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양치를 하고서도 불편하다며 투정을 부리는 빈이의 입을 쫘악 벌려 보았습니다. 오른쪽 아래 어금니 두 개가 거의 맞닿았는데, 공교롭게도 그 사이에 음식물이 끼었습니다. 칫솔로도 치실로도 나오지 않아, 치간 칫솔로 한참을 낑낑거린 후에야 겨우 꺼낼 수 있었죠. 그런데 놀랍게도 이물질이 빠져나오자 어금니 가장자리 한쪽이 살짝 떨어져 나간 모양이 보였습니다.
다음날, 가족 모두가 다니는 치과에 갔습니다. 빈이도 영유아 건강검진 때 이미 한 번 갔던 곳이었지요. 물론 당시 심각하게 난리를 쳤기에,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연습을 하고, 꼭 진료해야 한다고 강권과 부탁, 애원 사이를 오가며 다짐을 받았습니다. 접수할 때까지는 예상대로 좋았습니다. 하지만 진료실로 들어가는 순간 얼굴은 벌써 울먹이기 시작했죠. 누군가 스치기라도 하면 '펑~' 하고 울음보가 터질 것 같았습니다. 결국 마스크를 쓴 의사 선생님이 다가오자 ‘엉엉~’ 울음보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내도 의사 선생님도 포기하지 않고 검진을 완료했습니다.
충치 두 개를 확인했고, 아마 그동안 아팠을 것 같다는 진단과 함께, 치료는 어린이 치과에서 받기를 권해주시더라고요. 아무래도 진정이 되지 않아 일반 치과에서의 진료는 무리라고 말이죠.
예약을 하고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어린이 치과에 갔습니다. 역시 울음보가 터지긴 했지만, 다행히 사진도 찍고, 검진도 세밀하게 해냈답니다. 최종 결과는 왼쪽 두 개, 오른쪽 두 개. 총 네 개의 어금니에서 충치가 생겼답니다. 두 개는 신경치료를 할 상황으로 판단되며, 울면 치료가 어려우니 가수면 상태에서 진행하는 진정요법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더라고요. 진정요법은 소위 수면 치료로 불리는 것인데, 부작용에 대한 여러 사례를 인터넷에서 접하니 털컥 걱정되더라고요. 또 치료 중 아이가 갑자기 몸을 움직여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까 봐 움직임 방지포로 아이 몸을 감싼다고 하는데, 이를 보니 아이가 더 애처롭게 여겨지더라고요.
그래서 웃음 가스 치료를 해볼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울 것만 같아 망설여집니다. 치료하는 시간을 견뎌낼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고, 한 번 실패한 후 다시 수면 치료를 시도하면 트라우마가 생겨 치과로 입장하기도 힘들 것 같았거든요.
그러다 번쩍! 아내는 며칠 전 빈이가 “예은이가 이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왔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리고는 “빈아~ 우리 이에 매니큐어 칠하러 갈까” 하고 물었습니다. 화장품 놀이를 좋아하는 빈이는 덥석 “나는 무지개 매니큐어로 칠할래” 그러지 뭐예요. 그렇게 자기가 직접 매니큐어를 바르기 위해 치과에 가겠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제 입을 쫙 벌려보더니 "아빠처럼 황금빛 매니큐어를 칠할까"하며 여유를 부리기도 합니다. 참 놀랍지요.
한 달이 지난 지금 빈이는 세 번의 웃음 치료를 무사히 끝내고, 은빛 매니큐어가 칠해진 두 개의 치아를 갖게 됐습니다. 물론 어린이 치과에는 누워서도 뽀로로를 볼 수 있는 모니터가 있고, 치료가 끝나면 반지나 스티커와 같은 선물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매력적인 유인책이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강력한 동기부여는 '치아에 매니큐어를 칠하러 간다'는 상상이었습니다.
치과에 대한 두려움을 겪고 있는 아이라면, 저희와 같은 방법을 사용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혹 매니큐어에 전혀 관심이 없는 아이라면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우리 충치 벌레 잡으러 갈까” 하고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시겠죠? 평소 아이들의 관심 분야를 파고들다 보면 짠하고 눈앞에 신비로운 해법이 나타날지도 모릅니다. 유치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처럼 말이죠.
*칼럼니스트 윤기혁은 딸이 둘 있는 평범한 아빠입니다. 완벽한 육아를 꿈꾸지만 매번 실패하는 아빠이기도 하지요. 육아하는 남성, 아빠, 남편으로 살아가며 느끼는 은밀한 속마음을 함께 나누려 합니다. 저서로는 「육아의 온도(somo, 2014)」, 「육아살롱 in 영화, 부모3.0(공저)(Sb, 2017)」이 있으며, (사)함께하는 아버지들에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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