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유모차 끌고 지하철로 서울광장 가기
[르포] 유모차 끌고 지하철로 서울광장 가기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3.09.15 2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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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 없어 왔다갔다 "정말 힘들다"

【베이비뉴스/뉴시스 공동취재팀】

 

연일 이어지던 장마가 지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15일. 서울 구로구 구로동에 사는 이완(40·남), 최선영(38) 부부가 딸 서현 양(3)과 함께 집을 나섰다. 오늘은 뉴시스(회장 이종승)와 베이비뉴스(대표이사 최규삼)가 서울 중구 태평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진행하는 '유모차는 가고 싶다' 서포터즈 소망식에 가는 날이다.

 

'유모차는 가고 싶다' 서포터즈 소망식은 유모차 이용자들이 직접 유모차를 끌고 서울광장에 모여 유모차 이동이 불편한 현실을 알리고 영유아 보행권 확립을 위해 힘을 합치는 자리다. 유모차 이용에 늘 불편함을 느꼈던 최 씨도 선뜻 서포터즈에 동참했다. 기자는 최 씨 가족이 유모차를 끌고 서울광장까지 향하는 길을 동행하기로 했다.

 

출발 전 이 씨는 유모차에 아이를 앉힌 뒤 짐정리를 하느라 분주하다. 유모차 곳곳에 아이의 간식거리, 휴대용 변기 외에도 여러 필요한 육아용품들을 실었다. 아이는 모처럼의 나들이가 신나는지 연신 싱글벙글이다.

 

최 씨 가족이 사는 구로동에서 서울광장까지 지하철로 가려면 7호선 남구로역을 출발해 1·2호선 시청역까지 가야 한다. 환승하는 시간까지 다 합치면 이동시간만 35분. 하지만 최 씨는 "유모차를 가지고 가려면 일찍 나가야 된다"며 여유롭게 오후 12시 40분께 집에서 출발했다.

 

임신 7개월인 최 씨를 대신해 남편 이 씨가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앞장섰다. "임신 중이라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이동하는 게 편리하다"는 최 씨. 오늘은 남편과 함께여서 좀 더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고 했다. 5분여 동안 오르막, 내리막을 지나 남구로역 6번 출구 쪽이 가까워지자 최 씨가 자연스레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여기 6번 출구인데요, 유모차 좀 들어주세요."

 

남구로역은 엘리베이터가 없고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만 있어 지하철을 이용할 때는 늘 이렇게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마다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제는 핸드폰에 남구로역 전화번호까지 저장해뒀다. 남구로역 지상에서 승강장까지 내려가기 위해선 6번 출구에서 37칸의 계단을 내려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개찰구까지 가야 한다. 개찰구를 통과한 후엔 또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탄 뒤 다시 한 번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기다린 지 2분 정도 지났을까. 6번 출구 쪽으로 공익근무요원이 올라왔다. "아이는 유모차에서 내려야 한다"는 공익요원의 말에 남편 이 씨가 아이에게 채워진 안전벨트를 풀고 아이를 꺼냈다. 공익요원과 이 씨가 앞뒤로 유모차를 들고 내려가고 아이를 안은 최 씨가 그 뒤를 따랐다. 그리고 나타난 에스컬레이터 두 대를 지나 마지막 관문인 계단까지 모두 내려오니 승강장이 보였다. 집에서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최 씨 부부는 금세 지친 모습이었다.

 

7호선 남구로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이완(40), 최선영(38) 부부가 유모차에서 아이를 내린 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다. 정가영 기자 ky@iabynews.com ⓒ베이비뉴스
7호선 남구로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아 이완(40), 최선영(38) 부부가 유모차에서 아이를 내린 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고 있다. 정가영 기자 ky@iabynews.com ⓒ베이비뉴스

 

7호선 남구로역은 지상에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여러번 거쳐야만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 있다. 이완(40), 최선영(38) 부부가 공익근무요원의 도움을 받아 승강장까지 내려온 뒤, 아이를 다시 유모차에 태우고 있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7호선 남구로역은 지상에서 계단과 에스컬레이터를 여러번 거쳐야만 승강장까지 이동할 수 있다. 이완(40), 최선영(38) 부부가 공익근무요원의 도움을 받아 승강장까지 내려온 뒤, 아이를 다시 유모차에 태우고 있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남구로역은 엘리베이터 설치할 자리가 안 나온다고 하더라고요. 도움 청할 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죠."

 

그래도 오늘은 남편이 있어 수월하다. 혼자 유모차를 끌고 이동할 경우 막막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어떤 때는 지하철 직원에게 유모차를 들어 달라 요청했다가 "유모차를 들어주는 건 의무가 아니다"는 핀잔을 들어야 했고, 어떤 때는 "공익요원이 없다"고 거절당하기도 했다. 엘리베이터나 경사로가 설치돼 있으면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일인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지하철에 탄 이들은 한 정거장을 지나 대림역에서 내렸다. 시청역 2호선으로 가기 위해 대림역에서 환승하기로 한 것. 최 씨는 "7호선에서 2호선으로 바로 환승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없다"며 미리 기자에게 귀띔해줬다. 그리고 시작된 이들의 환승은 보통 이들의 환승과는 달랐다.

 

7호선 대림역에서 내린 최 씨 가족은 승강장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타고 대합실로 올라갔다. 개찰구 근처 유리부스에 간 최 씨가 "유모찬데, 2호선으로 환승하려고 합니다"라고 말하자 안내 직원은 익숙한 듯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는 통로 문을 열어줬다. 그렇게 개찰구를 지난 최 씨 가족은 9번, 10번 출구 쪽에 위치한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리고 나타난 곳은 다름 아닌 지상이었다.

 

"대림역 7호선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려면 이렇게 지상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온 뒤, 2호선 쪽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야 해요. 힘들지만 어쩔 수 없죠."

 

2호선 쪽 엘리베이터를 타러 가는 좁은 길목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 길을 처음 와본 남편은 "이렇게 다녔다고?"라며 황당해했다. 하지만 최 씨는 늘 그랬다는 듯 주저 없이 길을 안내했다.


최 씨는 "박람회가 열리는 삼성역을 가거나 2호선을 이용할 때 이 길을 이용한다. 저번 겨울에는 분명 눈이 안 왔었는데 환승하려고 나오니 갑자기 눈이 내려 눈길에 유모차를 끌며 굉장히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그래도 이렇게라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최 씨다.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5분을 걸어가니 대림역 7번과 8번 출구 사이로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이 씨는 5분을 걸어 엘리베이터를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에 "5분만큼의 세금은 떼고 내야겠네"라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완(40), 최선영(38) 부부가 7호선 대림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나가 5분여간 걸은 뒤 다시 승강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7, 8번 출구 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이완(40), 최선영(38) 부부가 7호선 대림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나가 5분여간 걸은 뒤 다시 승강장으로 올라가기 위해 7, 8번 출구 쪽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향하고 있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그렇게 다시 개찰구 앞에 선 최 씨가 호출 벨을 누른 뒤 "유모차요"라고 말하자 직원이 문을 열어줬다. 힘겨운 환승에 목이 마른지 최 씨는 개찰구에 들어서자마자 아이스커피로 목을 축였다. 아이도, 남편도 음료를 마시며 더운 몸을 달랬다. 그런 뒤 대합실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야 2호선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승강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에 탑승할 때도 힘든 순간은 계속됐다. 지하철에 유모차를 밀고 들어서려 하는데, 문 바로 앞 양쪽에 사람들이 서 있어 유모차를 실을 공간이 비좁았던 것. 겨우겨우 지하철을 탑승해 유모차를 세울만한 공간을 찾아 "조금만 지나갈게요"라고 외쳐도 사람들은 요지부동이다. 몇 번을 말하고 또 말해 겨우 교통약자석 자리 앞에 유모차를 세운 최 씨 가족은 그제야 숨을 돌렸다.

 

"유모차를 끌어본 사람만 알아요, 이런 고충을. 유모차를 끌고 다녀보니까 장애인들의 마음을 알겠어요. 그전에는 솔직히 몰랐는데 그 마음 알겠더라고요."

 

유모차를 갖고 다니면서 우리나라의 미흡한 보행환경을 새삼 느끼고 있다는 최 씨. 울퉁불퉁한 길, 불법주차, 엘리베이터가 없는 시설 등은 아이와 즐겁게 나가는 외출을 힘겹게 하는 환경들이다.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을 탈 때도 유모차가 있다는 이유로 눈치볼 때가 많다. 버스타는 건 생각조차 못한다. 택시를 이용하려 해도 택시들은 그냥 지나쳐버린다. 최 씨는 "아무래도 버스 같은 경우는 자리가 좁고 사람이 많이 타니까 눈치 보일 수밖에 없다. 지하철에서도 유모차를 세우기 불편할 때가 많다. 그래서 좀 더 편하게 다니기 위해 휴대용 유모차를 사야하나 싶은데, 유모차가 있는데 다른 걸 또 사자니 아까워 고민 중"이라고 토로했다.

 

대림역에서 출발한 지 20여분이 지나 드디어 목적지인 시청역에 도착했다.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자 이미 유모차를 끈 다른 가족들과 노인들이 줄을 서 있었다. 한차례 엘리베이터를 보내고 난 뒤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은 최 씨 가족. 그렇게 시청역 개찰구까지 빠져나오니 지상으로 올라갈 일만 남았다. 엘리베이터 안내 표시가 된 곳으로 향했지만 엘리베이터가 보이지 않아 곳곳의 출구를 찾아 헤매야 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구석 깊숙이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겨우 발견했다. 이 씨는 "생각보다 정말 힘들다. 엘리베이터 찾기도 힘들고 역은 낯설고.. 엘리베이터를 하나하나 찾으러 다니는 게 이렇게 힘든지 몰랐다"고 하소연했다.

 

시청역에 도착한 이완(40), 최선영(38) 부부가 서울광장으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엘리베이터 앞에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이용자들로 북적인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시청역에 도착한 이완(40), 최선영(38) 부부가 서울광장으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다. 이미 엘리베이터 앞에는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이용자들로 북적인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시계는 오후 1시 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남구로역에서 출발한지 1시간이 넘은 시간이었다. 그렇게 10분을 더 걸어가서야 서울광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유모차가 정말 가고 싶은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기 위해, 딸아이에게 '유모차는 가고 싶다' 홍보대사인 뽀로로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나온 나들이 길은 멀고도 험했다.

 

이 씨는 "혼자 다닐 때와 아이와 함께 유모차를 갖고 다닐 때는 정말 다르다. 엘리베이터를 찾아 다녀야 하는 이런 환경들이 정말 힘든 부분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최 씨는 "아이가 없을 땐 정말 몰랐다. 내가 아이를 낳고 유모차를 갖고 다니면서 보니까 열악한 환경도 많고 개선돼야 할 부분들이 보인다. 그게 나 하나로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목소리가 점점 커져야만 (유모차 보행권 확보를 위해) 나라에서도 개선해주지 않을까 싶다"며 "'유모차는 가고 싶다' 캠페인을 열어준 것에 정말 감사하다"고 전했다.

 

'유모차는 가고 싶다' 서포터즈 소망식이 열리는 서울광장에는 최 씨 가족을 비롯해 유모차를 끌고 온 가족들로 가득했다. 유모차가 편안하게 다닐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합치기 위한 소중한 발걸음들이었다. 이 발걸음이 멈춘 곳들 뒤로 보이는 '유모차는 가고 싶다'는 현수막 글귀가 절실하게 와 닿는 순간이다.

 

7호선 남구로역에서 1, 2호선 시청역까지는 지하철로 30여분이면 도착한다. 하지만 유모차를 이용하는 이완(40), 최선영(38) 부부는 한시간여 만에 시청역에 도착했다. 시청역에 내린 이들 부부가 목적지인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7호선 남구로역에서 1, 2호선 시청역까지는 지하철로 30여분이면 도착한다. 하지만 유모차를 이용하는 이완(40), 최선영(38) 부부는 한시간여 만에 시청역에 도착했다. 시청역에 내린 이들 부부가 목적지인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유모차는 가고 싶다' 서포터즈 소망식에 참석한 이완(40), 최선영(38) 부부가 유모차가 어디든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포터즈에 동참하기로 하고,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유모차는 가고 싶다' 서포터즈 소망식에 참석한 이완(40), 최선영(38) 부부가 유모차가 어디든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서포터즈에 동참하기로 하고, 접수를 기다리고 있다. 정가영 기자 ky@ibabynews.com ⓒ베이비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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