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선이 남편 말고, 내 남편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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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실 기자
  • 승인 2016.01.13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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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네 명이 토로한 한국에서 결혼하기 어려운 이유

【베이비뉴스 김은실 기자】


청년 열 명 중 서너 명은 결혼을 포기하는 시대다. 사진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출연진 모습. ⓒTVN
청년 열 명 중 서너 명은 결혼을 포기하는 시대다. 사진은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출연진 모습. ⓒTVN


정환이냐, 택이냐? 요즘 핫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여주인공의 남편이 누구인지를 두고 청년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정작 자신의 배우자가 누가 될지는 기대하지 않으면서.


지난해 10월 온라인 취업 포털사이트인 사람인이 20~30대 1675명을 대상으로 “귀하는 N포 세대입니까”라고 설문한 결과 69%가 “그렇다”고 답했으며 이 중 “결혼을 포기했다”는 응답이 56.8%(복수 응답)로 1위를 차지했다. 청년 열 명 중 서너 명은 결혼하고 싶어도 드라마에서 결혼을 보는 데에 만족하는 셈이다.


왜 이렇게 된 걸까. 20~30대 미혼 남녀 4명을 이달 초에 각각 만나 ‘우리나라에서 결혼하기 어려운 이유’를 주제로 이야기를 들었다. 4명을 따로 만나 대화했지만, 놀랍게도 지적하는 지점은 같았다. 인터뷰 내용을 엮여 대화 형식으로 정리했다.


* 인터뷰 참가자


남자 1호 : 36세, 직장 생활 9년 차, IT업계 종사, 경기도 거주
남자 2호 : 34세, 직장 생활 7년 차, 제약회사 종사, 서울 거주
여자 1호 : 32세, 직장 생활 8년 차, 금융업 종사, 서울 거주
여자 2호 : 29세, 직장 생활 6년 차, 출판업 종사, 서울 거주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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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혼부부의 보금자리, 어디 없나요?


베이비뉴스 : 결혼이 부담스러운 이유가 뭔가요?


여자 2호 : 저는 돈 때문에 결혼이 꺼려져요. 1인 가구로 생활을 지탱하기도 힘든데, 결혼하면 집을 구하면서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을 져야 하잖아요. 일산‧파주‧고양 같은 경기 북부 지역에서 14평짜리 집을 사는데도 1억 이상을 대출했다고 들었어요. 그걸 평생 갚아 나가는 게 얼마나 부담이 될까요.


부모님이 다투시는 가장 큰 이유가 돈이었어요. 경제력이 가정생활을 하기에 벅차니까 감정을 조절하기 힘드셨던 거죠. 그 모습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결혼해서 돈 문제로 고통받을 걸 생각하면 괴로워요.


저는 아직 학자금 대출도 남았어요. 남편이랑 같이 돈을 벌고, 같이 빚을 갚는다고 해도, 빚으로 나가는 돈은 어마어마할 거예요. 여기에 생활비까지 생각하면……. 결국 결혼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자 1호 : 서울에서 살기 괜찮은 지역에 전세로 집을 구하려면 3~4억 원이 들고, 사려면 5~6억 원이 들어요. 연봉을 7000만 원 정도 받는다고 가정해도 부담되는 규모죠. 게다가 아이들을 낳아서 유치원에 보낸다고 하면 당장 한 달에 100~200만 원은 깨져요. 정말 주변의 도움을 받지 않고 결혼해서 사는 게 쉽지 않아요. 제 생각으로는 연봉이 1억 원은 넘어야 아이를 부담 없이 키울 수 있는 것 같아요.


남자 2호 : 지금 전세금 2억 원인 17평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1억은 제가 마련했고, 1억은 대출받았죠. 내년 5월이면 대출금을 다 갚아요. 혼자 살기엔 괜찮은 조건이지만, 결혼하면 더 넓은 곳으로 가려고 해요.


그런데 서울에서는 2억 원으로 둘이 살 만한 전세 주택은 찾기 어려워요. 같은 돈으로 광주나 전주로 내려가면 좋은 아파트 살 수 있는데 말이죠. 서울에서 신혼집을 구하려면 봉급은 뻔하니 어차피 대출을 받아야 해요.


남자 1호 : 저도 결혼하면 신혼집은 전세로 구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회사가 수도권에 밀집해 있고, 주택 수요가 많으니 가격이 높아요. 저는 분당에서 일하는데, 회사 근처에서는 집을 얻을 수가 없었어요.


◇ 어르신들, 우리 그냥 놔두면 안 될까요?


베이비뉴스 : 말씀하신 것들을 정리하면 경제적인 이유 중에서도 신혼집을 구해야 하는 게 역시 가장 큰 부담인 모양이네요.


남자 1호 : 사회 통념상 결혼할 때 남자가 집을 구해야 한다고 하니까 남자들이 더 그런 것 같아요. 결혼 당사자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가족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남자가 집은 해야 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면 준비 과정에서 문제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런 부담이 있지는 않지만, 결혼 상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잖아요. 상대의 생각이나 사회 통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죠.


여자 1호 : 저는 집값과 혼수를 남자와 여자가 절반씩 부담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결혼은 개인 대 개인만의 행사가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행사다 보니 문제가 생기더라고요.


남자 2호 : 부모가 훈수를 두면서 문제가 생긴다는 점에 공감해요. 저는 여자 친구의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5년 만난 여자 친구와 결혼을 준비하다가 깨졌거든요. 여자 친구가 아직 학생이었는데, 여자 친구의 경제권을 부모님이 쥐고 흔들면서 결혼을 반대하니까 극복하기 어려웠어요. 제가 집도 구하고, 여자 친구의 학업을 뒷바라지하겠다고 했는데도 안 되더라고요.


결국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면 결혼할 때 부모의 영향력 아래에 있을 수밖에 없는데……. 요즘에는 독립하기 너무 어렵잖아요.


남자 1호 : 요즘에 취직이 어려워서 사회 진출이 늦어지니 더 그런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해도 바로 취직할 수 없고, 스펙을 쌓아 취업할 여건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군대까지 다녀오는 남자들은 20대 후반부터 돈을 벌어요. 빨라도 28세부터 돈을 버는 거죠. 결혼적령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돈을 버는 셈이니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결혼할 수 없죠.


앞에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대학등록금도 문제예요. 장학금을 받거나 부모의 도움을 받지 않는 사람은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한 학기당 등록금이 300~500만 원이라고 보면, 휴학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해도, 학원에 다니면서 스펙도 쌓아야 하니까… 4년이면 4000만 원을 부담해야 해요. 그 돈을 빚으로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거죠.


빚을 다 갚고 생활이 안정기 접어들려면 30대 중반이 될 수밖에 없어요. 연봉이 아주 높은 기업에 다니지 않고서는 결혼 준비가 늦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여자 2호 : 그런데도 주변에서 결혼 여부를 두고 너무 많이 개입해요. 결혼 늦게 하거나 안 한다고 하면 하자가 있어서 못하는 것처럼 여겨요. 자기 생활에 집중하고 싶어서 결혼 안 하는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데 “결혼 왜 못해 문제 있어?” 이런 식으로 말해요. 두 사람이 만나서 한 가정을 꾸리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고, 인생의 필수 코스처럼 말해서 부담스러워요.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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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혼한 여자가 마주치는 전근대 풍경


여자 1호 : 저도 꼭 결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많은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지만, 육아나 가사노동을 분담할 때는 아직 남녀가 평등하지 않은 게 사실이니까요. 결혼하면 가사노동과 육아를 여성이 대부분 부담하게 되고, 그러면 결국 사회생활에 영향이 생겨요. 결혼해서 전업주부로만 살면 몰라도, 똑같이 계속 일하면서 경력을 쌓는 상황이면 희생을 감내할 필요가 있을까요? 제가 사랑하는 남자라고 해도 가부장적인 사고방식으로 일방적인 헌신을 요구하면 결혼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여자 2호 : 일찍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똑같이 직장을 다녀도 여자가 가사노동을 더 많이 하더라고요. 남녀가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뭐랄까…부인을 자신의 또 다른 엄마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여성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고요. 미성숙한 개인의 문제라고 볼 수도 있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남녀를 불평등하게 여기는 인식이 뿌리 박혀 있는 것 같아요.


똑같이 공부하고 노력해서 일하는데 여성은 낮은 수준의 인력으로 취급을 받아요. 이런 문제를 여성들도 인식하지 못하고요. 제 여동생도 남자가 돈을 더 받아야 한다고 말해요. 육체노동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사무직에서 성별에 따라 우열을 말할 수는 없어요. 누가 일을 효율적으로 하느냐를 두고 이야기를 해야죠. 단지 남자라고 해서 월급을 더 줘야 한다는 논리는 말도 안 돼요.


여자 1호 : 요즘에는 소득이 높은 여성도 있어요. 그래서 결혼 비용을 똑같이 부담하고 경제적으로 평등하게 결혼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런 분들도 결혼 생활을 몇 년 하고 나면 하는 말이 “결혼할 때 똑같이 부담해도 계좌만 평등하고, 결혼 생활은 옛날과 똑같다”는 거예요.


시댁 어른들이 ‘남자가 집을 구하고, 그만큼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여자가 집값을 똑같이 부담해도 좋지 않게 보는 거죠. “시댁에 돈이 없는 게 아닌데, 지가 좋아서 집을 그렇게 해 왔다, 시댁을 우습게 본다” 이런 말을 듣더라고요. 또 시댁은 필수로 방문하면서 친정 방문은 선택이에요. 문화를 개선하지 않고 경제적 분할만 강조하면 소용이 없어요.


젊은 사람들의 연애와 결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젊은 사람들의 연애와 결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 결혼해도 저녁이 없는 삶


남자 2호 : 이런저런 조건을 다 극복하고 결혼하려면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런데 거기에 시간을 투자하기엔 회사에서의 경쟁이 너무 치열해요.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고 싶고, 회사 내 경쟁에서 좋은 성과를 거둬서 배우자로서 더 좋은 조건을 갖추고도 싶어요. 하지만 이런 상황을 회사에서 봐주지는 않잖아요. 아직 사랑하는 사람이나 가정이 없으니 제 삶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만 커져요. 사랑하는 사람을 찾으려고 일하는 건데 일 때문에 사랑을 찾지 못하는 상황이죠.


남자 1호 : 정말 일이 너무 많아요. 개인 시간이 없어요. 사람이 근무 시간 외에 시간이 생기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거나 개인적인 일을 하는 데에도 시간을 보내야 하잖아요. 그러니 연애할 시간 자체가 줄어들어요. 이 짧은 시간 속에서 얼마나 상대방과 깊게 연애할 수 있을까요.


결혼한 이후에 가정생활을 꾸려갈 때 남성도 육아하고 가사를 부담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매일같이 야근하고 주말에도 근무하니까요. 이런 환경에서 일과 가정생활의 균형을 얼마나 맞출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남자 2호 : 저는 아침 7시 30분에 출근해서 평균 저녁 9시에 퇴근해요. 사실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죠. 결혼해도 평일에 아이는 돌보지 못할 거예요. 육아는 주말에나 할 수 있겠죠. 아이가 생기면 일주일에 한 번은 정시에 퇴근해서 아이를 볼 생각이긴 해요. 그래도 갑자기 회식이 잡힌다든가 하면 어렵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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