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딸 죽인 기업은 아직도 뻔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안성우 씨, 거리로 나선 이유

‘아내를 어떻게 만나서 얼마나 사귀었더라……. 우리 둘째 별님이의 태몽은 뭐였지…….’ 4년 전 두 사람이 한꺼번에 떠난 뒤, 하루도 잊지 않고 살았는데 어쩐 일인지 좋았던 순간이 기억나질 않는다. 눈을 살짝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던 안성우(38) 씨는 허탈한 듯 웃으며 기억을 더듬는 걸 포기했다.
두 사람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만큼은 잊은 적도, 잊을 수도 없어 아직도 생생한데, 추억은 잘 떠오르지 않는다. 두 사람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뒤 안 씨의 시선은 오로지 두 사람의 죽음에만 고정돼 있었다.
죽음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둘째 딸 별님이가 아내 뱃속에 자리 잡은 7개월째를 맞던 2011년 1월, 아내는 친정으로 내려가 출산을 준비하기로 했다. 아내를 데려다주기 전 잠깐 낮잠 자던 안 씨를 거실에 있던 아내가 갑자기 불렀다. 전에 들어본 적이 없는 갈라진 목소리. 아내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응급실에 실려 간 아내는 바로 산소호흡기를 착용했고, 맥박이 줄곧 불규칙했다. 엑스레이도 찍고 심장 초음파도 찍어봤지만 원인을 알 수 없었다. 의료진은 기계가 문제인가 싶어 맥박을 확인하는 기계만 세 번 교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모가 위급하다며 병원은 별님이를 출산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세상으로 나온 아이는 숨을 쉬지 않았다.
아이가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상태도 악화됐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파랗게 질린 얼굴로 중환자실로 옮겨졌고, 3일 뒤 세상을 떠났다. 병원에 입원한 지 10여 일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사인은 급성호흡부전. 병명은 없고 증상만 기록에 남았다.
◇ 사건이 터진 지 4년…가해기업 사과 안 해

“서울아산병원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폐 손상으로 산모 4명이 연이어 사망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내를 떠나보내고 몇 개월이 지났을까? 안 씨의 귀에 이상한 뉴스가 들렸다. 급성호흡부전 증상으로 산모들이 잇따라 입원하고 사망했다는 보도였다. 아내와 너무도 흡사한 증상에 안 씨는 불길한 느낌이 들었지만, 억지로 연관성을 찾는 것 같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그해 8월 31일, 정부는 “가습기살균제가 산모들의 목숨을 앗아갔을 수 있다”는 내용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피해자 사례를 접수하기 시작했다.
안 씨는 아내가 죽기 전 그가 직접 사온 가습기살균제가 불현듯 떠올랐다. 집을 뒤졌더니 쓰다 남은 가습기살균제가 나왔다. 겨울 황사가 심했던 2010년 말 아내를 위해 그가 사온 가습기살균제였다. 아내는 3~4개월 동안 가습기 살균제를 1통 반 정도 사용했다.
하지만 안 씨는 바로 신고할 수 없었다.
‘내가 죽였어. 내가 가습기살균제 사 왔잖아!’
마음 속에서 들리는 비난에 안 씨는 신고하기 겁이 났다. 죄책감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일주일간을 망설이다가 신고를 결심했다.
신고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아내의 이름, 주민등록번호를 다시 보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죽음의 순간을 되돌리고 반복해서 적고 말해야 했다. 그래도 희망이 있어서 고통을 참아냈다. 정부가 나서서 사건의 원인을 밝혀냈으니, “안전하다”며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했던 회사가 처벌을 받으리라 기대한 것이다.
하지만 기대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분노로 바뀌었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를 만든 기업을 대상으로 허위?과장 광고의 책임을 물어 과징금을 부과했을 뿐 다른 처벌 절차는 밟지 않았다. 가해자로 지목된 기업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2012년부터 개인적으로 형사?민사 소송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피해자들이 묵묵부답인 정부와 검찰을 향해 대답 없는 외침을 반복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고소장이 접수돼도 검찰은 수사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2013년에는 질병관리본부의 폐손상조사위원회가 피해자 판정을 시작했다는 이유로 기소를 중지했다. 이 탓에 민사재판도 중단됐다.
이즈음 안 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을 떠나 부산으로 내려갔다. 2011년 직장까지 그만두고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에서 활동한 지 1년여 만이었다.
그가 떠난 것은 큰아들 때문이었다. 안 씨는 아내와 둘째가 세상을 떠난 뒤 죄책감에 아이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못했고, 모임 활동을 하고 나면 온갖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몰려들어 아이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아들은 어느새 어린이집에 다녀야 하는 나이가 됐다. 큰아들도 가습기살균제 탓에 폐의 하부가 손상된 채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아들의 곁에 있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씨는 다시 직장을 구하고 아들을 키우며 시간을 보냈다.
◇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처벌, 이대로 끝나면 안 돼

그로부터 2년 정도가 지난 12월 7일, 그는 가습기살균제를 판매한 회사 중 하나인 옥시레킷벤키저 앞에 다시 섰다. 2인용 텐트를 두 개 펼쳐 두고, “가습기살균제 살인기업 구속 처벌하라! 가습기살균제 사용시민 신고하세요!”라고 쓰인 펼침막을 내걸었다.
힘들고 지쳐서 떠났던 그가 다시 돌아온 건 이대로 사건이 무마될까 걱정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오가는 진동과 소음이 피부과 귀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찬 바닥에 몸을 누이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높은 빌딩 아래서 까만 밤을 보낼까.
“과연 해결될 수 있을까 싶어요. 그런데 해결돼야 큰아이가 컸을 때… 엄마가 피해를 본… 그… 휴… (사건이 해결돼야 아이에게) 사죄가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진척은 없고… 그래서 힘들어요.”
안 씨는 정부가 피해자 접수를 올해로 중단할까 우려한다. 정부는 2013년 국회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구제 결의안이 통과된 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피해자 정부지원 사업을 시행했다. 1?2차 피해자 접수 및 조사 결과 발표는 모두 완료됐고, 현재는 3차 피해자 접수가 진행 중이다. 접수는 이달 31일이면 마감된다. 3차 이후에 피해자 접수 계획은 아직 없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3차 피해자 접수가 종료되기 전 더 많은 피해자가 신청할 수 있도록 접수 소식을 알리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찾기 전국순회 환경캠페인’을 지난 10월 진행했다.
부산에 있던 안 씨가 다시 서울로 온 것도 이 캠페인 덕분이었다. 안 씨는 캠페인을 하러 부산까지 내려온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회원과 시민단체 사람들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까지 함께 행진하자고 제안했고, 안 씨와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은 자전거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왔다.
두 사람은 올라오는 길에 피해자가 사는 지역 곳곳을 들렀다. 청주, 대구 등에서는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의미로 지방검찰청을 방문했고, 세종시에서는 환경부에 들러 담당 과장을 면담했다. 그렇게 10박 11일을 꼬박 채우고 서울에 도착했다.
그리고 서울에 올라온 지 일주일 만에 옥시레킷벤키저가 입주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의 한 빌딩 앞에 텐트를 쳤다. 안 씨는 7일부터 12월이 끝날 때까지 매주 월?화 양일간 일인 시위와 촛불집회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정부가 피해자 신고 접수 기간을 연장하거나 모집 기간 제한을 폐지하고, 가해기업을 처벌하길 촉구하는 시위다.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많이 기억해주실 때 힘이 나요. 그런데 대부분이 사건이 잘 정리된 줄 아시더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해기업은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가습기살균제에 들어간 화학물질을 넣은 다른 제품을 항균이라 이름 붙여 지금도 팔고 있죠.
그래서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거대 기업을 상대로 시민이 의사를 전달할 유일한 방법은 불매운동이에요. 한국 국민 100명을 죽이고도 무책임하고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기업에 시민의 뜻을 보여주셨으면 합니다.”
8일 옥시레킷벤키저 앞에서 만난 안 씨는 “시민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며 다시 펼침막을 들고 텐트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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