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의 동반자살은 없습니다"
"부모와 자녀의 동반자살은 없습니다"
  • 안은선 기자
  • 승인 2014.03.18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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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자살',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인식 내포

【베이비뉴스 안은선 기자】

 

[특별기획] 숨은 아동 인권 찾기
 
눈에 드러나는 아동에 대한 심각한 신체적 학대나 정서학대, 방임만큼이나 어른들이 관심을 가져야 하는 부분이 바로 만성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아동 학대다. 베이비뉴스(대표 최규삼)는 푸르니보육지원재단(이사장 송자)과 함께 어른들이 무의식중에 행하고 있는 행동들과 사회 구조물 가운데 우리 아이를 아프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잘못된 행동을 살펴보고, 아이들의 인권을 되짚어보는 ‘숨은 아동 인권 찾기’ 특별기획을 진행하고 있다. 그 열 번째로 언론에서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리고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에 대한 관심을 무디게 하는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짚어봤다.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에 대해 방송사 뉴스에서 '동반자살'로 보도하고 있는 모습. 아동인권 전문가들은 이를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에 대해 방송사 뉴스에서 '동반자살'로 보도하고 있는 모습. 아동인권 전문가들은 이를 "명백한 살인과 아동 인권 침해를 온정의 대상으로 만들고, 부모가 자기 뜻대로 자녀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릴 위험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안기성 기자 sinsun@ibabynews.com ⓒ베이비뉴스

 

◇ ‘동반자살’이 아니라 ‘자녀 살해 후 자살’

 

최근 서울 송파구 세 모녀의 사건 이후에도 잇따라 가족단위 사망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부모와 자녀의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했거나 그런 시도를 한 사건이다.

 

지난 2일에는 동두천에서 30대 여성이 네 살배기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숨을 거뒀고, 3일에는 경기 광주에서 40대 남성이 두 자녀(13살, 4살)가 방 안에 함께 있는 상황에서 번개탄을 피워 모두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또 이튿날인 4일에는 익산에서 30대 여성이 7살, 2살 두 자녀와 한 방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30대 여성과 2살 딸은 목숨을 건지고 7살 아들만 숨졌다.

 

하지만 유사 사건을 살펴보면 부모가 삶을 비관해 자살을 시도하기 바로 직전, 자신의 아이를 먼저 죽이는 일이 적지 않게 발생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함께 숨진 어린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는 엄연한 살인 행위다. 아이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이라고 봐야 옳은 것이다.

 

아동인권 전문가들은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하는 사건이 언론에 ‘동반자살’로 보도되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하며 “이는 명백한 살인과 아동 인권 침해를 온정의 대상으로 만들고, 부모가 자기 뜻대로 자녀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퍼뜨릴 위험을 지니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와 관련해 국제아동인권보호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6일 관련 사건을 ‘동반자살’이나 ‘동반투신’이라는 제목으로 보도한 17개 언론사 앞으로 ‘자녀 살해 후 부모 자살 사건 보도 시 동반자살 표현 사용 중지’를 요청하는 의견서를 발송했다.

 

이 의견서를 통해 세이브더칠드런은 “여론을 선도하는 언론 매체가 아동의 인권을 침해하고 자녀가 부모의 소유물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은연중에 유포하며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에 대한 관심을 무디게 하는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주길 강력히 호소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문제를 인지하고 있는 언론사의 경우 동반자살을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고 표현하거나, 이 표현 역시 자극적이라고 보는 곳들은 ‘일가족이 함께 숨진 채 발견’ 등으로 둘러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의견서를 받고서도, 언론사들의 상당수는 여전히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계속해서 쓰고 있다. 의견서가 발송된 이후인 지난 13일 광주에서 발달장애 아들을 포함해 일가족 3명이 숨진 채 발견된 사건에 대해 상당수 언론사들은 계속해서 ‘동반자살’이라는 헤드라인을 뽑아 보도한 것이다.

 

이에 대해 김희경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장은 “언론사에 의견서를 전달한 이후에도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써 보도한 언론사에는 다시 연락해 해당 표현을 쓰지 말아 달라고 요청했다”며 “언론보도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해당 표현을 사용하는 언론사에는 개선요구를 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 ‘동반자살’,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보는 표현

 

한국 정부가 비준한 유엔아동권리협약 6조에는 ‘모든 아동은 생명에 관한 고유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 연구에 따르면 ‘일가족 동반자살’로 보도된 사건의 절반 이상은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한 사건인 것으로 조사됐다.

 

‘동반자살’ 또는 ‘일가족 집단자살’ 등으로 표현되고 있는 부모 자녀의 동반자살에 대한 보도는 아동을 하나의 존엄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부모의 소유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김희경 부장은 “동반자살이라는 용어 자체가 이미 부모가 자녀의 목숨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부모들은 ‘내가 죽으면 남겨진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까’라는 생각에 자녀를 죽이고 자살을 한다. 하지만 설령 개인이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부모가 자녀를 죽일 권리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부모가 도저히 살 수 없다고 해도 남겨진 자녀가 반드시 생존 불가능의 상태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동반자살’은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로 바라보는 뒤틀린 문화의 극단적 표현”이라며 “관련 보도 시에는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했다’고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사회적 안전망의 부재를 개인의 비극으로 치부

 

언론을 통해 자살 사건이 크게 보도된 이후에는 모방자살이 잇따라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자녀 살해 후 자살 사건에 대해 제목에서든, 본문에서든 동반자살이라고 표현하는 것 역시 이와 유사한 사건이 발생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에 언론의 보도의식이 그만큼 중요하다.

 

지난해 9월 보건복지부는 자살예방의 날을 맞아 발표한 ‘자살보도 권고기준 2.0’에서 자녀 등 다른 사람을 살해하고 자살하는 사건을 동반자살로 표현하는 것과 같이 사안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는 표현을 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요청했다.

 

또한 ‘연이은 자살’, ‘또 자살’과 같은 선정적인 표현을 피하고, ‘자살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자살이 마지막 탈출구였다’ 등 자살을 정당화하거나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권고했다.

 

일반적으로 부모에 의한 자녀 살해가 지속되는 이유를 살펴보면,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한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지만, 이웃과 사회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다는 점도 또 다른 원인으로 볼 수 있다. 부모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자녀들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으리라 예측하기 때문에 자신의 목숨을 끊을 때 자녀를 살해하는 것.

 

따라서 이러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언론에서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비극으로 잘못 인식하도록 만드는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대신에 사회적 안전망이 제대로 갖춰지고 작동할 수 있도록 인식을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있다.

 

김희경 부장은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은 사건의 초점을 ‘오죽했으면…’이라는 반응에서 드러나듯 개인의 비극에 맞춰 부모의 안타까운 심정을 동정하고 끝나도록 만드는 것이 문제”라며 “그보다는 우리 사회가 불가피하게 부모 없이 혼자 살게 될 아이도 살 수 있도록 돌봄이나 사회적 안전망을 갖출 수 있도록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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