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아이는 요즘 궁금한 게 많다. 말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건 뭐지?”
“엄마, 저건 왜 그래?”
엄마의 혼잣말에도 “엄마, 왜요? 왜 그래요?”라며 궁금해 한다. 궁금한 것의 답을 찾으면 스펀지처럼 그대로 흡수한다. 흡수한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아이를 보면서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수십 번 한다.
특히 규칙이나 약속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하고, 지켰을 때 “난 형아니까!”라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보면 잘 자라고 있구나 싶어 감사하고 든든하다. 아이와 외출하면 아이에게 가르쳐줬던 공중도덕이나 교통법규를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길 건너기, 쓰레기 버리지 않기, 마트에서 계산하고 물건 뜯기, 사람들에게 인사하기 등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그때마다 아이는 나름의 인내심을 갖고 규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의 노력에 응원은 못해줄망정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발생할 때가 있다. 아이에게 수십 번씩 지켜야 한다고 강조해왔던 규칙이나 약속을 너무나 쉽게 어기는 어른들을 마주할 때가 그렇다.
어제였다. 어린이집을 마친 아이와 마트와 빵집에 가는 길이었다. 횡단보도를 두 번씩, 왕복 네 번을 건너야 하는 코스. 한 손은 첫째를, 다른 한 손은 둘째를 태운 유모차를 잡고 가는데 횡단보도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첫째의 인내심 싸움이 시작됐다.
“건너고 싶어! 빨리 마트 갈래요!”
“빨간불엔 건너면 안 돼. 초록불에 건너는 거지? 조금만 기다리자.”
“싫어! 건너고 싶어!”
차도로 뛰어가려는 아이를 힘껏 잡고 몇 번을 반복해 말했다.
“빨간불엔 절대 건너면 안 돼. 빨간불일 때는 차들이 건너는 거야. 우리는 초록불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해. 그렇지 않으면 차와 한결이가 쿵~ 하고 부딪힐 수 있겠지? 조금 더 기다리자. 기다리면 초록불로 바뀔 거야.”
아이는 가만히 생각하더니 “맞아요. 빨간불엔 건너면 안 돼! 초록불에 건너! 노란불은 조심!” 하며 조금 차분해졌다. ‘이젠 정말 말이 잘 통하는구나’ 뿌듯한 마음이 드는 찰나, 아뿔싸! 한 아주머니가 버젓이 빨간불에 길을 건너는 게 아닌가.
“엄마, 엄마! 빨간불인데 아줌마가 건너요!”
우리 동네는 네 개 횡단보도가 동시에 켜지기 때문에 기다림의 시간이 배로 길다. 그렇다고 그 잠깐을 못 기다리고 길을 건너다니. 나 혼자 있었으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네 살 아이가 천진난만한 눈으로 다 지켜보고 있다. 건너면 절대 안 된다고 단단히 교육시켰는데, 괜히 부끄러워졌다. 근데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저씨도 건너가는 게 아닌가. 하아.
“안 돼! 안 돼! 빨간불엔 건너면 안 돼! 경찰아저씨한테 혼나요!”
어떻게 설명해주나 난감해하고 있는데, 아이가 아저씨를 향해 대뜸 소리쳤다. 두 손가락으로 엑스(X) 자를 만들며 아저씨 뒤를 향해 큰 소리로 말하는 아들. 기특한 모습에 괜히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한결아. 아저씨, 아줌마가 빨간불에 건너면 안 된다는 걸 모르는 것 같아. 빨간불에 건너는 사람에게는 ‘건너면 안 돼!’라고 말해주자. 알았지?”
“네. 빨간불엔 안 돼요!”
1, 2분이 지났을까? 초록불이 켜졌다. 아이는 “좌우를 살피고 손을 들고 건너요”라고 혼잣말을 하며 손을 들고 길을 건넜다. 그것도 두 손 번쩍! 언제 이렇게 컸을까 대견스러우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에게 1, 2분의 기다림은 어른의 시간보다도 더 길 것이다. 그것도 과자를 사러 가는 길이었기에 더더욱 길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런데도 네 살 아이는 기다렸고 교통법규를 지켰다. 아이보다 열 배가 넘는 인생을 살았을, 우리가 늘 본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은 지키지 못했다. 우리 어른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아이에게는 꼭 지키라고 가르쳐야 할까? “왜 어른은 되고, 아이는 안 돼?”라고 아이가 되물을까봐 걱정이 앞섰다.
사실 엄마가 되고 난 후 말과 행동을 더 신경 쓰게 된다. 내가 하는 말, 행동, 내가 주는 사랑 그대로 아이는 받아들이고 그대로 표출할 것이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버릇이 없어, 우리 때와는 달라”라고 말하기 전에 본받을 만한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조금 바쁘더라도, 조금 귀찮더라도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지킬 건 지켜야 하지 않을까? 어른이라면 말이다.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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