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차 들고 버스타면 기사님한테 혼나
유모차 들고 버스타면 기사님한테 혼나
  • 정가영 기자
  • 승인 2014.10.01 08: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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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 도입했지만 유모차는 '문전박대' 저상버스, 모두의 버스라는 인식 확산 필요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특별기획] 저상버스, 유모차도 타고 싶다

  

유모차는 엄마들의 필수품이자, 아이들의 다리이다. 유모차에 탄 아이는 엄마와 함께 바깥으로 나와 세상을 만난다. 유모차는 가고 싶은 곳이 많다. 하지만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대표적인 대중교통인 저상버스에 유모차는 마음껏 오를 수 없다. 곳곳의 계단들은 유모차가 가야 할 길을 막아선다. 아직도 왜 귀찮게 유모차를 끌고 나왔냐는 시민들의 시선은 낯 뜨겁기만 하다. 저출산 시대, 아이들을 낳고 잘 키울 수 있는, 유모차를 끌고 잘 다닐 수 있는 환경과 의식 변화가 절실하다.

 

유모차 이용자들이 마음 놓고 외출할 수 있도록 보행 문화를 개선하고자 뉴시스와 베이비뉴스는 영유아 보행권 & 어린이안전 연중캠페인 '유모차는 가고 싶다'(http://safe.ibabynews.com)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특별시와 서울특별시의회, 유아용품 전문기업 (주)에이원과 아프리카코리아가 공식 후원하는 캠페인이다. ‘유모차는 가고 싶다’ 특별기획으로 저상버스에 유모차 이용자들이 탈 수 없는 현실을 짚어보고, 아이와 엄마가 마음껏 세상을 누빌 수 있는 사회가 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 지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기사 싣는 순서]

 

① 유모차 이용자 외면하는 저상버스
② 해외 선진국의 저상버스는 특별하다
③ 교통약자가 편안한 저상버스 문화 만들기

  

“버스에 유모차요? 유모차 끌 땐 버스 탈 생각을 아예 안하죠.”

 

여는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아이와 이동할 때 유모차를 즐겨 사용하는 두 아이의 엄마 윤해진(33·서울 강서구) 씨. 첫 아이를 키울 때는 유모차를 사용하지 않았던 윤 씨는 아이를 안고 다니느라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간 이후로는 되도록 유모차를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윤 씨는 유모차를 끌고 버스 탈 생각은 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유모차가 탈 수 있는 저상버스의 운행이 많지 않을뿐더러 버스를 탄다고 해도 사람들 눈치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는 것이다.

 

윤 씨는 “저상버스가 있다 해도 사람은 많고 유모차 둘 공간도 없어 탈 수 없다”며 “지하철에는 유모차 채로 바로 탈 수 있지만, 결국 버스에는 유모차와 아이를 분리해 아이를 안고 유모차를 접어서 타야 하니까 힘들다”고 토로했다.

 

교통약자를 위해 저상버스가 도입된 지 햇수로 11년이 됐지만, 유모차 이용자들에게 있어 저상버스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있다. 저상버스 보급률의 부족과 버스 운전기사나 일반 시민들의 유모차 이용자에 대한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데 어려움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늦은 저녁 서울 중구 광희동 동대문 밀리오레 앞 버스정류장에서 한 엄마가 네 살배기 자녀를 파란색 간선 일반버스에 먼저 올라타게 한 후, 유모차를 접어 버스에 오르고 있다. 이날 버스에 오르기 전, ‘뒷차 타라’는 버스 기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에 올랐던 아이 엄마는 정류장 다섯 개를 지나 금호역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시도했는데, 버스 뒷문이 닫혀 잠시 당황하며 주저하는 사이, 옆에 있던 승객이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쳐 비로소 안전하게 하차할 수 있었다. 김고은 기자 ke.kim@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지난달 27일 늦은 저녁 서울 중구 광희동 동대문 밀리오레 앞 버스정류장에서 한 엄마가 네 살배기 자녀를 파란색 간선 일반버스에 먼저 올라타게 한 후, 유모차를 접어 버스에 오르고 있다. 이날 버스에 오르기 전, ‘뒷차 타라’는 버스 기사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버스에 올랐던 아이 엄마는 정류장 다섯 개를 지나 금호역 버스정류장에서 하차를 시도했는데, 버스 뒷문이 닫혀 잠시 당황하며 주저하는 사이, 옆에 있던 승객이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쳐 비로소 안전하게 하차할 수 있었다. 김고은 기자 ke.kim@ibabynews.com ⓒ베이비뉴스

 

현행법은 유모차 이용자를 교통약자로 명시하고 저상버스를 자유롭게 이용하도록 하고 있다. 2005년 제정된 교통약자이동증진법에 따르면 저상버스는 교통약자가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 버스로, 일명 ‘계단이 없는 버스’를 말한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나 유모차 이용자, 노약자, 임산부, 어린이 등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편리하게 버스를 오르내릴 수 있도록 버스 차체 바닥이 낮고, 버스 출입구에 경사판(슬로프)이 설치돼 있다. 버스 안에는 의자를 접어 휠체어 등을 놓을 공간도 마련돼 있다.

 

하지만 일반버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저상버스의 수는 유모차 이용자들의 버스 이용을 막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달 29일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국토교통부로부터 전달받은 ‘저상버스 운행 및 도입’ 관련 자료에 따르면 현재(2013년 말 기준) 전국의 시내버스 3만 2552대 중 저상버스는 16.4%인 5338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에서 목표한 6214대(19.1%)에 미치지 못한 수준이다. 특히 지역적으로도 차이가 커, 서울은 저상버스 도입률이 28.5%(전체 7534대 중 2147대)였지만 경북은 4.1%(전체 1088대 중 45대)로 가장 낮았다. 정부는 2016년까지 저상버스를 전국 시내버스의 41.5%까지 보급한다는 입장이지만, 계획대로 진행될 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시내버스의 경우 저상버스가 도입되고 있지만, 고속·시외버스는 저상버스 도입마저 어렵다. 국토교통부는 내년 고속·시외버스에 장애인 등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16억 원을 요구했으나 기획재정부가 전액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리시에 산다는 한 엄마는 “버스를 몇 대씩 보내야만 저상버스가 온다. (일반) 버스에 있는 계단은 두, 세 개뿐이지만 아이와 짐을 들고 올라가려면 정말 힘들다. 다른 사람들은 다 타고 떠나는데, 저상버스만 하염없이 기다리면 아이도, 나도 지친다”고 전했다.

 

이언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를 위한 시설지원 및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예산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다.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유모차 이용자들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도 문제다. 실제 많은 엄마들은 유모차를 타고 저상버스에 타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데도 불구하고, 유모차를 갖고 버스에 탔다가 사람들로부터 “왜 유모차를 갖고 버스에 타냐”는 핀잔을 듣는 경험을 겪는다.

 

30개월, 6개월 아이들을 키우며 쌍둥이 유모차를 사용하고 있는 김지연(31·서울 서초구) 씨는 “버스를 탈 때면 유모차에서 아이를 내려 앉은 뒤 유모차를 미리 접고 타야 한다”며 “버스를 탔다가 유모차를 챙기면서 아이와 내리려는데, ‘빨리 빨리 아이 손을 잡으라’는 기사분의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씨는 특히 “점점 자라는 아이를 매일 안고 다닐 수도 없고, 아이들은 어른이랑 다르다 보니, 걷다가도 금방 안아달라고 한다. 사람들은 왜 유모차를 끌고 나오느냐고 하는데, 아이 키울 때 유모차는 필수”라며 “아직까지 유모차 이용자들은 교통약자라는 인식이 없는 것 같다. 저상버스에 유모차가 탈 때는 뒷문에서 발판이 나와야 하지만 실제로 그걸 신경써주는 사람들은 없다”고 답답해했다.

 

엄마들이 자주 가는 온라인커뮤니티에는 저상버스를 이용하는 엄마들의 하소연이 종종 올라오고 있다. 의정부에서 저상버스를 자주 이용한다는 한 엄마는 “아이와 주로 저상버스를 타고 다니는데, 버스만 타면 운전기사님들이 ‘유모차 접어서 타세요’라고 따끔하게 말씀하신다”며 “저상버스는 유모차 탑승이 가능하다고 말해도 ‘저상버스는 휠체어만 탈 수 있다’고 그러신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의 한 지하철 역과 버스환승정류장과 연결되는 횡단보도에서 두 엄마가 각각 유모차를 밀며 걸어가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의 한 지하철 역과 버스환승정류장과 연결되는 횡단보도에서 두 엄마가 각각 유모차를 밀며 걸어가고 있다. 이기태 기자 likitae@ibabynews.com ⓒ베이비뉴스

 

아예 버스를 이용하는 엄마들은 유모차 대신 아기띠를 선택하기도 한다. 지난달 29일 오후 문화센터, 백화점 등이 몰려 있는 신도림 디큐브시티를 방문했다가 귀가하기 위해 신도림역 앞 버스정류장에 모인 엄마들은 아기띠에 아이를 안고 힘겹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로 다섯 정거장을 간다는 한 엄마는 “아이가 8개월이라 아기띠를 하면 어깨와 허리가 너무 아프지만, 마음만은 편하다”며 “유모차를 접어서 버스에 탔는데도 어떤 아주머니한테 ‘자리도 없는데 애기 엄마만 생각한다’고 욕 먹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는 아기 키우는 게 유세냐는 소리 들을까봐 아기띠 메고 눈치 보면서 다닌다”고 말했다.

 

특히 ‘저상버스는 휠체어 장애인만 탈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들은 유모차 이용자들의 저상버스 이용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애초 저상버스는 장애인단체 등에서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활동을 통해 도입되긴 했지만, 장애인, 유모차 이용자, 노약자, 일반 시민 등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버스다. 영국, 핀란드 등 선진국에서는 휠체어 장애인과 유모차 이용자 모두 저상버스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시민의식이 형성돼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가끔가다 유모차 이용자들이 저상버스를 이용하면 안 되냐는 문의가 올 때가 있다”며 “저상버스는 휠체어 장애인뿐만 아니라 유모차를 이용하는 교통약자 모두가 이용할 수 있다. 이는 법으로 명시된 부분”이라고 말했다.

 

장애인단체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은 올해 초 이동권소송공동연대를 구성하고 교통약자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한 소송을 제기하는 등 교통약자의 저상버스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는 상태다. 이 소송은 광역 간 이동, 시외이동을 위한 버스에 저상버스 도입을 요구하라는 것으로 휠체어 이용 장애인, 유모차 이용 부모, 계단 이용이 어려운 노약자 등 다양한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소송을 도맡고 있는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의 이미현 간사는 “저상버스가 모든 교통약자를 위한 버스가 되려면 저상버스가 장애인, 유모차 이용자, 임산부 등 교통약자들이 당연히 타는 버스고, 휠체어나 유모차 이용자가 버스에 탔을 때 기다리는 것도 당연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한다. 내가 교통약자를 배려하면 그만인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 간사는 “해외에서는 휠체어 이용 장애인이나 유모차 이용자가 타면 운전기사가 나와서 잘 타는지 확인하고 안전벨트까지 채워주며, 다른 사람들은 당연한 듯 기다린다. 이런 문화가 돼야 한다”며 “나도 아이를 키울 수도, 휠체어를 탈 수도 있고 노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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