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영유아교육포럼은 조기 사교육 광풍 속에 대한민국 아이들의 빼앗긴 시간을 되찾기 위한 26인의 릴레이 기고 '아이들의 시간을 지켜주세요'를 연재합니다. 4살 아이가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치르고, 만 5세가 되면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실이 텅 비는 것이 지금 대한민국 영유아 교육의 현실입니다. 조기 선행학습은 아이들의 발달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누려야 할 놀이와 탐색의 시간을 빼앗고 있습니다. 영유아 교육 현장의 교사, 연구자, 부모, 정책 전문가 26인은 조기 사교육이 아이들의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우리 사회가 마주한 교육 현실을 짚고, 국가와 사회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조기가 아닌 ‘적기교육’을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를 제안합니다. 빨리 배우는 것이 아니라 제때 자라는 것, 그것이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편집자 말
“레벨테스트는 보지 않습니다. 아이와 대화하고 놀이하는 모습만 관찰합니다.”
유아대상 학원의 입학 상담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질문이 미리 정해져 있고 놀이 중 보인 반응이 등록이나 반 배정에 활용된다면, 이를 면담이나 관찰로만 볼 수 있을까요? 시험지가 없다고 평가와 선발의 기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 금지 규정의 부재가 만든 사각지대
유아대상 레벨테스트는 ‘4세 고시’, ‘7세 고시’로 불리며 조기 사교육 경쟁의 관문으로 지적되어 왔다.
2023년 교육부 특별점검 결과를 국회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유아대상 영어학원 847곳 중 144곳, 17%가 입학 전 레벨테스트를 활용해 원아를 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교육부가 2025년 전국 유아대상 영어학원 728곳을 전수조사한 결과에서는 레벨테스트를 실시한 학원이 23곳으로 확인되었다. 이 중 3곳은 선발 목적, 20곳은 등급 분반 목적이었다.
교육부는 해당 학원에 상담 또는 추첨 방식으로 선발 방식을 변경하도록 행정지도했다.
당시에는 유아대상 레벨테스트 자체를 직접 금지하는 법적 근거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 명칭을 바꾼 평가의 문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2025년 10월부터 12월까지 서울 소재 3개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신입생 설명회를 참관한 자료에서는 학원이 레벨테스트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면서도 경력반 지원자에게 최근 SR 점수, 담임교사 리포트, 유아가 직접 작성한 글, 말하기 영상 등을 제출받는 사례가 확인되었다.
이것으로 유아의 수준에 따라 수준별 테이블 배치, 차등화된 학습자료를 달리 제공하겠다는 설명도 제시되었다.
즉 시험 또는 레벨테스트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유아의 수행 결과나 외부자료에 따라 소속 집단과 교육 내용을 달리한다면 그 행위는 수준 판정과 배정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따라서 규제는 행위의 명칭보다 목적, 절차, 결과의 활용 방식을 기준으로 설계될 필요가 있다.
◇ 법적 기반 마련
개정 「학원의 설립‧운영 및 과외교습에 관한 법률」은 2026년 3월 1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3월 31일 공포되었다.
법률은 2026년 10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법은 학원설립‧운영자, 교습자와 개인과외교습자가 유아를 대상으로 모집이나 수준별 배정을 목적으로 시험 또는 평가를 실시하지 못하도록 했다.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과태료와 행정처분의 근거가 마련되었다.
교육부는 2026년 7월 입법예고한 시행령 개정안은 필기‧구술‧면접‧실기시험 뿐만아니라, 문제풀이‧과제수행‧발표와 같은 수행형 평가를 금지 대상에 포함했다.
외부 성적표‧등급표‧이수증 등의 요구하거나 활용하는 행위도 금지 대상에 포함하였다.
◇ 관찰‧면담의 경계
시행령 개정안은 유아가 등록하거나 교습을 받기 시작한 이루 보호자의 사전 동의를 받아 교육활동 지원을 목적으로 놀이·활동 참여 과정을 관찰하거나 대화·상담하는 방식의 진단을 예외적으로 허용했다.
학원은 진단의 목적·내용·절차·결과 제공 방식과 활용 사항을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사전 동의를 받아야 한다.
문제는 ‘교육활동 지원 목적’의 관찰‧면담과 ‘수준별 배정 목적’의 평가를 현장에서 어떤 기분으로 구분하는 것인가에 있다.
등록 후 실시됐다는 점과 관찰‧대화‧상담이라는 형식만으로 진단의 적법성이 확보되지 않는다.
진단 결과가 반 이동, 교재 단계, 과제량, 보충수업, 재등록 조건 등에 연계된다면 해당 진단은 교육지원의 범위를 넘어 수준별 배정 또는 사실상 선별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또한 보호자 사전 동의도 형식적 절차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미 등록한 보호자가 교육활동 지원이나 성취 확인을 이유로 제시된 동의를 거부하기는 쉽지 않다.
동의 거부 또는 철회가 수업 배치, 상담, 재등록 조건에서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도 고려해야 한다.
동의서는 진단을 정당화하는 요건이 아니라 보호자의 알 권리와 거부권‧철회권을 보장하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 시행령에 담아야 할 기준
첫째, 행위의 명칭보다 기능과 결과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상담, 놀이 관찰, 적응 확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더라도 그 결과를 등록 허용, 거부, 대기 순번, 반 이동, 재등록 조건에 활용된다면 모집 또는 수준별 배정 목적의 평가로 봐야 한다.
둘째, 관찰‧면담과 구조화된 평가를 구분해야 한다.
미리 정한 질문을 제시하거나 특정 답변을 유도하는 행위, 읽기‧말하기‧문제해결을 요구하는 행위, 반응 기준‧수행 시간‧정확도를 기록하는 행위, 체크리스트 또는 채점 기준을 활용해 유아의 수행을 비교‧판정하는 행위는 구조화된 평가에 해당할 수 있다.
따라서 이런 행위를 허용되는 진단 범위에서 제외할 세부 기준이 필요하다.
셋째, 등록 후 진단은 교육활동 지원에 필요한 범위로 제한해야 한다.
체험‧임시‧조건부 등록의 단계에서 실시한 진단 결과를 이유로 등록을 취소하거나 반을 배정하고, 재등록 조건에 제한하는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등록 시점과 진단 가능 시점을 구체화해 야 한다.
넷째, 보호자 동의에는 거부권과 철회권을 포함해야 한다.
진단 동의를 등록 계약과 분리하고, 동의 거부나 철회를 이유로 수업 배치와 재등록 조건에서 불이익을 주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특히 포괄적 동의서 한 장으로 반복적인 관찰과 평가를 정당화하지 않도록 진단 목적, 항목, 횟수, 기록 방법, 보관 기간, 결과 제공 범위를 특정할 필요가 있다.
다섯째, 간접 자료와 디지털 자료를 활용한 우회적 평가도 차단해야 한다.
말하기 영상, 쓰기 자료, 독서지수(SR지수), 포트폴리오, 교사 의견서, 기존 관찰기록, 온라인 진단 결과 등이 모집이나 수준별 배정에 활용되는 경우를 상시 점검해야 한다.
여섯째, 위반행위의 반복성과 고의성을 반영한 처분 기준이 필요하다.
입법예고된 시행령안은 위반 횟수에 따라 1회 100만 원, 2회 200만 원, 3회 이상 300만 원의 과태료 부과 기준을 제시하였다.
2024년 기준 유아대상 반일제 이상 영어학원의 월 평균 학원비는 서울 약 136만 원, 경기 5개 지역 약 123만 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과태료의 행정 처분 기분이 충분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의적 행위와 반복 위반에 대해서는 법률상 행정처분 규정을 실효성 있게 적용할 세부 기준이 마련되어야 한다.
◇ "시험지 없애는 데 그쳐선 안 돼…‘편법 평가’ 차단해야"
레벨테스트 금지의 목적은 시험지 한 장을 없애는 데 있지 않다.
유아의 능력을 시험 또는 평가로 판단해 입학 기회와 교육 환경을 다르게 하는 경쟁 구조를 차단하는 데 있다.
시험을 관찰로 바꾸고, 면접을 상담으로, 점수를 기록으로 바꾸더라도 모집, 수준별 재정, 재등록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기능이 남아 있다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영유아 적기교육은 유아를 이른 시기부터 평가하고 수준별로 구분하는 교육이 아니다.
유아가 시험을 준비하지 않아도 교육을 받을 수 있고, 수행 결과로 교육 기회가 달라지지 않도록 국가가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따라서 입법예고된 시행령은 ‘무엇을 시험이라고 부르는가’보다 ‘그 행위가 유아의 등록‧배정‧재등록과 교육 내용에 어떤 결과를 발생시키는가’를 기준으로 편법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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