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이브스루 위험에서 아이를 지키다
흑석초교 학부모들, 맥도날드 입점 취소 이끌어
【베이비뉴스 김은실 기자】

정말 우연이었다. 지난해 5월 14일 학교에 한 맥도날드 관계자가 찾아와 전기와 가스 배관 문제를 논의하면서 일이 시작됐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 흑석초등학교 학부모들은 그제야 학교 앞에 맥도날드가 들어선다는 걸 알았다.
"충격이었어요. 교육기관이 아이들에게 안전한 먹을거리를 교육하면서 학교 코앞에 패스트푸드 매장을 들어서게 하다니……."
학교운영위원 김은경 씨는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 등 책임 있는 기관이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맥도날드가 공사 중인 지점은 학교 외벽과 바로 맞닿은 곳이었다. 교실과 맥도날드 사이 길은 2~3m에 불과했다. 운영위원회에 속한 학부모들은 당장 등기부 등본을 떼고 구청을 찾아가 공사 상황을 확인했다. 구청은 맥도날드 매장의 건축과 도로 사용 여부를 심의하는 중이었다.
이 과정에서 학부모들은 맥도날드가 드라이브스루 형태로 건축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아찔했다. 흑석초교는 학교 왼쪽으로는 모델하우스, 오른쪽으로는 주유소와 아파트 단지가 있다. 학교 주변 150m 이내에 차량이 드나드는 출입구만 5개다.
사고도 빈번했다. 운영위원회가 확인한, 차량 출입구에서 일어난 보행자와 자동차 충돌 사고만 해도 2건이었다. 학교 앞 도로는 왕복 6차선 도로로 교통량이 많은 데다 고가도로에서 내려오는 길목이라 자동차의 속도가 빠르다는 점도 걱정거리였다.
◇ 반대 운동에 발 벗고 나선 학부모들

운영위원들은 당장 행동에 나섰다. 먼저 피켓을 만들어 학교 앞길을 따라 붙였다. 녹색어머니회, 학부모회 등 학교 내에 있는 학부모 단체들에 소식을 알리고 의견과 뜻을 모았다.
그러고 나서 바로 시위를 시작했다. 피켓을 들고 구청과 맥도날드 본사 앞을 찾았다. 학급 단위로 학부모들이 조를 짜서 차례대로 자리를 지켰다. 당시 초등학교 6학년 자녀를 둔 학부모회 회장은 "우리 아이는 곧 졸업하지만 모범을 보이겠다"며 1번 타자로 나섰다.
하나로 뭉친 부모들은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서울시교육청, 국민신문고 등 다양한 창구를 활용해 흑석초등학교에서 벌어진 일을 알렸다. 해당 토지 소유주도 설득했고, 지역 주민들을 일일이 붙잡고 상황을 설명하며 서명을 받았다.
학부모들의 움직임에 지역 주민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처음에 피켓을 만들던 사람은 3명에 불과했으나, 해당 사안에 관해 구청장이 설명회를 열 때쯤에는 100여 명이 모였다. 드라이브스루에 서명으로 반대 의사를 표한 사람은 1300여 명에 달했다.
마침내 구청과 맥도날드도 반응했다. 구청장은 자신이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며 믿어달라고 부탁했고, 구 의원들은 시위하는 학부모들을 격려했다. 건축과 도로의 사용 허가 권한을 가진 구청장이 나서자 부모들은 힘이 났다.
꿈쩍하지 않을 것 같던 맥도날드는 "드라이브스루를 포기하지 않으면 시위를 계속하겠다"는 학부모들의 의사를 확인하자 대화에 나섰다. 그리고 7월 10일 마침내 맥도날드는 흑석초등학교 앞에 입점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 "부모가 단결해야 가능한 일"

"이게 정말 되는구나!"
맥도날드가 입점을 취소하자 학부모들도 놀랐다. 반대 운동을 펼치면서도 '이게 과연 가능할까?' 스스로 숱하게 물었더랬다. 법률 상담을 했던 변호사는 "포기하라"고까지 조언했다. 현행법상 드라이브스루가 어린이 교육기관 근처에 들어서는 걸 막을 도리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
학부모들은 법의 허점을 열정과 의지로 메웠다. 배우자가 "눈만 뜨면 학교에 간다"고 말할 정도로 바삐 움직였다. 2, 3일이 멀다 하고 모여 회의했고, 학교와 구청과 맥도날드를 방문했다. 학부모들이 한마음으로 뭉쳤기에 힘들어도 버틸 수 있었다.
"아이들 안전 문제인데 어느 부모가 반대하겠어요."
반대 운동을 이끌었던 김영화 운영위원장과 김은경 운영위원은 입을 모았다. 내 아이가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한다는 데 이견은 없었다는 것. 시위를 지켜보던 어르신들까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흑석초등학교 학부모들의 승리는 빛나지만 그 이면에는 결국 학부모가 나설 수밖에 없는 어두운 현실이 있다. 드라이브스루가 학교 앞에 들어올 때까지 법은 아무런 힘이 없었고, 관계기관은 관심이 없었다. 맥도날드 관계자가 배관 문제로 학교를 방문하지 않았다면 맥도날드 드라이브스루가 완성되기 직전까지 학부모들은 어떤 시설이 생기는지 몰랐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 등은) 안전을 말로만 말하지 말고 어린 자녀가 다니는 학교를 지킬 수 있는 더 확실한 법률과 규제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지자체는 서류로만 상황을 검토하고 허가할 것이 아니라 현장을 확인하고 공식 설문도 진행하는 등 실제적인 점검을 해야 한다."
김영화 운영위원장은 양천구 신월3동에서 또 다시 드라이브스루로 문제가 생겼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며 법을 조속히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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