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회사에 육아휴직을 요구한 직장맘 A씨는 담당 본부장으로부터 “이직의 충분한 시간을 줄 테니 이직 준비를 하라”는 답변을 들었다. 사실상 회사를 그만두라는 소리였다. A씨가 거부 의사를 밝히자, 담당 본부장은 “육아휴직처리를 해주니, 사직서를 써두고 나가라”고 말했다. A씨는 “회사에서 내가 나가길 원하면 나를 권고 사직하는 것이니, 육아휴직 후 복직한 다음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게 권고사직 처리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담당 본부장은 “계속 육아휴직을 고집할 경우 한 달 이전에 신청해야 하니, 그 한 달 이내에 회사에서 네가 스스로 그만두게끔 괴롭힐 것”이라고 협박했다.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에 들어온 한 상담 사례다. 직장맘들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쓰면서도 불안감에 휩싸이고 시시 때때로 사직을 권고 받는다. 겨우 휴직을 받는다고 해도 회사로 복귀하지 못하기도 한다. 저출산시대에서 여성의 출산과 양육을 위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은 직장맘의 경력단절을 예방하는 필수적인 제도지만, 여전히 기업문화는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는 2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 지하 2층 태평홀에서 ‘2014 직장맘 경력유지를 위한 토론회’를 열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가 실제 여성들의 권리로 작용하기 위해 변화돼야 할 방안들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제도는 1987년 관련 법을 통해 보장된 제도로 현재 출산휴가 90일, 육아휴직 1년이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제도들은 제대로 안착되지 못했다. 2012년 5월부터 2014년 3월까지 서울시직장맘지원센터에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을 이유로 상담 받은 사례는 총 1732건으로 전체(2749건) 상담 건수의 63%를 차지했다. 제도별로 상담 사례 유형을 살펴보면, 출산휴가는 제도자체, 육아휴직 사용방법 등 불안요인에 의한 상담요청이 46%로 가장 많았다.
반면 육아휴직은 육아휴직 미부여, 해고, 사직권고 등 해고를 비롯한 불리한 처우가 60%로 많게 나타났다. 특히 상담자들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사용 도중이나 종료 후 해고 등의 불리한 처우로 상담을 요청하고 있었다.
주제발표자로 나선 이선경 법무법인 유림 변호사는 “사업주가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사용에 협조적이지 않은 경우 그 문제를 직장맘 개인이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며 “출산휴가와 육아휴직과 관련한 판례가 많지 않다. 이는 임신 중이거나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직장맘들이 많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소송을 수행하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여기에는 출산과 육아를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는 우리 사회의 잘못된 인식이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로자가 사업주의 사직권고를 거부하는 등 강경하게 나온다고 해도 이를 감당하는 일은 버겁기만 하다. 이 변호사는 “근로자가 사직 권고를 거부한다고 해도 임신부의 경우 사직권고 자체가 상당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해 임신부와 태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직장맘 개인이 사업주와 홀로 싸우며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적인 해결책인 필요하다. 이 변호사는 “사업주가 승인하지 않거나 일정기간이 지나도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는 경우, 근로자가 신청한 개시일에 출산휴가 및 육아휴직이 개시된 것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신청 시 발생하고 있는 휴가, 휴직 승인거부나 불이익취급 및 해고 위협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휴가나 휴직 신청을 제3의 공적기관에서 할 필요가 있다”며 “이는 현장에서 실업급여를 미끼로 직장맘에게 권고사직을 시키거나 복직을 포기하게 하는 것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분쟁이 발생할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대처하게만 할 것이 아니라 외부 공적 기관에 조정을 신청해 협의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며 “사업주의 금전적 부담을 덜어주는 출산육아기 고용지원금과 대체인력지원금 제도에 대한 적극적인 홍보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두 번째 주제발표자인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노무사는 “출산휴가는 태어날 아이의 복지 뿐 아니라 임신 중인 근로자의 건강권과 직결된 문제다. 출산휴가 등의 사용을 위한 임신추적관리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 노무사는 “출산휴가 사용과 관련한 문제는 출산휴가를 신청할 때 문제되는 게 아니라 임신사실을 안 순간부터 임신 중인 근로자에게 각종 불이익이나 사직 종용 등이 발생된다”며 “출산휴가 사용을 실효적으로 보장하기 위해서는 임신을 한 근로자가 임신 사실을 고지하는 순간부터 국가기관을 통해 사용자와 근로자의 권리의무를 규율하면서 출산휴가 사용을 위한 체계적인 시스템이 가동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박 노무사는 “근로자가 임신 사실을 고용센터 등 관련기관에 고지하면, 임신 이후 출산휴가 신청 및 사용, 육아휴직관련 정보 등을 안내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민대숙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대표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연동해 임산부를 파악하고, 임산부 중 직장가입자에 대해 출산전후휴가, 육아휴직 등 제도에 관한 홍보물 및 휴가, 휴직제도 활용 매뉴얼을 배포하는 것은 충분히 정책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며 “이 데이터를 활용한다면 임신한 직장맘과 자녀를 둔 직장맘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고 비용 대비 효율성을 최대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것은 후속적으로 모색할 문제”라고 동조했다.
민 대표는 “사업주가 법적으로 보장된 근로자의 모성권, 부성권에 대해 압력을 가하는 것은 분명한 차별행위다. 이를 엄격하게 규제하는 사전예방시스템에 대한 정책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육아휴직 제도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정부 쪽에서도 방안을 고민 중인 상황이다. 김부희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장은 “고용부는 현재 육아휴직 종료 후 지급하는 육아휴직 장려금 구조를 바꾸려고 하고 있다”며 “사업체가 육아휴직을 부여하면 장려금 일부를 즉시 주고 나머지 대부분은 휴직이 끝나고 나서 계속 고용할 경우 주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김 과장은 “출산휴가 등을 가는 경우 육아 장려금과 같은 지원금을 받을 수 있고 육아휴직 등을 이유로 해고하면 어떻게 처벌을 받는지를 적은 안내물을 사업주와 근로자에게 보내면 효과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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