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엄마는 오늘도 서서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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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우리 기자
  • 승인 2017.06.07 2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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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는 앉지 못하는 지하철 임신부 배려석

【베이비뉴스 심우리 기자】

지하철 1호선 열차 안 임신부 배려석에 앉은 중년여성.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단 임신부는 자리를 양보해 학생의 배려로 일반석에 앉았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하철 1호선 열차 안 임신부 배려석에 앉은 중년여성. 임산부 배지를 가방에 단 임신부는 자리를 양보해 학생의 배려로 일반석에 앉았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승객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현재 분홍색 좌석, 임신부 좌석에 앉으신 분들은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임신부가 아닌데 임신부 좌석에 앉으신 분들은 일어나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퇴근하는 임신 24주차 장영화(가명, 33) 씨는 얼마 전 열차에서 들려오는 기관사의 안내 방송에 깜짝 놀랐다. 통상적인 임신부 배려석 안내 방송과 달리 “임신부 좌석에서 일어나 달라”는 기관사의 방송에 장 씨는 귀를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란 것은 이를 들은 승객들의 태도였다. 평소 같으면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졌을 일반 승객들이 기관사의 안내 방송에 따라 좌우를 살피며 적극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임신부 배려석에 앉은 한 남성이 민망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통쾌함까지 느꼈다.

장 씨는 “보통 임신부 배려석에 대한 안내방송은 임신부를 배려해달라는 기계적인 방송이 대부분인데 기관사의 직접적인 멘트에 승객들이 반응하는 걸 보고 놀랐다”며 “임신 기간 동안 배려다운 배려를 받지 못해 개인적으로 즐거운 에피소드였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임신부를 배려하지 않으면 이런 작은 배려에도 감동할 수 있는지 씁쓸하더라”고 말했다.

◇ 임신부 배려석 4년…정착은 아직

최근 정부는 심각한 저출산 현상을 막아보겠다며 임신부를 위한 다양한 배려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지만, 임신부들은 출퇴근길 앉을 자리 하나 양보받기 힘든 게 현실이다. 임신부들이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만 하더라도 ‘임신부 배려석’이 마련돼 있지만 정작 임신부들의 이용하기 쉽지 않다.

자리가 비어있는 경우도 드물고, 임신부 배려석을 차지하고 있는 일반 승객 대부분이 잠을 자거나 스마트폰을 보느라 임신부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임신부가 대중교통 이용 시 배려 받을 수 있도록 제작된 ‘임신부 가방고리’도 배포하고 있지만 그마저도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임신 19주차인 임승연(가명, 27) 씨는 “매일 2시간 넘게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고 있지만 임신부 배려석에 앉아본 적 없다”며 “배려석이 아니라 지정석이라면 당당히 비켜달라고 하겠지만 이름처럼 정말 ‘배려석’이다보니 아무리 힘들어도 비켜달라고 하기 어렵다”고 호소했다.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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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는 2013년부터 수도권 지하철 1~8호선에 기존 노약자석과 별개로 차량 1대당 2좌석씩 총 7140개의 임신부 배려석을 마련했다. 이후 민자사업자가 운영하는 9호선도 총 328개의 임신부 배려석을 도입하면서 서울에만 총 7468개의 임신부 배려석이 운영되고 있다.

도입 당시에는 좌석 위쪽에 ‘임신부 먼저’라는 스티커를 붙여 임신부 배려석이라고 표시했지만 승객이 자리에 앉으면 잘 보이지 않다는 의견이 많아 2015년 7월부터 좌석과 등받이, 바닥까지 핑크색으로 바꿔 표시해 임신부 배려석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또 차내 임신부 배려석 안내방송을 늘리고 임신부들의 지하철 이용편의 증진을 위해 다양한 홍보 활동도 전개 중이지만 임산부 배려석에 강제성을 부여할 수 없는 만큼 ‘시민의식’에 기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러다보니 임신부들이 느끼는 불편은 여전하기만 하다. 임신부들이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 카페나 SNS에는 임신부를 배려하지 않는 임신부 배려석에 대한 글만 봐도 알 수 있다. “입덧이 심해 임신부 배려석에 앉은 아주머니에게 자리 양보를 부탁했더니 ‘유난떤다’는 식으로 말하며 일어나더라”, “임산부 배지를 보더니 양보는커녕 자는 척 하는 아저씨를 보고 정말 어의가 없었다”, “옆에 빈 좌석이 있는데도 굳이 임신부 배려석에 앉는다. 임산부 배려석인지 조차 모르는 듯하다” 등의 불만들이 하루에도 몇 십개씩 올라올 정도다

◇ “지방 임신부 배려석, 수도권보다 이용 더 어려워”


하지만 이는 비단 수도권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는 인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지방 대도시의 지하철을 이용하는 임신부들 역시 임신부 배려석 이용에 많은 어려움을 호소한다.

지방 지하철을 이용하는 임신부들 역시 임신부 배려석을 이용하기 어려운 가장 큰 문제로 임신부 배려석에 대한 인식 부족을 꼽는다. 게다가 지역 특성상 임신부보다 노인공경에 대한 인식이 강하다보니 임신부 배려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승객들이 많아 어려움은 배가 된다.

광주로 이사간 지 4개월 됐다는 임신 37주차 김시진(가명, 24) 씨는 “임신부 배려석이 교통약자석 바로 옆에 있어 선뜻 앉기가 쉽지 않다”며 “서울보다 많이 붐비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노인분들 이용이 많아 자리가 비어있어도 눈치를 보게 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또 부산에 사는 임신 20주차 윤선영(가명, 38) 씨는 “출퇴근 시 버스를 타면 더 빠르지만 운전기사들이 난폭운전을 할 때가 많아 지하철을 이용한다”면서 “수도권보다 임신부 배려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임신부 배려석은 대부분 노인분들 지정석이다. 얼마 전에는 만삭 임신부가 앞에 서있는데도 무시하는 아저씨를 봤는데 내가 더 화가 나더라”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서울, 인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전국 지하철 임신부 배려석 현황. 김윤영 기자 ⓒ베이비뉴스
서울, 인천, 대전, 광주, 대구, 부산 등 전국 지하철 임신부 배려석 현황. 김윤영 기자 ⓒ베이비뉴스


하지만 임신부들이 몸소 체감하는 어려움과 달리 각 지역별 임신부 배려석에 대한 인프라는 이미 구축이 끝난 상태다.

현재 각 지역 지하철에서 운영 중인 임신부 배려석은 ▲인천 692석 ▲대전 968석 ▲광주 184석 ▲대구 654석 ▲부산 3584석 등이다. 수도권과 꽤 차이가 나지만 노선이 적은 것에 비해 꽤 높은 보유율을 나타내고 있으며, 광주 지하철 외에는 교통약자석과 별도로 임신부 배려석이 운영되고 있다.

특히 부산도시철도 3호선 전동차에는 비콘을 활용한 ‘양보 신호등(Pink Light)'을 시범 설치할 정도로 임신부의 지하철 이용 증진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부산도시철도 관계자는 “지역특성상 임신부 배려에 대한 시민 인식은 부족한 편이지만 시민 배려문화 정착을 위해 지속적으로 홍보하고 개선해나가고 있다”고 전했다.

◇ 자리 하나 배려받지 못하는 현실…‘인식의 개선’ 필요해

결국 임신부들이 임신부 배려석을 마음 편히 이용하기 위해서는 임신부를 배려하는 사회적인 인식 개선이 급선무라고 임신부들은 입을 모았다.


임신 9주차인 지예주(가명, 35) 씨는 “임신부 배려석은 나같은 초기 임신부에게 꼭 필요한 공간이다. 임신부를 배려하는 인식이 빨리 바뀌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대전에 살고 있는 지유 엄마 김희경(가명, 40) 씨는 “아이 임신 때 조산기가 있어 고생이 심했다. 몸이 안좋아 힘들었을 때 많은 분들에게 배려 받아 건강한 아이도 출산할 수 있었다”며 “임신부 배려 문화가 정착돼 더 많은 임신부들이 더욱 안전하게 아이와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도 임신부들이 배려 받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정착돼야만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인식 변화가 자리 잡는다고 지적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강민정 부연구위원은 “배려에 대한 사회적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여전히 저조하다”며 “사회적 배려가 생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임산부 배려석에 대한 논의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김진석 교수는 “임신부 배려석은 배려가 결여된 사회 속에서 임신부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임신부는 당연히 사회가 보호하고 배려해야 할 존재인 만큼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인식 변화의 필요성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 관계자는 “교통약자석 역시 처음에는 왜 비워놓아야 하는지 논란이 많았지만 이제 비워놓는 것이 당연하게 됐다”며 “임신부 배려석도 마찬가지다. 임신부 배려석의 실효성을 논하기 전에 일반인들도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홍보와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전했다.

지난해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임신부의 날'을 맞아 임신부 배려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제작한 다양한 배지의 모습.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해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임신부의 날'을 맞아 임신부 배려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제작한 다양한 배지의 모습.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초기 임신부 배려 캠페인] 베이비뉴스는 "배가 나오지 않아서 더 배려가 필요해요" 초기 임신부 배려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임신 초기는 가장 배려가 필요한 시기이지만, 우리 사회의 인식은 아직 부족한 실정입니다. 해피빈X포스트 공감펀딩(https://goo.gl/tPzB7h)을 계기로 초기 임신부 배려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이번 캠페인은 한국솔가와 함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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