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데리고 한 번씩 동네 키즈카페를 찾는다. 며칠 연속으로 비슷한 공간에서 비슷한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 지루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데려가곤 한다.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울 때, 비나 눈이 올 때 놀러 가기도 한다. 아들은 아직 어려서 커다란 미끄럼틀과 정글짐, 트램펄린 같은 건 잘 이용하지 못한다. 편백 칩이나 플라스틱 공이 가득 차 있는 풀이나 주방놀이 장난감과 자동차 장난감들이 잔뜩 비치되어 있는 구역을 좋아한다. 집에 없는 장난감들 앞에서 아들은 잔뜩 신이 난 채로 놀고, 나도 아들에게 열심히 반응해주고 함께 웃어준다. 키즈카페에 갔다고 딱히 집보다 몸이 편하고 그런 건 없다. 단지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 줄 뿐, 함께 놀아야 하는 건 집에서나 밖에서나 똑같다.
정신없이 놀고 있노라면 뜻밖의 상황을 마주하기도 한다. 다소 시끌시끌한 아들과의 놀이가 다른 아이의 이목을 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엊그제 키즈카페에 놀러 갔을 때 일어난 일도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들이 주방놀이 기구를 가지고 만든 장난감 맘마를 신나게 받아 먹으며 호들갑을 떨고 있는데 처음 보는 한 아이가 자신이 블록 장난감으로 만든 것을 내게 내밀며 자랑을 했다. 내 아들보다 조금 크지만 여전히 어린 아이다. 칭찬 받고 싶다는 표정을 한 아이의 얼굴 너머로, 빈백 소파에 기대어 휴대폰을 뚫어지게 보고 있는 엄마가 보였다. “친구가 멋진 걸 만들었네!” 하며 한두 번 칭찬을 해줬더니 아이는 계속해서 내게 장난감을 가져 와 칭찬을 요구했다. 그러나 나는 어쩔 수 없이 내 아들에게 좀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낯선 아이는 점점 집요하게 나의 관심을 원했다. 그러다 급기야 심술이 나고 내 아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을 빼앗기 시작했다.
나의 아들이 다른 아이가 가지고 놀던 장난감에 욕심을 내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럴 땐 단호하게 “그러면 안돼.”하고 말해줄 수 있지만, 다른 아이가 아들에게 그런 행동을 할 때는 차마 그렇게 할 수가 없다. 아이의 부모가 같은 공간에 있는데 내가 괜히 나서 다른 아이를 가르치려 드는 것은 주제 넘는 행동일 수도 있고 자칫 갈등으로 번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동생이랑 같이 놀아주세요.” 라고 웃으며 말한다. 그렇지만 낯선 아이는 몇 차례 더 내 아들의 장난감을 빼앗고 내 관심을 얻으려 한다. 아들의 기분이 상할까봐 난감해하며 나는 되도록 아들을 그 아이로부터 떨어져 놀도록 유도하지만 같은 일이 몇 차례 더 반복된다. 그제야 아이의 엄마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몸을 일으킨다. 무심한 표정으로 아이의 손을 붙잡고 다른 구역으로 이동한다. 사과도 없고 아이에게 특별한 이야기도 없다. 엄마의 손을 잡은 아이는 멀어지며 우리를 빤히 바라본다.

이런 일은 키즈카페에 가면 자주 일어나는 일이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와 더 즐겁게 놀기 위해 키즈카페를 찾지만 다른 많은 부모들이 조금 편하게 육아를 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다. 형제도 친구도 없이 엄마, 아빠와 둘이 온 아이를 말 그대로 키즈카페에 풀어두고 알아서 놀게 하며 부모는 휴대폰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이와 부모가 함께 있지만 그 공간은 어쩐지 고요하다. 집에 없는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 잠시 신났던 아이는 이내 심심해진다. 내 아들 또래의 아이들은 대부분의 놀이를 할 때 그 행위 자체를 즐긴다기보다 그로 인한 칭찬을 갈구한다. 블록을 쌓고도 내게 보여주며 박수를 쳐달라고 하고, 미끄럼틀을 탈 때도 잘한다고 호들갑을 떨어줘야 행복해 한다. 반응해주는 사람 없이 혼자 무언가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하는 아이의 뒷모습에서는 심심함과 어떤 허기 같은 것이 느껴지곤 한다.
사실 나도 그런 때가 있다. 아들과 둘이 한참을 놀다 보면 괜히 몸과 마음이 지치는 순간이 있다. 옆에 놓인 휴대폰을 나도 모르게 집어 들고 아무 의미도 재미도 영양가도 없는 쇼츠 영상을 하나씩 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삼십 분, 한 시간이 흐르기도 한다. 그때 문득 혼자 놀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러면 대단히 무언가 잘못한 기분이 들어 그제야 아들을 다시 챙기게 된다. 다시 웃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나는 여전히 마음이 무겁고 미안하다. 그렇지만 부모도 사람이다. 아이는 언제나 예쁘지만 그렇다고 그 놀이가 항상 신나고 재미있는 건 아니다. 육아에, 사회생활에, 돈벌이에, 아이는 모르는 고민에 지치는 순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는 키즈카페에서 만난 그 아이의 엄마도 이해한다. 누구에게나 그런 때가 있다.
아들과 신나게 놀다가 우리도 넓은 공간으로 이동해서 다른 놀잇감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아이와 엄마는 이미 키즈카페를 떠나고 없었다. 외로워 보였던 아이와 지쳐 보였던 엄마의 슬픈 모습이 오랫동안 눈에 밟혔다. 부디 오늘 따라 그런 날이었길, 아이도 언제나 혼자 노는 아이가 아니고, 엄마도 언제나 그렇게 지쳐 있는 엄마는 아니길 바랐다. 그리고 내 곁에 다른 놀이를 하겠다고 달리기 시작하는 아들이 보였다. 이번에 향하는 곳은 간단한 물놀이 장난감이 모여 있는 곳이다. 옷이 조금 젖겠지만 갈아입히면 되니까 괜찮다. 너는 신나게 놀고, 나는 또 신나게 호들갑을 떨어줘야지.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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