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확대? 워킹부부가 진짜 원하는 것은?
육아휴직 확대? 워킹부부가 진짜 원하는 것은?
  • 칼럼니스트 권성욱
  • 승인 2015.04.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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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문제의 첫걸음은 직장내 인식 전환부터"

[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어린이집에 다닌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나은공주가 갑자기 설사를 하고 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해열제부터 먹이고 다음날 아침에 부랴부랴 가까운 소아과에 가니 바이러스성 장염이라고 합니다. 안 그래도 요즘 장염이 유행하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집단생활을 하니 잠복기인 아이 하나만 있어도 친구들 죄다 옮습니다. 약 먹이고 영양제 듬뿍 넣은 링거를 맞추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엄마 아빠의 지극 정성 덕분인지, 타고난 깡 덕분인지 그러니 조금 나은 느낌.

 

문제는 다음 날이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전염될 수 있으니 다 나았다는 증명서를 떼올 때까지는 등교 불가랍니다. 둘 다 직장에 나가는데 도대체 어디에 맡기라는 걸까요. 그렇다고 아이가 너무 어려서 낯가림 때문에 베이비시터를 쓸 수도 없습니다. 원장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솔직히 야속하기도 했습니다. 하다못해 어린이집 한편에 격리수용할 수 있는 곳이라도 있으면 싶더군요. 완치되려면 아무리 빨라도 1주일입니다. 결국 직장 눈치 보면서 집사람 이틀, 제가 이틀 연가를 내어 병간호하기로 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낳게 하려는 마음에 부지런히 링겔을 맞추었는데 아이들은 어른과 달리 손등에 주사를 놓습니다. 하도 맞아서 양쪽 손등이 퍼런 것이 정말 안쓰러웠습니다. 문제는 금요일인데 부모 마음을 아는지 목요일 저녁에 의사 선생님께서 "다 나았네요"라시네요. 할렐루야였습니다.

 

평소 예방접종은 빠짐없이 챙기는데다 자주 햇볕을 쬐게 하고 주말에는 야외에 뛰어나가 놀이터에서 땀 뻘뻘 흘리며 놉니다. 그래서인지 입때껏 잔병치레 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도 어린이집 생활을 하는 이상, 가끔은 친구들로부터 전염병에 옮을 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아프면 아픈 것이 걱정되기보다도 "또 1주일인가, 직장에 어떻게 얘기하지?"부터 머리에 떠오릅니다.

 

아무리 공무원이라도 아이 핑계대고 1주일씩 연가를 내는 것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입니다. 교사인 집사람은 수업을 일일이 조정해야 합니다. 그나마 이틀씩이라도 연가를 내어 병간호를 할 수 있는 것이 어디일까요? 저나 집사람은 일반 직장인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축에 속할 것입니다. 사기업들은 연가는 고사하고 잠깐 외출하는 것조차 "누구는 애 안 키워 봤나?"라며 온갖 눈총을 받습니다. 대한민국 워킹맘, 워킹대디치고 그런 얘기 한번 들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결국 아이 낳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어느 한쪽이 직장을 그만두게 되는 것도 가정을 배려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기 때문입니다.

 

아이 낳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정부에서는 남성 육아 휴직 활성화니 휴직 기간 확대이니 이런저런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료들이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를 내놓아도 왜 대다수 직장인들에게는 와 닿지 않은가, 오히려 "현실 모르는 공무원들의 탁상공론"이라고 비웃음 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부나 일부 전문가들은 남성 육아휴직 기간의 가장 큰 걸림돌이 경제적인 문제라며 육아 수당을 늘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물론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받으면 좋지만 그런다고 육아휴직자가 대폭 늘어날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써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분위기, 가정보다 일을 우선시하라는 직장 문화. 큰 맘 먹고 육아 휴직하고 돌아왔더니 자기 책상이 사라지는 걸 걱정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대다수 워킹 부부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직장 내 작은 배려입니다. 회사 일에 큰 지장이 없다면, 상사나 동료가 "누구는 애 안 키워봤나"라는 말 대신 "걱정 말고 애기 빨리 낫는 데만 신경 쓰세요"라고 말해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입니다. 세상은 서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곳입니다. 서로 내 것만 챙기고 남의 어려움을 외면한다면 막상 내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외면당할 것입니다. 노약자를 배려하듯, 워킹 부부의 어려움 또한 주변에서 이해하고 배려해 준다면 아이를 키우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저출산 문제 해결의 첫걸음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 말자 아빠가 되었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다섯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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