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시절을 다시 살아볼 수 있다는 것이 육아의 좋은 점 중 하나다.’ 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접한 적이 있다. 그것은 육아를 통해 잊고 있던 어느 순간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된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나도 아들과 시간을 보내며 잊었던 기억들을 많이 되찾았고, 그것은 마치 과거로 돌아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일이었다.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 댁에 가면 특히 그런 경험을 많이 한다. 손주와 놀아줄 때 비치는 아버지의 표정은 나와 둘이 있을 때는 볼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 표정을 보면 낯설다는 느낌보다는 오랜만이라는 느낌이 든다. 까마득한 옛날에 아버지가 나와 놀아주실 때 바로 저 얼굴이었다. 예전 그 모습은 지금보다 훨씬 젊었지만 분명히 언젠가는 매일 보던 그 얼굴임이 틀림없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내게 참 좋은 아빠였다. 지금은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라 부르며 꼬박꼬박 존대도 하고 있지만 그때 우리 아빠는 친구처럼 다정하고 재미난 사람이었다. 어떤 아빠는 사회적으로 훌륭하고 또 어떤 아빠는 밖에서도 존경 받는 사람이겠지만, 사실 나는 그런 건 잘 모른다. 어떤 인생을 사셨건 우리 아버지는 좋은 아빠였다. 요즘 들어 떠오르는 기억들이 그 증거고.
그렇다면 우리 엄마는 어떤 엄마였던가. 가끔 지나치게 엄하고 극성맞은 부분도 있었지만 역시 따뜻했고, 어렸던 내가 당시에 이미 실시간으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를 사랑했다.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누구보다 애쓰셨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우리 엄마가 아주 좋은 엄마라고 말하기는 좀 어렵다. 너무 일찍 나의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3학년 정도면 엄마 입장에서는 아들을 다 키워 놓고 떠난 것이라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이후에도 이따금 엄마가 필요했던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것으로 엄마가 해야 할 역할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축구경기에서 아무리 좋은 플레이를 보여줬어도 전반전만 마치고 그라운드를 빠져나간 선수에게 만점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여전히 함께 늙어가며 함께 해주는 다른 엄마들에 비해 일찍 세상을 떠나버린 우리 엄마를 백 점 짜리 엄마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엄마는 병으로 떠났다. 마흔 다섯 살 무렵에 이미 손쓰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된 병을 발견했고, 삼 년 정도를 싸우다 눈을 감으셨다. 나는 그것을 일찍 발견하지 못한 아쉬움을 내 노래 ‘타임머신’의 가사에도 적었다. ‘엄마 우리 걱정만 하고 살지 말고 엄마도 몸 좀 챙기면서 살아요. 병원도 좀 자주 가고….’ 마흔 정도에만 건강검진을 받았더라면 지금까지도 곁에 계시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을 오랫동안 품고 살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내가 마흔이 되었다. 미뤄두고 있었던 건강검진을 받아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은 바로 엄마 때문이었다. 가족력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니 나도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엄마보다 몇 년 먼저 병원을 찾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가만히 두었더라면 어쩌면 큰 문제가 되었을지 모를 몹쓸 것을 하나 찾아내게 되었다. 의사선생님은 다행히 간단한 수술로 손쉽게 치료할 수 있는 시기에 잘 발견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수술날짜를 받아두고 아버지와 밥을 먹으며 자초지종을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네 엄마가 너를 살린 것 같다.” 라고 말씀하셨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별 것 아닌 간단한 수술이었지만 혹시 모를 출혈을 대비해야 한다고 해서 병원에 하룻밤 입원을 하게 되었다. 아픈 데는 하나도 없는데 환자복을 입고 병원 침대에 누워 수술을 기다리는 기분은 참 묘했다. 아무 이유도 없이 문득 눈물이 났다. 분명 나는 좋은 아빠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약속도 했다. 그런데 우리 엄마와 같은 이유로 그것들을 지키지 못할 뻔 했다고 생각하니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두려움이라기에는 조금 기뻤고, 안도감이라기에는 조금 슬펐다. 예상대로 수술은 아주 손쉽게 마무리 되었고, 나는 그 전과 다름없이 가족의 곁으로 돌아와 이 글을 쓴다.
아들을 위해 해 주고 싶은 것이 참 많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가르쳐주고 싶은 것도 많다. 가급적이면 훌륭한 인생을 살고 나 스스로 아들이 참고할 만한 견본이 되어주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런 걸 다 해주려면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일단 내가 아들의 곁에 건강한 모습으로 오래 있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쩌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교육도 아니고 재산도 아니고, 바로 부모 자신이 건강하게 있어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치 자식이 부모에게 그 존재만으로 선물인 것처럼 말이다.
수술 받은 곳이 거의 아물어 간다. 나는 이제 이전보다 건강한 아빠가 되어보기로 한다. 귀찮아도 자주, 꾸준히 운동을 해야지. 스트레스를 술과 음식으로 풀곤 하던 습관도 고쳐야겠다. 내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그런 것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살아가기로 결심한다. 너무 일찍 그리움으로 남아버린 나의 엄마보다 조금 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서.
*칼럼니스트 강백수(인스타그램 baeksoo_kang)는 2008년 시인으로 등단했고 2010년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원고지와 오선지를 넘나들며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포착한다. 6시에 잠들던 예술가로 살다가 이제는 6시에 일어나는 아빠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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