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용재, 인터뷰를 하다 1-2
[전학생은 명탐정] 용재, 인터뷰를 하다 1-2
  • 소설가 나혁진
  • 승인 2018.12.24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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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2장

우리는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나무 벤치로 갔다. 서너 명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마주 보고 있으며, 두 의자 중간에는 길쭉한 테이블까지 놓여 있는 곳이라서 영지가 수첩에 인터뷰 내용을 적기도 좋았다. 똘망똘망한 영지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괜스레 떨려 고개를 숙였다.

“어디서부터 말할까?”

“처음부터. 그날 밤 있었던 일을 하나도 숨김없이 다 얘기해줘.”

- 지지난 주 금요일 밤. 그날은 내가 기억할 수도 없는 옛날에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 제사가 있는 날이었다. 할머니 집에 온 친척들이 다 모여 전도 붙이고 국도 끓이는 등 이따 밤에 지낼 제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나를 비롯한 아이들은 그저 사촌들끼리 모여 노는 게 신나서 망아지처럼 뛰어다니기만 했다.

“참, 너희 집도 제사 지내니?”

“우리 집은 교회 다녀서 추도예배 드려. 쓸데없는 것 물어보지 말고 얘기나 계속해줄래?”

“아, 알았어.”

- 여기서 잠깐 친척들을 소개하자면, 우리 아버지는 막내아들이고 자식은 나 하나뿐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큰아버지는 아들만 둘인데, 첫째는 중학교 2학년 용주 형이다. 용주 형은 중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우리하고 잘 놀지 않는다. 제삿날도 스마트폰에 얼굴을 처박고 게임만 할 뿐이었다.

문제의 둘째가 나와 같은 우학초등학교를 다니는 6학년 용수 형. 용수 형은 아직까지는 나하고 잘 놀아주는 편이지만 가끔 성질이 나면 내 뒤통수를 퍽퍽 때리기도 한다. 사실 덩치는 내가 더 큰데도 형이니까 그냥 맞아주는 거다. 진짜다!

아버지의 바로 위 누나, 그러니까 고모는 딸과 아들이 하나씩 있다. 근데 우학동에 안 살고 자동차로 몇 십 분 걸리는 동네에 살아서 우학초등학교를 다니지는 않는다. 첫째 딸 유정 누나는 5학년이고, 둘째 유천이는 나하고 나이가 같아서 3학년이다. 유정 누나는 우리하고 내내 어울리지는 않았고 가끔 자기가 좋아하는 좀비 놀이를 할 때만 함께했다. 동갑인 유천이하고는 사이가 좋아서 잠깐도 떨어지지 않고 같이 놀았다.

몇 시간을 집 밖에서 뛰어놀다가 11시쯤 돼서야 제사를 지내야 하니 안으로 들어오라고 큰어머니가 불렀다. 원래는 이 시간이면 벌써 자야 하는데, 모처럼 친척들이랑 모여서 신나게 노니까 하나도 안 졸리고 재미있기만 했다.

절을 백 번쯤 하니까 제사가 끝났다. 이제는 밥을 먹어야 할 시간. 6시에 저녁을 먹었지만 뜀박질로 소화가 된 지 오래라서 아까부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한창 평소에는 잘 못 먹는 반찬들에 눈독을 들이고 있을 때 큰아버지가 제사를 지낸 밥을 그릇째 내게 건네며 말했다.

“용재가 겁이 많다지. 제삿밥 먹으면 겁이 없어진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지켜주니까.”

선뜻 제삿밥을 받기 망설여졌다.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누가 먼저 손댄 밥을 먹는다는 건 좀 지저분하게 느껴져서 울상을 하고 큰아버지께 말씀을 드렸다.

“저 겁 없어요. 제삿밥 안 먹어도 돼요.”

“겁이 없기는. 네 아버지한테 다 들었다. 요즘도 가끔 밤에 오줌 싼다며. 혼자 화장실 가기 무섭다고 참다가.”

“우웩, 심하다. 용재, 너 아직까지 오줌 못 가려?”

“절대 아니야! 큰아버지가 뭘… 잘못 알고….”

“음, 아닌 것 같은데.”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 얘기나 마저 들어!”

- 내가 제삿밥을 한사코 거절하자 큰아버지가 씩 웃더니 말했다.

“좋아. 그럼 상을 주지. 너 아까 우리 용수 장난감 가지고 싶다고 했었지? 제삿밥 먹으면 큰아버지가 그거 줄게.”

ⓒ베이비뉴스
ⓒ베이비뉴스

그러자 고소하다는 듯 나를 보며 싱글거리던 용수 형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큰아버지가 말씀하신 장난감이란 다름 아닌 변신 로봇 ‘타이탄X’였다. 나도 몇 개 가지고 있지만 내 것들은 전부 손바닥만 한 크기이고, 큰아버지가 일본에서 사온 용수 형의 타이탄X는 30센티미터도 넘는 초대형 사이즈다. 게다가 반짝반짝 금칠도 잘 되어 있어서 실제로 보면 얼마나 멋있는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지경이다.

큰아버지의 약속이 떨어지기 무섭게 제삿밥을 냉큼 받아들여 맛나게 먹었다. 큰아버지와 우리 아버지는 씩씩하게 제삿밥을 먹는 내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보셨지만 용수 형은 얼굴을 찡그리며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하긴 나도 작년에 우리 이모의 아들 진구에게 장난감 총을 빼앗겨봐서 용수 형의 기분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대체 왜 어른들은 자기 것도 아니면서 자식들 물건을 함부로 남에게 줄까?

밥을 다 먹고 나서 유천이와 함께 용수 형의 방으로 갔다. 씩씩거리며 책상에 앉아 있던 용수 형에게 큰아버지 약속대로 타이탄X를 달라고 했더니 꿈에 나올까 무서운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내가 알기로 용수 형은 이미 타이탄X에 싫증이 난 지 오래였다. 요즘은 로봇이 나오는 만화보다는 해적선과 해적들이 나오는 만화만 보고 있다. 그러니 선뜻 내주어도 좋으련만, 아무래도 큰아버지가 허락도 받지 않고 자기 물건을 넘겨준 게 잔뜩 골이 난 모양이었다. 한동안 대답이 없어서 그냥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용수 형이 입을 열었다.

“좋아, 줄게. 근데 그냥은 못 주고, 우리 아빠가 조건을 건 것처럼 나도 조건 하나를 걸게.”

“무슨 조건?”

얼른 타이탄X를 얻고 싶어 몸이 단 내가 재빨리 물었다.

“제삿밥 먹고 진짜 겁이 없어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어. 우리 학교 뒷산 올라가는 길에 사자상 있는 거 알지? 그 사자 입에다가 대추를 하나 넣어. 내가 확인해보고 분명히 대추가 들어 있으면 그때 줄게.”

용수 형의 조건에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우학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사자상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밤만 되면 저절로 깨어나 학교를 돌아다닌다는 그 무서운 사자상의 전설을!

“그럼 고작 장난감 때문에 겁도 없이 그 밤에 거길 간 거야?”

“고작 장난감이 아냐! 타이탄X라고!”

“참, 나. 하여튼 그래서 어떻게 됐어?”

나는 우리 학교에 한 명밖에 없는 신문기자 영지에게 그날 밤 있었던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차근차근 들려주었다.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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