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

그래도 좋은 사람이 훨씬 많다

  • 칼럼니스트 강백수
  • 승인 2026.04.02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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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곰은 뚱뚱해] 일상 속에서 만나는 친절한 사람들

사람이 새로운 이름과 역할을 부여받으면 세상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된다. 아빠가 되는 것은 그 변화의 폭이 상당히 큰 축에 속하는 일이다. 뉴스에서 일어나는 일, 그리고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느끼는 감각이 이전과 많이 다르다. 며칠 전에도 어느 기관에서 일어난 아동 학대의 장면이 찍힌 영상을 보게 되었다. 아빠가 되기 전이었더라도 당연히 화가 날 만 한 영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 끔찍하고 두렵고 참담한 마음까지는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꼭 그런 종류의 것들이 아니더라도 내 자식이 언젠가 살아가게 될 세상의 모든 부조리한 일들이 훨씬 더 생생한 분노와 안타까움,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요즘이다.

미디어 속 세상은 너무 험난하다. 뉴스에는 좋은 사람들보다 나쁜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온다. 그들 속에서 상처받지 않는 단단한 어른으로 내 아이를 키워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내 아이가 지금의 천진함을 잃지 않기를 바라기도 한다. 강인하면서도 내면의 순수를 지켜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욕망과 폭력으로 미쳐 돌아가는 이 세상이 과연 세상이 그것을 허락할 것인가. 이런 생각을 하다가 아무 것도 모른 채 뛰어 노는 아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온다.

그렇지만 미디어를 벗어나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그래도 꽤 자주 희망을 발견하곤 한다. 여전히 이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다는 믿음을 지켜낼 수 있도록 해주는 사람들. 세상의 예절을 아직 모르는 아기들과, 그 미숙함에 타인이 불쾌해하지 않도록 노심초사 하지만 완벽하게 해내기는 어려운 부모들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온 세상에 가득한 줄 알았다. 그렇지만 막상 아빠가 되어 만난 세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 현관문을 나서면 우리들의 서투름을 나무라는 사람들보다 애정 어린 눈으로 이 작은 아이를 바라봐주는 고마운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매번 느낀다.

이웃들의 친절 덕분에 아이는 오늘도 넓은 세상을 본다. ⓒ강백수
이웃들의 친절 덕분에 아이는 오늘도 넓은 세상을 본다. ⓒ강백수

우리 가족은 혹시나 우리가 일으키고 있을지도 모르는 층간 소음에 대한 걱정을 늘 갖고 있다. 아직 아들이 어리고 쿵쿵거리며 뛸 수 있을 정도의 발달이 이루어지지는 않았고 그리고 그런 민폐를 예방하고자 거실 전체에 두툼한 매트를 깔아 놓기는 했다. 그렇지만 놀이 과정에서 아무런 소음도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세상에 부모가 완벽하게 케어할 수 있는 아이란 있을 수 없다. 주의를 줄 새도 없이 뛴다거나 물건을 떨어뜨린다거나 할 때는 마음 속으로 아랫집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품곤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 가족들을 만났다. 연로하신 할머니와 나보다 윗 연배의 따님이었다. 아기를 안고 인사를 건넸다니 할머니께서 아기를 너무나도 귀여워하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괜찮으니까, 집에서 마음껏 뛰고 놀아. 다 그러고 크는 거지 뭐.” 우리 가족은 그 말씀이 너무나도 고마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심해야 하는 게 공동주택 거주자의 의무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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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는 아기 좋아하는 어르신들이 아랫집 할머니 말고도 참 많다. 어디서든 아들과 함께 어르신을 마주치면 한결같이 “고놈 참 잘 생겼다.” 하시며 반갑게 말을 걸어 주신다. 요즘 같이 아기가 귀한 시대에 장한 일 한다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도 많다. 물론 아기 양말 제대로 안 신겼다가 모르는 어르신께 호통을 들은 적도 있고, 다 큰 아이를 안고 다닌다고, 걷는 연습 시켜야 한다고 한 소리 하시는 어르신을 만난 적도 있었다. 가끔 그런 상황이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생각해보면 모두가 애정이다.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의 아기에게 보내는 세심한 관심이다.

어린이집에도 훌륭한 선생님들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을 안다. 어떤 사건이 뉴스에 나온다는 것은 그런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아이들을 함부로 대하는 보육교사가 흔하다면 일일이 뉴스에 소개될 일도 없다.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그야말로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과 직업적 사명감으로 일하고 계시리라 믿는다. 그런 것 없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육아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아들 한 명 돌보는 것도 나는 힘든데 매일 여러 아이들을 케어 하는 그 일을 어떻게 숭고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린이집 갈 시간이 되면 신발을 신겠다고 현관에 앉고, 주말에도 어린이집 가방을 집어드는 아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들 뿐이다.

가끔은 공공장소에서 아들이 작은 소란을 만들기도 한다. 요즘 들어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큰 소리로 떼를 쓰기도 하고 물건을 툭툭 떨어뜨리거나 휙 던지기도 하는 장난을 치기도 한다. 사람들 많은 곳에서 그런 행동을 할 때면 주변 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 아들이나 내게 항의를 하거나 눈살을 찌푸리시는 분들은 정말 드물다. 아기니까 그럴 수 있다며 귀엽게 봐 주시는 분들, 귀찮은 기색 없이 다시 새 식기를 가져다주시는 직원 분들, 소란이 싫어도 내색하지 않아 주시거나 모른 척 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아들은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풍경을 보며 자랄 수 있다.

아이 하나를 잘 키워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사람들의 생활 반경이 넓어져 온 마을을 넘어 온 사회가 보듬어줘야 아이들이 안전하고 따뜻한 환경에서 자랄 수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해 주려고 애쓰는 수많은 친절한 이웃들에게 보답하는 방법은 내 아이 역시 언젠가 다른 아이들을 보듬어줄 수 있는 착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잘 길러내는 것이다. 만약에 아들이 왜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것이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생각이다. 우리 주변에 나쁜 사람보다는 착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이 그 말의 증거가 될 것이라 믿는다.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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