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생은 명탐정] 산고래의 비밀 1-2 & 에필로그
[전학생은 명탐정] 산고래의 비밀 1-2 & 에필로그
  • 소설가 나혁진
  • 승인 2019.10.23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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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혁진 어린이 추리소설 '전학생은 명탐정' 10장

다겸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온 신경을 산고래에 모았다. 나와 영지는 행여 다겸에게 방해될까 봐 입을 꾹 다물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만 갔다. 5시 50분이 됐을 때는 졸음이 쏟아져 견딜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다겸은 여전히 고개를 들지 않고 머리카락만 쥐어뜯었다.

“도저히 생각이 안 나. 아무것도 안 떠올라…….”

언제나 활기차고 자신만만한 다겸이 이렇게 좌절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5시 55분, 영지가 조심스레 다겸에게 말했다.

“다겸아, 이제 5분만 있으면 6시야. 우리 이만 돌아가자. 이따 학교에 나와서 선생님들한테 말씀드리면 선생님들이 답을 풀어줄 거야.”

“안 돼, 난 탐정이야! 반드시 내 힘으로, 내 손으로만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다겸이 분하다는 듯 온몸을 떨었지만 달리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난 처음으로 사건 해결에 실패한 다겸이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에이, 타이탄X가 실제로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타이탄X의 무쇠다리라면 이까짓 철문 따위는 한 방에 부술 텐데.”

“이 상황에서도 타이탄X 타령이니.”

나와 영지의 말다툼을 듣고 있던 다겸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다겸은 뭔가에 홀린 것 같은 얼굴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타이탄X는 용재가 좋아하는 일본 만화지. 일본, 그래 답은 일본에 있었어!”

나는 다겸이 너무 분해서 미쳤는지 알았다. 하지만 다겸은 나와 영지를 똑바로 쳐다보며 한 글자씩 또박또박 내뱉었다.

“산고래의 비밀을 알았어.”

“진짜야?”

“대체 그게 뭔데?”

나와 영지는 동시에 질문을 쏟아냈다. 잔뜩 흥분한 다겸이 열변을 토했다.

“답은 일본 말에 있었어. 용재는 타이탄X가 원래 일본어로 녹음된 일본 만화인줄 몰랐어. 우리나라 말로 더빙된 것만 봤으니까 말이지. 타이탄X가 우리나라 말을 하니까 틀림없이 우리나라 만화라고만 생각한 거지.

옛날에 부엉이 아저씨의 아빠가 했던 착각도 용재와 거의 비슷해. 그분은 군인들이 ‘산고래’라는 말을 하는 걸 들었지. 자연스럽게 그 산고래가 비밀번호를 푸는 열쇠라고 생각했고. 하지만 얘들아, 그 군인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었잖아. 일본 군인들이라고 할머니가 남긴 편지에 분명히 적혀 있었지. 일본 사람 둘이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왜 굳이 한국 말을 쓰겠어? 두 일본 군인은 분명히 일본 말을 했을 거야. 그런데 우연히도 그 ‘산고래’라는 일본 말이 우리나라 말이랑 비슷하게 들리는 바람에 이 모든 오해가 시작된 것뿐이지.”

“그렇다면 산고래가 일본 말이야?”

내가 물었다.

“그래. 아마도 숫자와 관련이 있는 일본 말이겠지. 얼른 찾아봐줘.”

영지가 냉큼 스마트폰을 꺼내 인터넷에 접속했다. 이내 영지는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숫자 3을 일본 말로 ‘산(さん)’이라고 부른대. ‘고(ご)’는 숫자 5를 부를 때 쓰고. 마지막으로 ‘래’는 숫자 0인데 제대로 읽으면 ‘레이(れい)’야. 마지막 ‘래’는 부엉이 아저씨 아빠가 정확히 듣지 못했나 봐. 아무래도 일본 군인은 산, 고, 레이라고 말한 것 같아.”

스마트폰에 인터넷으로 접속해 궁금한 걸 바로바로 찾아볼 수 있는 어마어마한 기능이 있을 줄이야. 나는 오늘 네 번째로 스마트폰을 가진 영지가…… 너무 부러워서 미칠 것 같잖아!

“그렇다면 비밀번호는……?”

“350.”

내 마지막 질문에 대답한 다겸이 달려가 자물쇠 숫자를 350으로 맞추었다.

딸칵, 자물쇠 열리는 소리가 우리에게는 경쾌한 음악처럼 느껴졌다.

정각 6시, 마침내 보물 창고의 문이 열렸다.

정각 6시. 마침내 보물 창고의 문이 열렸다. ⓒ베이비뉴스
정각 6시. 마침내 보물 창고의 문이 열렸다. ⓒ베이비뉴스

◇ 에필로그

이틀 후인 금요일은 방학식이었다. 하지만 나와 영지, 다겸은 교실에서 열린 방학식에 가지 못하고 교무실에 끌려가 교장선생님께 잔뜩 훈계를 듣고 있었다.

“너희들 말이야, 애들이 겁도 없이 그 위험한 곳에서 밤새도록…….”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써서 눈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 같은 교장선생님은 침을 튀겨가며 우리들의 잘못을 끝도 없이 지적했다. 평소에는 인자한 표정이지만 오늘만큼은 귀신을 방불케 하는 싸늘한 얼굴이었다. 한 시간 넘게 혼나서 혼이 나갈 것 같던 나는 무심코 귀를 만져보았다. 귀에서 피가 나오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뭐 너희들한테 잘못만 있는 건 아니지. 너희들 덕분에 우리 우학초등학교 학생들한테 위험한 물건을 멀리 치워버릴 수 있었으니 그건 교장선생님으로서 고맙게 생각한다.”

교장실에서 풀려나기 직전에야 겨우 한 마디 칭찬을 들었다. 애초 기대했던 보물과 타이탄X는 구경도 못하고 부모님과 교장선생님께 실컷 혼만 났으니 우리의 모험은 완전히 망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렇다, 보물 창고에는 보물이 없었다. 오래된 나무 상자 속에 둥그스름한 미사일들만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을 뿐이다. 뜻밖의 결과에 우리는 잔뜩 실망하고 계단 밖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무사히 집으로 숨어 들어가 8시쯤 학교에 갔다. 왠지 우리만 알면 안 될 것 같아 아침 수업 준비 시간에 정수연 선생님을 그곳으로 안내했더니 금방이라도 기절할 듯이 놀라셨다. 선생님은 바로 경찰에 신고를 했고, 곧 군인 아저씨들이 왕창 몰려와서 그날 수업은 하지 못했다.

다겸이 들었는데, 그 미사일들 안에는 일본 군대가 개발한 신경가스라는 것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돈가스도 아니고 신경가스가 뭐냐고 물어보니까 한꺼번에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는 무서운 무기라고 알려주었다. 진짜 보물도 아니고, 고작 사람 죽이는 무기 따위를 그렇게 꽁꽁 감춰놓은 일본 군인들은 참 이상한 사람들이다.

위험한 미사일들을 전부 학교 밖으로 빼내느라 어제까지 학교는 문을 닫았다. 오늘은 짧게 방학식만 하는 일정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알아들었을 거라고 믿겠다. 다른 데로 또 새지 말고 얼른 집에 가도록. 다들 방학 잘 보내거라.”

교장선생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올 때 영지가 한쪽 눈을 살짝 감으며 말했다.

“집에서 봐요, 할아버지.”

그제야 나는 학교 소식이라면 모르는 것이 없는 영지의 ‘정보통’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현관문을 통해 건물을 빠져나왔다. 방학식은 진작 끝나 드넓은 학교에는 우리 셋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다겸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비록 보물은 없었지만 다겸이는 정말 대단해. 전학 오고 며칠 만에 몇 십 년이나 전해 내려온 움직이는 사자상의 불가사의를 해결했잖아.”

“후훗, 탐정이라면 그 정도는 당연한 거지. 용재하고 영지, 너희들은 여러 가지 사실을 잘 관찰하고 정리했지만 탐정은 거기서 멈춰선 안 돼. 탐정은 단순히 사실만을 늘어놓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추리’하는 사람이거든.”

“와, 그 추리라는 거 나도 배우고 싶다.”

“당연히 너희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나처럼 많이 배우고 열심히 연습하면 말이지.”

“탐정 중에서 제일 뛰어난 사람을 뭐라고 불러?”

“글쎄…… 아마 명탐정?”

“그럼 다겸이야말로 내가 아는 최고의 명탐정이야!”

이름과 달리 겸손이라고는 약에 쓰려도 없는 다겸이 얼굴을 붉히는 모습은 처음 봤다. 다겸은 눈물까지 글썽일 정도로 감격한 표정이었다. 아마 명탐정이라는 말을 듣는 게 소원이었던가 보다.

“어이, 명탐정. 2학기 때 <우학 뉴스>에 우리들의 모험 얘기를 기사로 써도 되지?”

영지의 물음에 다겸은 대답 없이 씩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경찰 아저씨들이 조사한다고 부엉이 아저씨를 데려가는 바람에 텅 비어 있는 수위실에 도착했다. 셋 다 부엉이 아저씨에게 별일이 없기를 빌며 수위실을 지나쳐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 앞에서 문득 이 문을 나서면 다시는 다겸을 볼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겸아, 사건을 해결했으니 넌 또 전학을……?”

“다시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교로 돌아가야지. 우리 집은 여기서 한 시간도 더 걸리거든.”

떠난다는 다겸의 말에 갑자기 매우 슬퍼졌다. 난 2학기 때도 다겸이한테 추리도 배우고, 또 다른 모험도 하고, 같이 무선조종카도 굴리면서 재미나게 놀고 싶었는데 말이다. 기분 탓인지 다겸도 어쩐지 쓸쓸한 표정이었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우리가 고개를 돌려보니 내 짝 세영이었다. 겁에 질린 얼굴의 세영이는 평소에 친한 영지를 붙잡고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했다.

“영지야, 너 그 얘기 들었어? 우리 학교 구석에 지금은 안 쓰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잖아. 그게 어젯밤에 피로 시뻘겋게 물들었대. 너도 알지? 우학초등학교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피로 물든 우물’ 말이야.”

나와 다겸은 동시에 시선을 교환했다. 다겸이 싱긋 웃고 나서 말했다.

“해결해야 할 사건이 하나 더 생겼으니 전학을 좀 미뤄야겠는데.”

“정말이야? 그럼 2학기도 우학초등학교에서 다닐 거야?”

“물론이지.”

우리 셋은 학교가 떠나가라 환호성을 질렀다. 멋모르는 세영이가 우리를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전혀 창피하지 않았다.

명탐정인 내 친구가 전학만 가지 않는다면 무슨 말을 들어도 상관없다.

내 친구, 전학생은 명탐정. ⓒ베이비뉴스
내 친구, 전학생은 명탐정. ⓒ베이비뉴스

<끝>

-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소설가 나혁진은 현재 영화화 진행 중인 「브라더」(북퀘스트, 2013년)를 비롯해 모두 네 편의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조카가 태어난 걸 계기로 아동소설에도 관심이 생겨 '전학생은 명탐정'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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