 두려운 마음이 앞선 것이다.
염 씨는 한 달째 매주 수요일 오전, 집에서 3.5㎞ 정도 떨어진 백화점 문화센터로 11개월 된 딸 홍시온 양과 함께 상상놀이 수업을 들으러 간다. 평소에는 또래 자녀를 둔 다른 엄마들과 함께 유모차를 끌고 걸어간다. 40분에서 1시간까지 소요되는 거리지만, 유모차를 끌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불편해 운동 삼아 줄곧 걸어 다녔다.
유모차 때문에 승하차 시간이 길어지면 운전기사와 승객들이 짜증을 낼까봐, 아이가 차에서 울기라도 하면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기피했던 버스 타기였다.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유모차를 끌고 버스를 이용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용기를 내어 유모차 끌고 첫 버스타기에 도전했다.
염 씨가 버스를 타고 가는 경로는 신정네거리역에서 목운중학교까지 가는 길이다. 승하차하는 정류장을 포함해 총 9개의 정류장을 지나게 된다.
◇ 버스 타는 시간은 온몸이 긴장 상태

신정네거리역 버스 정류장은 염 씨의 집에서 1㎞ 남짓 가야 있다. 염 씨는 시온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10여 분을 걸어 정류장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안내판을 보니 타려는 버스가 6분 뒤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염 씨는 유모차 아래에 둔 아기띠를 꺼내 어깨에 둘렀다. 저상버스가 아니라 일반버스가 오면 아이를 안고, 유모차를 접어서 버스에 타야 한다.
“버스가 도착하기 전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 다행이네요. 정류장에 왔을 때 버스가 바로 오면 (아이를 옮기지 못해) 버스를 못 타요. 그냥 보내야죠.”
아기띠를 메고 몇 분이 지나자 버스가 정류소로 들어섰다. 저상버스가 아니었다. 염 씨는 마음이 바빠졌다. “타야 돼, 타야 돼!”를 외치며 서둘러 아이를 아기띠로 옮기고 유모차를 접었다. 왼쪽 어깨에는 아기 물품을 담은 가방을, 오른쪽 어깨에는 유모차를 둘러매고 버스를 향해 바삐 걸음을 옮겼다.
올라탄 버스의 맨 앞좌석에는 다행히 사람이 없었다. 염 씨는 앞좌석에 가방을 내려놓고 유모차를 의자와 운전석 사이에 기대놓았다. 그 사이 버스가 출발했고 유모차가 바닥으로 기울어졌다. 염 씨는 한 손으로는 버스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교통카드를 가방에 집어넣으면서 오른쪽 다리로는 유모차가 더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고 서야 했다.
교통카드를 가방에 쑤셔 넣은 염 씨는 유모차를 다시 벽으로 세워두고 오른쪽 다리로 받쳤다. 버스 안에는 유모차를 고정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염 씨는 운전기사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마다 온몸에 힘을 주고 중심을 잡았다. 그는 “운 좋게 앞좌석에 사람이 없어 유모차를 기댈 수 있네요”라며 웃었다.
“에이~ 지지 안 돼!”
조용히 손가락을 빨던 시온 양의 손에 뭔가 더러운 게 묻었나 보다. 염 씨는 가방에 손을 뻗어 물티슈를 찾았다. 순간 버스가 덜컹하고 흔들렸다. 가방에 있던 소지품 하나가 기어이 가방에서 튀어나와 의자 옆 틈에 처박혔다. 버스에 머무는 시간은 15분 남짓. 다리와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염 씨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은 탈 때만큼 급했다. 벨을 누를 틈이나 뒷문으로 이동할 시간은 없었다. 염 씨는 기사의 허락을 받아 앞문으로 서둘러 내렸다.
“오르거나 내릴 때가 제일 걱정되죠. 저상버스가 아닌 버스는 계단을 올라야 하니까요. 만약 계단에서 넘어지면 아이가 크게 다칠 수 있잖아요.”
일반버스의 계단 높이는 평균 35~40㎝ 정도다. 일반 건물을 건축할 때 권장되는 계단 높이인 16~17㎝보다 2배 혹은 그 이상 높다. 아이를 안고 유모차까지 들고 오르내리기에는 부담스러운 높이다.
하지만 저상버스를 이용하기란 쉽지 않다. 이날 염 씨가 이용한 버스 노선은 전체 22대 중 14대가 저상버스다. 해당 노선을 운영하는 운수회사는 "시내 중심까지 운행하는 노선이기 때문에 저상이 6대 더 많다"고 설명했다. 저상버스의 배차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회사 측은 일반버스와 저상버스가 한 대씩 번갈아가며 운행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저상버스를 타려면 더 일찍 나와야 한다"는 염 씨의 설명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저상버스를 기다렸다가 타면 시간이 예상보다 더 걸릴 수밖에 없는 것. 염 씨의 경우 걸어서 목적지에 가는 시간이나, 저상버스를 기다려서 타는 시간이나 비슷했다.
◇ 유모차를 위한 버스, 정말 안 되는 걸까


문화센터에 도착하니 아기와 엄마들이 많았다. 염 씨와 같은 수업을 듣는 이민지(23) 씨도 10개월 된 아들 장도윤 군과 함께 버스를 타고 문화센터에 왔다. 이 씨는 평소에도 자주 버스를 타는 편이다. 물론 유모차를 대신 들어줄 남편이 있을 때 주로 이용한다.
이 씨는 버스가 간혹 위험하게 운행하는 점을 가장 염려했다. 얼마 전 버스를 타고 강남역을 지나는데, 버스가 급정거해 서 있던 성인 남자가 넘어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고. 이 씨와 아이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지만, 놀란 가슴은 어찌할 수 없었다.
“정말 큰일 날뻔 했죠. 앞차가 급정거했다고는 하지만, (차의 움직임이) 너무 심했거든요.”
이 씨는 영유아를 둔 엄마들이 버스를 선호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로 거친 주행을 꼽았다. 염혜경 씨 역시 버스가 갑자기 멈추는 상황이 염려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강의를 듣고 난 뒤에는 평소처럼 걸어서 집에 갔다. 때때로 울고 찡찡대는 아이를 안아주고 먹이며 가야 하지만 버스를 탔을 때보다 마음만은 편했다.
“아이와 함께 밖에 나가려면 유모차를 끌고 갈 수 있는 곳인지, 대중교통 이용은 가능한지 먼저 알아봐요. 그렇지 않으면 가는 걸 포기하죠. 유모차를 가지고도 버스를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버스 내부가 개선되면 좋겠는데, 아이들을 위해서 (정부가) 그렇게 해주실지 모르겠어요…….”
염혜경 씨는 말끝을 흐렸다. 아이를 많이 낳아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자고 외치는 국가에 아이를 위한 지원을 바라는 게 그리도 어려운 일일까. 마지막으로 엄마로서 사회에 바라는 점을 말해달라고 했다.
“아이들이 편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국가는) 아이를 낳으라고 하면서……. 아기들은 늘어나는데 지원은 많이 부족해요. 아이들을 위한 시설과 지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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