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풀어낸 직장인의 갈등 '서제스쳔'
남편의 직장생활 고충 이해하는데 도움
소설 ?암시(Suggestion)?(이승현 저, 향지출판사, 13000원)는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겪을 만한 갈등을 소재로 삼고 있다. 이를테면 상사가 윤리적으로 부정한 명령을 내렸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다. 이 때 주인공은 두 가지 근거를 토대로 상사의 명령을 거절한다.
첫째, ‘진실 앞에서는 꼿꼿해야 한다’라는 자연의 가르침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갈대처럼 고개를 숙여야 할 때도 있겠지만, 진실 앞에서는 부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대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유태인 대학살의 가스실 담당자가 유죄 판결을 받은 역사적 사실이다. 윤리적 부정을 모르는 체하는 것은 암묵적인 동의이자, 결국은 죄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삶이 그리 만만하던가. 행동의 윤리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상사의 의도를 거스르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 소설의 극적인 요소는 바로 이 시점에서 발생한다. 직장생활의 열쇠를 쥐고 있는 상사와 대립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전쟁에 맞먹는 긴박감으로 전개된다.
이 소설은 이런 식으로 매 챕터마다 직장인이 공감할 수 있는 화두를 던지고, 간결하면서도 여운이 남는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직장인이 로또에 집착하는 이유, 사내연애, 주인의식, 날 미워하는 상사와 친해지는 과정 등은 이 책의 또 다른 소재들이다.
이 책은 다양한 매력을 갖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소개할 특징은 스토리 전반을 이끌어 가는 ‘프로파일러적 요소’이다. 주인공이 난제에 부딪힐 때마다 미지의 인물이 그를 도와주는데, 그의 정체는 독자의 궁금증을 유발한다. 그러나 이 미지의 인물은 결정적인 순간 적으로 돌아서 버리고, 바로 이 대목에서 몰입감은 절
정으로 치솟는다. 그의 실체가 밝혀지며 생성되는 마지막 반전은 핵심 메시지와 맞물려 독자에게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이 소설의 또 하나 매력은 직장인의 뭉친 불만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독설이다. 이는 마치 연예인 김수미의 욕에 관객들이 느끼는 카타르시스와 같다. 실제 이 책의 본문 속으로 들어가보자.
"아부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윗사람의 마음을 살피고,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데 무엇이 문제겠는가. 따지고 보면 모든 인간관계는 어느 정도의 아부가 있어야 촉촉해지고 끈끈해질 수 있다. 문제는 아부를 악용하는 일부에게 있다. 그들의 아부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빠져있다. 바로 진정성이다. 그들은 윗사람을 위하는 충성심에서 딸랑거리는 게 아니다. 오직 상사가 호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무언가를 더 취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그들의 아부는 이타심이 아닌 이기심이다.
우리는 왜 비비는 사람들에게 눈살을 찌푸리는가? 그들이 권력자의 기분에 기대어 파이를 쉽게 먹으려 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파이는 반죽하느라 고생하고 구워 내느라 땀을 흘린 이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이 룰이 깨지면서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기보다 사내정치에 공을 들인다.
성과와 보상의 선순환. 이것이야말로 건강한 조직의 윈-윈 게임이다. 그러나 딸랑이들은 제로섬 게임을 한다. 파이를 안 만들고 남의 것을 빼앗아 먹으니 당장 조직의 손해다. 그렇게 얻은 권력자의 자리에서 줄서기를 아랫사람에게 강요할 테고 인습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 그들은 미래에도 해악이다. 회사는 이런 식의 문화가 근절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실체는 있지만 설명하기는 어려운 직장인의 감정’을 대변해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밖에서 밥을 먹는 일이 잦다. 어느 순간에는 음식을 입에 넣었을 때 화학조미료를 식별하는 능력이 생기고, 자극적인 음식보다는 건강에 좋은 음식을 본능적으로 찾게 된다. 이 소설은 자극적이지 않은 건강식이다.
저자는 특정 기업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을 지양하고, 또한 직장인의 삶을 비애 속에 빠뜨리지도 않으면서 이야기의 균형을 아슬아슬하게 잡아간다. 그런 면에서 이 소설은 재미와 교훈, 감동을 고루 갖추고 있다. 취업준비생이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부담 없이 읽어볼 만한 유익한 소설이며, 직장인 남편을 둔 전업주부에게도 남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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