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다겸, 조사에 나서다 1-1
[전학생은 명탐정] 다겸, 조사에 나서다 1-1
  • 소설가 나혁진
  • 승인 2019.04.1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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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6장

다음 날인 화요일은 6교시까지 있어 2시 반에 모든 수업이 끝났다. 내일 보자는 인사를 남기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 나와 다겸은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했다.

“자, 가자! 오늘은 어제보다 더 잘할 자신 있어!”

“그래. 건전지도 왕창 가져왔으니까 오늘도 신나게 놀자.”

우리는 나란히 복도를 걸으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나도 어제 집에 가서 엄마한테 네 것 같은 무선조종카를 사달라고 졸랐어. 엄마가 곧 사주신다고 약속했으니까 앞으로는 둘이서 경주도 하자.”

“좋지. 나는 느려도 내 자동차는 빠르니까 내가 이길 거야.”

“후훗, 과연 그럴까.”

건물 현관문을 나서서 운동장 조회대 앞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무선조종카를 갖고 놀 생각에 발걸음도 가벼웠다. 그런데 갑자기 다겸이 엄지와 중지를 맞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잠깐, 우리가 할 일이 무선조종카가 아니잖아! 우린 오늘부터 사자상을 조사해야 돼!”

“아, 맞다! 무심코 까먹고 있었어.”

“그냥 오늘은 놀고 내일부터… 안 돼. 이러다간 영원히 조사를 못할 거야.”

다겸은 얼굴을 찡그리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힘겹게 결론을 내렸다.

“탐정은 의뢰를 받으면 노는 것보다 사건 해결이 더 중요해. 무선조종카는 다음에 하자.”

탐정이 되면 제대로 놀지도 못한다니 참 불쌍하다. 나는 노는 게 더 좋으니까 탐정은 못할 것 같다.

“일단 그날 밤 네가 갔었던 길을 천천히 되짚어보자.”

순식간에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온 다겸이 말했다. 우리는 방향을 바꿔 옆문 쪽으로 이동했다. 운동장 앞에서 그리 멀지 않아 금세 도착했다.

“이 문 밑으로 들어왔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밤은 철문이 단단히 잠겨 있었지만 학생들이 다니는 지금은 철문 두 쪽이 훤히 열려 있었다. 그때는 급해서 엉겁결에 철문 아래 공간을 통과했지만 밝은 곳에서 살펴보니 꽤나 비좁아 보였다.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았다. 다겸은 이곳에서는 별로 볼 게 없다고 생각했는지 사자상 근처로 가자고 재촉했다.

우리는 그날처럼 옆문에서 왼쪽으로 돌아 다시 학교 건물로 향했다. 지겨운 수업을 버텨가며 간신히 빠져나온 그곳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게 살짝 우울했다. 우리 오른쪽 옆 운동장에서 깔깔거리며 공을 차는 아이들을 보니 나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재미있어 보였다.

“탐정은 의뢰를 받으면 노는 것보다 사건 해결이 더 중요해. 무선조종카는 다음에 하자.” ⓒ베이비뉴스
“탐정은 의뢰를 받으면 노는 것보다 사건 해결이 더 중요해. 무선조종카는 다음에 하자.” ⓒ베이비뉴스

“다겸이라는 이름은 무슨 뜻이야?”

말없이 걷기 심심해서 물어보았더니 앞만 똑바로 보고 걷던 다겸이 나를 힐긋 보며 답했다.

“많을 다(多)에 겸손할 겸(謙). 부모님께서 늘 겸손한 사람이 되라고 지어주셨어.”

나는 겸손은커녕 자신감이 지나치게 넘치는 다겸의 말투를 떠올리며 사람이 꼭 이름대로 사는 건 아니구나 하고 생각했다.

“참, 그날 저 현관문은 어땠어? 잠겨 있었니?”

학교 건물까지 거의 다 왔을 즈음, 다겸이 손을 들어 현관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반원형의 유리 지붕이 앞으로 튀어나와 비를 피할 수 있는 현관문은 유리문 두 짝을 밀어 여닫는 형태였다. 나는 현관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묻혀 있던 기억을 더듬었다.

“잠겨 있었어. 자전거바퀴 잠글 때 쓰는 둥그런 고리 같은 거 있잖아. 그걸로 튼튼하게 잠겨 있던 걸 본 기억이 나.”

“음, 그랬구나. 용재, 너 생각보다 기억력이 좋네.”

“사실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그날 밤, 내가 쓰러지자 수위 아저씨가 나를 안고 저 현관문 유리 지붕 밑으로 와서 앰뷸런스를 기다렸거든. 건물 양옆의 길은 좁아서 앰뷸런스가 못 들어오니까 아저씨가 저기까지 나를 안고 간 거야. 어렴풋이 정신이 들었을 때 추위에 덜덜 떨면서 저 유리문이 잠겨 있는 걸 분명히 봤지.”

“오케이, 잘 알았어.”

다겸은 별일 아니라는 양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그날 밤 나와 용수 형, 유천이가 지나갔던 건물 왼쪽 길을 천천히 걸었다. 서너 명만 나란히 걸어도 꽉 찰 만큼 비좁은 왼쪽 길바닥에는 가로세로로 잘 짜 맞춘 벽돌이 깔려 있었다. 용수 형, 유천이가 나를 혼자 보냈던 건물 북서쪽 모퉁이에서 내가 말했다.

“여기가 사촌들이 나를 기다린 곳이야. 두 사람은 계속 나를 기다리다가 내가 하도 안 오니까 고개만 빼꼼 내밀어 사자상 쪽을 보았대. 근데 나는 쓰러져 있고, 수위 아저씨는 날 깨우려고 내 뺨을 철썩철썩 때리고 있더래. 둘은 조금 전에 친 천둥이 틀림없이 나한테 떨어진 거라고 확신했대. 용재가 벼락에 맞아 죽었으니까 용재를 꼬드긴 자기들도 부모님들한테 죽었구나 싶어서 나를 내팽개치고 후다닥 옆문으로 달려가서 무작정 도망친 거지. 어휴, 친척이면서 진짜 의리 없지 않냐?”

나는 분해서 씨근거렸지만 다겸은 정신이 다른 데 가 있는 사람처럼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제 문제의 사자상을 보러 가볼까.”

다겸의 말에 우리는 모퉁이를 돌아 건물 뒤쪽으로 나왔다. 몇 십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사자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자상의 조금 오른쪽에는 우학산으로 통하는 계단이 위로 길게 뻗어 있었다. 그전에도 거의 오지 않던 곳이었지만 그날 밤 이후 처음 와보는 거라 조금 떨렸다. 하지만 다겸은 나와는 달리 전혀 겁이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성큼성큼 사자상을 향해 걸어가는 다겸의 뒤를 조심스레 쫓았다.

“정말 영지라는 애 말대로 좀 멍청하게 생겼네.”

이것이 무시무시한 사자상을 처음 본 다겸의 감상이었다. 다겸의 말을 듣고 보니 사자상은 꺼벙하고 졸린 눈을 하고 있었고, 내가 대추를 놓고 오기로 한 입을 찢어지게 벌리고 있어 마치 하품을 하는 것 같았다. 게다가 만들어진 지도 꽤 오래됐는지 조각해놓은 코와 수염, 이빨, 갈기 등이 비바람에 많이 지워져서 한마디로 볼품없었다. 만약 다른 곳에서 이 녀석을 봤다면 무섭기는커녕 귀여워했을 것이다.

“이 사자상이 빙글 돌아서 너를 봤다는 말이지?”

다겸은 한쪽 앞발을 내민 자세의 사자상에 가까이 다가가서 두 손으로 있는 힘껏 어깨를 밀었다. 곧 나도 합세해 같이 밀었는데 둘이서 아무리 힘을 써도 사자상은 꿈쩍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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