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반 만에 떼일 뻔한 돈을 받았다

1년 반 만에 떼일 뻔한 돈을 받았다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5.02.14 10: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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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한번 해봤어] 신뢰는 약속을 지키는 것에서부터 시작

2023년 7월. 요가원이 문을 닫았다. 나는 그 해 1월에 1년 회원권을 끊었더랬다. 요가원은 깨끗했고 조용했으며 늘 정시에 시작했다. 나는 수업이 시작되기 30분 전에 요가원에 가거나 수업이 끝나고 남아 30분 정도 글을 썼다. 그러면 일주일에 세 번은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계획 대로 되는 건 없다. 이런 저런 이유로 7월 중순 이후로 휴원을 하던 요가원이 갑자기 문을 닫는다고 한 것은 8월. 처음엔 요가원 천장에서 물이 새는데 건물주와 협상이 잘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요가원을 이전한다고 하더니, 이전도 어렵고 폐업이란다. 그때부터 동네에서는 난리가 났다.

지역 카페에서는 요가원 원장이 고의적으로 폐업을 하고 튄 거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폐업을 하기 얼마전까지도 신규 회원을 받았을 리 없다며. 사실 확인은 아무도 해주지 않았고 소문만 무성했다. 지역 카페에 피해를 본 사람들이 하나둘씩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돈을 환불 받을 수 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누군 받고 누군 못 받고 그랬다. 받은 사람들은 받은 사람 대로, 못 받은 사람은 못 받은 사람 대로 각자의 방법으로 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공유했다. 문자와 전화 그것도 안 되면 경찰서로 간다고 했다.

나는 문자로 조속한 처리를 바란다고 보냈다. 돌아오는 답은 없거나, 다시 연락드리겠다는 정도였다. 간혹 통화가 되곤 했는데, 그때마다 다른 일을 하고 있어 그러니 나중에 전화를 준다고 하거나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폐업을 하고, 9, 10, 11월간 사람들은 무서울만큼 집요하고 험한 말로 글을 올렸다. 보는 내가 다 가슴이 철렁하는 내용이었다. 

그들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나 글을 읽던 나는 갑자기 무서워졌다. 원장이 나쁜 선택을 할까 봐. 뉴스에서 나오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으니까. 내가 보낸 문자로 그런 선택을 하면 어쩌지? 그러면 안 되지. 문자를 보내는 걸 중단한 건 그때문이었다. 내가 너무 무서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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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바뀌기 전, 그러니까 원장은 2023년 11월까지 완전한 환불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지만, 이분도 계획대로 되는 건 없었나 보다. 그래도 이 문자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나는 환불을 믿고 있었다. 기다릴테니 꼭 약속을 지켜달라고 문자를 보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지? 하다가 2024년이 밝았다. 그리고 6월까지 잊고 지내다가 한 번씩 생각이 나면 문자를 보냈다. 그때마다 답은 없었다. 그러다가 6개월 만에 문자를 받았다. 그 달에 환불 일정을 알려주겠다고 했지만 역시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때 피티를 받던 피트니스 강사에게 이런 일이 있다고 말했더니, "회원님 참 착하시네요"라는 말을 들었다. 본인 같으면 당장 경찰에 신고했다고. 신고 해도 안 주면 그만 아닌가. 재판을 해도 안 주면 그만이라는 말도 들었는데... 내가 받을 돈은 42만 원. 한 달에 10만 원씩만 갚는다고 해도 4개월이면 될 일인데... 사정이 그렇게 어려운가. 안 주는 건지, 못 주는 건지 사정을 알 리 없는 나는 잊고 있다가 원망했다가를 반복했다. 원장을 원망하게 되는 날은 아이들이 생각났다. 원장은 아이가 셋이라고 했다. 그래, 힘드시겠지. 42만 원이 적은 돈은 아지만 그래도 나한테 당장 급한 돈은 아니니까 기다릴 수는 있었다.

그러다 다시 6개월 만인 2024년 12월 31일, 환불 바란다는 내 문자에, 성함이 어떻게 되시냐는 문자를 받았다. 그러곤 다시 답이 없다. 좋게 생각하기로 해도 속에서는 '장난하나' 말이 쑤욱 나온다. 정말 더 신경 쓰고 싶지 않은데, 충분히 기다릴 만큼 기다린 것도 같은데... 뭔가 해결되지 못하는 이 상황이 나로서는 조금 피곤했다. 

올해 지난 설 다음날인 1월 30일, 원장에게 무려 '전화'가 왔다. 이런 저런 말을 하는데, 동명이인이 문제였단다. 이름이 같은 분이 있어 입금 여부를 확인하고 환불을 해주겠다는 거였다. 원장은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수업 끝나고 아이패드를 들고 일을 하시던 회원님으로. 맞아요. 그게 나예요. 그러니 꼭 이번에는 환불을 해달라고 사정(!)했다. 그러나 본인 확인은 내 생각만큼 빨리 이뤄지진 않았다. 2월 3일에 되어서야 은행에서 입금 알림이 왔다. 돈을 보냈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그동안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도 없었다. 나는 문자를 보냈다. 

얼마나 기다렸던 입금인가... ⓒ최은경
얼마나 기다렸던 입금인가... ⓒ최은경

'드디어 종결. 입금 확인했습니다. 늦게라도 약속을 지켜주셨네요. 하시는 일 잘 되시길 바랍니다.'

1년 반이 넘어서야 떼일 뻔한 돈 42만 원을 받았다. 그날로 나는 원장의 전화번호를 차단시켰다. 더 볼 일 없을 테니까. 너무너무 후련하다. 후련한 마음 한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쨋거나 상황을 비관하지 않고 나쁜 선택은 하지 않았으니까. 요가와는 다른 일을 하시면서 돈을 갚고 계신 것 같았다. 상황을 좀 알려주시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덜 원망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것이 나로서는 좀 아쉬웠지만 원장도 그만의 사정이 있겠지. 이제라도 받았으니 어딘가. 

사실 원장이 돈을 갚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420만 원도 아니고 42만 원이니까. 그러나 이제는 "엄마, 아직도 돈 못 받았어?"라고 묻는 아이들에게 "아니, 엄마 돈 받았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말을 들은 아이들은 "그럼 우리 오늘 맛있는 거 사먹자" 하는 반응이었지만 속으로 바랐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고, 그런 크고 작은 약속들이 지켜질 때 신뢰가 생기는 것이고, 그런 신뢰들이 쌓여 건강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도 이런 경험을 통해 알아가기를.  

요즘 뉴스에는 좋은 소식 보다 안 좋은 소식이, 보고도 믿기지 않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지?' 하는 소식들 뿐이니까. 배신과 배반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 시간 동안 안 해도 될 속앓이를 하긴 했지만, 어쨋거나 '갚는다'는 약속이 지켜져 이 사회에 불신이 아닌 신뢰를 한 겹이라도 쌓게 된 것이, 긴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라면 그걸로도 충분하다 싶다.

누군가를 이런 나를 두고 '낭만적'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돈 떼였으면 이런 말 할 수 있었을 거 같냐는 소리도 하겠지. 그러면 또 그런 대로 할 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옛말에 "맞은 사람은 다리 뻗고 자도, 때린 사람은 다리 뻗고 잠 못 잔다"는 말도 있지 않나. 그렇다해도 웬만하면 돈 떼일 뻔한 경험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편집기자로 일하며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성교육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일과 사는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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