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의 시들었지만 한때 유행했던 말 중에 ‘안 본 눈 삽니다’라는 말이 있었다. 이 말은 부정적으로 쓰일 때도 있었고 긍정적으로 쓰일 때도 있었다. 정말 차마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을 보았을 때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부정적인 용례이고, 어떤 영화나 드라마 같은 것을 너무나도 즐겁게 본 나머지 다시 그 이야기를 접하기 전으로 돌아가 다시 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긍정적인 용례이다. 아들의 눈은 긍정적인 의미에서 ‘안 본 눈’이다. 우리에게 사소한 것들이 아들에게는 처음인 경우가 많고, 그럴 때면 그 눈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동그랗게 커지곤 한다. 그걸 바라보는 나도 신이 나는데 본인은 얼마나 그런 순간순간이 신날까. 가끔은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최근에는 인천 월미도에서 유람선을 탔는데, 거기서 갈매기들에게 새우깡을 던져주는 장면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하늘을 빼곡하게 메우며 날아드는 갈매기 떼를 보던 아들의 눈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아들에게도 한 번 해 보라고 새우깡을 건넸더니 아들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걸 자기 입으로 가져갔다. 맨날 염분이 거의 없는 아기용 과자만 먹다가 감칠맛 넘치는 새우깡 맛을 본 아들은 뜻밖의 신세계를 경험했다. 한순간에 두 가지 새로운 경험을 한 그날이 아들에게는 꽤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아들은 거의 매일 그림책 속에 등장하는 새나 배를 보면 ‘뿌! 째째! 맘마!’하고 소리친다. 여기서 뿌는 배, 째째는 새, 맘마는 밥이다.
꼭 거창한 외출이 아니더라도 아들은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한다. 요즘 아들이 새롭게 몰두하게 된 일 중에는 동굴탐험도 있다. 손가락으로 자신의 콧구멍을 탐사하는 바로 그 행위이다. 아들의 손끝은 정교하지 못해서 언제나 별 소득을 거두지 못했는데, 며칠 전 우연히 손가락 끝에 뭔가가 붙어 나왔다. 난생 처음 스스로 자신의 코딱지를 채취하는데 성공한 아들은 아빠 엄마를 번갈아 바라보며 소리쳤다. “이거 뭐야! 이거 뭐지!”

제헌절이 휴일이 된 바람에 지난주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사흘간의 연휴가 주어졌다. 연휴라는 말은 직장생활을 하는 아내에게는 언제나 달콤한 말이었고 프리랜서인 내게는 별 의미가 없는 말이었는데, 아들이 태어나고부터는 약간의 고민을 하게 만드는 말이 되었다. 어린이집이 쉬는 기간을 집에서 보내는 것은 여러모로 고단하다. 아들은 집에만 있는 날이 지겹고, 그래서 이따금 떼를 쓴다. 시간을 빠르게 흐르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언제나 ‘뭘 해야 하나’고민을 하곤 한다. 그렇다고 매번 놀이공원이나 으리으리한 실내 놀이시설 같은 곳을 이용하자니 체력이나 비용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연휴의 마지막 날, 내가 내어 놓은 아이디어는 아들을 데리고 시내버스를 타는 것이었다. 아빠 차를 타고 어린이집에 등·하원 하는 동안 버스를 만날 때마다 아들은 ‘뻐쓰! 뻐쓰!’하고 소리치곤 한다. 집에서도 버스 장난감 갖고 노는 것을 제일 좋아하는데, 정작 함께 대중교통을 타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렇게 좋아하는 버스에 직접 올라타서 달리면 아들은 또 얼마나 신이 날까. 처음 하는 경험이고 먼 거리를 가는 것은 너무 큰 도전이니 집 앞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딱 세 정거장만 가 보기로 했다. 정류장에서 십 분 정도를 기다리니 버스가 도착했다. 아들은 또 ‘뻐쓰! 뻐쓰!’를 외쳤는데 그걸 우리가 직접 타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다. 버스에 오르자마자 난생 처음 보는 버스 안의 모습과, 그 안에서 흔들리는 버스 손잡이들, 취- 소리를 내며 열리고 닫히는 출입문을 잔뜩 커진 눈으로 바쁘게 살폈다. 간간히 “우! 우!” 하고 소리치기도 했다. 그렇게 십 분 정도를 달리고, 아들의 작은 손을 잡고 하차벨을 누르게 해 주고 버스에서 내렸다. 우리가 버스로 달리는 동안 엄마는 차를 몰고 버스의 뒤를 좇고 있었다. 엄마 차를 타자마자 아들은 흥분한 목소리로 무언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대로 차를 달려 아들의 할아버지 댁으로 향했다. 거기서도 아들과 버스 얘기를 많이 했다.
“우리 버스 탔지?”
“응!”
“누구랑 탔어?”
“아빠!”
우리 입장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일상이 이렇게 아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 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그 놀라움이 내게도 조금 전해지는 것 같아 덩달아 기쁘다. 이런 경험들을 하나하나 열어주는 것도 즐겁고, 그 순간을 함께 하는 것도 무척 행복한 일이다. 물론 아들의 모든 처음을 다 함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반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고, 처음 친구들끼리 여행을 떠나는 날도 있을 텐데 그런 처음들은 이야기로 듣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들의 처음을 열어주는 호사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때다. 많은 육아 선배들이 말한다. “즐길 수 있을 때 즐겨.” 지금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을 내 눈에도 꼭꼭 눌러 담아둬야지.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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