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관계의 각축장에 놓인 유보통합… 정부가 정책 방향과 로드맵 제시해야

이해관계의 각축장에 놓인 유보통합… 정부가 정책 방향과 로드맵 제시해야

  • 칼럼니스트 김영명
  • 승인 2026.07.1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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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명의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 "영유아 권리 중심 국가책임체계 마련 시급"

유보통합이 다시 갈림길에 섰다. 정부의 명확한 정책 방향과 구체적인 추진계획이 충분히 제시되지 않는 사이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원·보육 관련 단체들은 서로 다른 입장과 요구를 제시해 왔다.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의 심사는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작 정책의 가장 중요한 당사자인 영유아의 권리는 논의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있다.

유보통합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제도와 행정을 단순히 합치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영유아가 어느 기관을 이용하든 차별 없이 질 높은 교육과 보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체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유보통합 논의는 국가가 지향해야 할 목표와 추진 순서가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은 채 각 이해집단의 힘겨루기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유보통합은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제도와 행정을 단순히 합치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영유아가 어느 기관을 이용하든 차별 없이 질 높은 교육과 보육을 받을 수 있도록 국가의 책임체계를 다시 세우는 일이다. ⓒ김영명

◇ 각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유보통합

교육청은 조직과 인력, 재정 부담을 우려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의 기존 보육 예산을 교육청으로 이관하는 문제도 주요 과제로 남아 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은 제도 개편이 기관의 존립과 운영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으며, 교직원들은 자격체계와 신분‧처우가 어떻게 달라질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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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원‧교사단체들은 통합기관의 운영체계와 교사자격 및 양성체계, 전문성 보장 등 유보통합의 주요 쟁점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고 있다. 국회 역시 이러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국가적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관련 집단의 입장을 살피며 결정을 미루는 모습이다.

각 주체가 자신의 입장에서 우려와 요구를 제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정책이 이해집단 사이의 세력 관계와 협상력에 의해 결정돼서는 안 된다. 특히 스스로 목소리를 내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는 영유아의 삶과 권리가 걸린 정책이라면 더욱 그렇다.

현재와 같이 정부의 명확한 계획 없이 이해당사자들이 각자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경쟁하는 구조에서는 조직력과 정치적 영향력이 큰 집단의 목소리가 정책에 더 많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 반면 영유아, 특히 영아와 장애영유아, 취약계층 가정의 요구는 뒤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 정책의 출발점은 영유아의 권리여야 한다

유보통합의 출발점은 특정 기관이나 직업 집단의 이해가 아니라 영유아의 발달권과 교육권이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부처나 기관이 더 많은 권한을 갖느냐가 아니며 목소리가 큰 이해집단의 요구만 반영해서도 안 된다. 무엇보다 국가가 모든 영유아에게 어떤 수준의 교육과 보육을 보장할 것인지가 먼저 분명히 결정돼야 한다.

정부가 더 이상 유보통합의 구체적인 방향을 이해관계자들의 협의와 국회의 논의에만 맡겨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유보통합 3법의 정부입법을 추진할 수도 있고, 당정 협의를 거쳐 의원입법 방식으로 법 개정을 추진할 수도 있다. 입법 방식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책임 있는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0세부터 5세까지의 영유아 교육·보육을 어떤 국가책임체계 안에서 운영할 것인지 분명한 정책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중앙정부와 교육청, 지방자치단체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행정과 재정, 인력과 조직을 어떤 원칙과 절차에 따라 이관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 정책 방향과 함께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이 필요하다

정책 방향뿐 아니라 구체적인 로드맵도 필요하다. 법률 개정 시기, 중앙과 지방의 사무 이관 일정, 재정 확보 방안, 교직원 자격과 처우 개선 방향,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운영기준 조정 절차, 장애영유아와 취약보육 지원체계 보장 방안 등을 단계별로 제시해야 한다.

영아와 유아의 발달적 차이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포함돼야 한다. 연령별 전문성을 보장하는 것과 국가의 행정·재정 책임을 하나의 체계로 만드는 것은 서로 충돌하는 문제가 아니다. 하나의 국가책임체계 안에서도 영아와 유아의 발달 특성에 맞게 교육과정, 교사 대 아동 비율, 교사 배치 등을 다르게 설계할 수 있다.

유보통합처럼 이해관계가 복잡한 정책에서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가 정책의 기본 방향과 판단 기준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은 채 정책 결정을 이해당사자 간 합의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모든 집단이 하나의 의견에 도달할 때까지 기다린다면 정책은 장기간 표류할 수밖에 없다.

사회적 합의는 정부가 판단을 유보한 채 이해당사자들에게 결론을 맡기는 과정이 아니다. 정부가 영유아의 권리와 공공성을 중심으로 기본 원칙을 세우고, 유보통합의 주요 쟁점과 정책 대안, 각 대안의 근거와 비용, 예상되는 영향과 부작용을 투명하게 공개한 뒤 충분한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의견 수렴 이후에는 정부가 최종적인 정책 방향을 결정하고 그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

◇ 이제 가장 힘없는 영유아의 권리를 위해 정부가 불확실성을 끝내야 한다

로드맵 없는 정책은 현장의 불안과 갈등을 키운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앞으로 기관이 어떻게 바뀔지 알 수 없고, 교직원들은 자신의 자격과 처우가 어떻게 달라질지 알기 어렵다. 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도 담당해야 할 사무와 부담해야 할 비용이 불분명한 상태에서 서로 책임을 미루게 된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 현장은 미래를 준비하기보다 당장의 생존을 위해 움직이게 된다. 기관 간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지역에 따라 교육과 보육 서비스의 격차도 커질 수 있다. 그 피해는 결국 아이들과 부모에게 돌아간다.

정부는 유보통합을 단순한 행정조직 개편이나 이해집단 간 협상 과제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 유보통합은 저출생 시대에 국가가 영유아의 성장과 발달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결정하는 핵심 정책이다. 이제 정부가 답해야 한다. 이재명 정부 유보통합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지, 0세부터 5세까지의 국가책임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 법률과 재정, 행정과 인력 문제를 언제까지 어떤 순서로 해결할 것인지 밝혀야 한다.

정부입법이든 당정 협의를 통한 의원입법이든 방식보다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와 책임이다. 정부가 분명한 정책 방향과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고, 진행 과정과 판단 근거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영유아는 자신들의 권리를 직접 주장할 수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가장 힘 있는 집단의 요구가 아니라 가장 힘없는 영유아의 권리를 기준으로 정책을 결정해야 한다. 유보통합을 이해관계자들의 각축장에 계속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이제 정부가 책임 있게 방향을 정하고, 사회적 논의를 이끌며, 조속한 법·제도 정비에 나서야 한다. 이재명 정부의 유보통합 실행 계획은 무엇인가? 있는가? 없는가? 이재명 정부는 임기 동안 유보통합을 어느 지점까지 어떻게 진전시키려 하는가?

유보통합의 출발점은 특정 기관이나 직업 집단의 이해가 아니라 영유아의 발달권과 교육권이어야 한다. ⓒ김영명

*칼럼니스트 김영명은 영유아교육·보육 현장과 학계를 오가며 30년 가까이 연구와 실천을 이어온 아동 보육·교육 전문가다.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을 비롯해 중앙보육정보센터, 인천광역시 보육정보센터 센터장을 역임하며 정책과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현재 영유아 권리 존중 단체 ‘아이들이행복한세상’ 공동대표로 활동하며, 베이비뉴스 칼럼을 통해 아이의 일상과 권리를 중심에 둔 보육·교육 정책과 현장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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