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흙수저... 출산은 경제력 봐서..."
"나는 흙수저... 출산은 경제력 봐서..."
  • 김고은 기자
  • 승인 2015.12.24 1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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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들이 말하는 '저출산국가 대한민국'

【베이비뉴스 김고은 기자】


“두 명이요. 한 명은 엄마가 봐주고 한 명은 아빠가 봐주면 되잖아요.”


대한민국의 평범한 초등학생인 이아란(8) 양이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를 몇 명 낳고 싶느냐”는 질문에 천진하게 답했다. 아란 양의 언니인 이수아(10) 양은 “저는 생각이 달라요”라더니 “한 명이요. 힘들 것 같아서요”라고 말했다. 과연 두 자매가 더 커서 대학생이 되면 같은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게 될까?


청년층을 빗대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하는 ‘삼포세대’라고 일컫던 시절이 옛날이 됐다. 이제 저 세 가지도 모자라 취업, 주택, 인간관계, 희망, 건강까지 포기해야 한다는 그들은 ‘N포세대’로 불려진다. 이런 20대 청년들에게 ‘저출산국가 대한민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정말 포기하고 싶은 것일까, 누군가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것일까.


◇ “결혼과 출산? 먼 나라 이웃나라 얘기”

 

3포세대라는 말도 옛말이 됐다. 포기할 게 너무 많아 N포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베이비뉴스
3포세대라는 말도 옛말이 됐다. 포기할 게 너무 많아 N포세대라는 말까지 등장했다. ⓒ베이비뉴스


어릴 때 그녀의 장래희망은 25살에 엄마가 되는 것이었다. 아이를 서너 명 쯤 낳아 남편과 함께 즐겁고 평화로운 생활을 하고 싶었다. 아이는 어른이 됐다. ‘언제 결혼하고 싶으냐’고 물어보면 “일단 미래가 캄캄해서”라는 대답을 하게 됐다.


“막상 20대가 돼보니 육아는커녕 결혼이 엄청 먼 얘기 같아요. 언제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모르잖아요. 자유로움도 최대한 누리고 싶기도 하고, 진로가 정해지면 그 때 생각하게 될 것 같기도 해요. 정말 좋은 사람 만나면 자연스럽게 결혼하게 되겠죠. 괜찮은 사람 없으면 혼자 살아도 괜찮아요. 특별한 확신 없이 나이 차서 결혼을 서두를 것 같지는 않아요.”


당장 코앞에 닥친 기말고사에 한창인 대학생 정담은(22) 씨는 이렇게 말했다. 기말고사를 마치면 계절학기를 보내야 한다. 학업이 우선인 지금 진로도 결혼도 아직은 막연할 뿐이다.


진로 계획이 뚜렷한 휴학생 김성일(24) 씨에게도 결혼과 출산은 막연한 주제다. “결혼과 출산? 먼 나라 이웃 나라 얘기”라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수의학을 전공 중인 그의 꿈은 공중보건 수의사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최소 석사를 따야 해요. 공부하면서 결혼하면 지장이 크지 않을까요? 공부도 공부지만 수입이 없으니까요. 석사 따고 직장 잡고 돈 좀 모이면 35살 이후는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는 둘 정도 낳고 싶어요.”


◇ N포세대와 수저계급론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애 낳아서 잘 돼 봐야 대기업의 노예!’


‘걱정 없이 아이 낳는 건 배부른 금수저 만들의 특권!’


저출산과 관련한 온라인 이슈의 댓글창은 이러한 부정적 댓글이 주를 이루는 양상을 띤 지 오래다. 막대한 예산 규모의 저출산 대책을 거듭 번복하면서도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지 못하는 정부에 여론이 등을 돌리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 이번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 역시 실효성 논란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여론, 시민 사회 등을 통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어느새 ‘포기’의 아이콘이 된 대학생과 청년층은 올해 수저 계급론을 통해 또 한 번 정의되며 사회를 들썩거리게 했다. 흙수저, 동수저, 혹은 금수저로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분류하고 그 자녀의 등급까지 나누는 수저 계급론은 청년들에게 ‘아무리 노력해도 계급을 뛰어 넘을 수 없다’는 무기력감과 상실감을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실제는 어떨까. 우선 지난 10월 한 구직사이트가 실시한 조사에서 ‘나는 흙수저’라고 대답한 구직자는 10명 중 6명(59%) 꼴이었다. 이들 중 또 과반수(63.8%)는 ‘노력해도 계층이동이 어려울 것’이라는 자조적 답변을 내놨다.


이에 동의한다는 대학생 이지민(27) 씨는 “나와 또래의 친구들도 부모의 재산과 사회적 지위가 인생의 결정적인 부분을 좌지우지하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내 아이들 세대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결혼 후 경제력을 봐서 출산을 결정하고 싶다”는 의견을 보탰다.


하지만 이러한 온라인 내 여론의 분위기와 현실은 다르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대학생 이강욱(26) 씨는 “전공 특성 상 취업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긴 하지만 대학 동기들이 아닌 다른 친구들도 현실을 그렇게 부정적으로 비관하지는 않는다. 나 역시 본인 역할 만큼 하고 살며 무난하게 사는 것을 희망한다. 결혼은 괜찮은 사람만 있으면 형편껏 바로 하고 싶고, 출산도 가능하면 세 명은 하고 싶다”며 “결혼이나 출산을 포기한 적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은비(24) 씨는 "금수저든 흙수저든 수저마다 나름의 인생이 있는 건데 굳이 다른 사람의 환경과 비교하며 비관적으로 살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의견을 보탰다.


◇ 청년층 결혼·출산 불안감 해소를 위해 필요한 것은

20대 청년층의 결혼, 출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고용 문제뿐 아닌 주택, 여성, 산업, 교육을 아우르는 종합적 측면의 복지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20대 청년층의 결혼, 출산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고용 문제뿐 아닌 주택, 여성, 산업, 교육을 아우르는 종합적 측면의 복지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기태 기자 ⓒ베이비뉴스


대학·청년층이 결혼이나 출산에 막연한 불안함을 가지는 이유로는 근로와 주거 빈곤, 그로 인해 불거지는 학업 스트레스, 또 결혼·출산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 다양한 문제들을 꼽을 수 있다. 그 중 고용 불안정은 우선적으로 해결돼야 할 문제로 꼽힌다. 하지만 고용 문제뿐 아닌 주택, 여성, 산업, 교육을 아우르는 종합적 측면의 복지 해법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대학·청년층의 결혼 출산 기피와 관련한 해법을 찾는 자리였던 지난 2015년도 8차 인구포럼에서도 이와 관련한 토론이 오갔다. “청년층의 경제적 문제가 혼인율·출산율 급락의 주요 장애 요인”, “안정성과 현실적 소득 수준이 보장된 직업과 삶에 대한 종합적 지원이 필요” 등의 문제 제기와 “대학·청년층에게 가정의 가치에 대한 교육 진행이 필요”. “기업의 안정적인 출산 육아 휴직 운영 필요”, “고학력 여성 대상의 정책 필요”,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한 인구교육 필요” 등 주장이 펼쳐졌다.


이동학 다준다연구소장은 “‘20대 신혼부부 반값 월세 지원’이나 ‘20대 신혼부부 기본소득 지원’ 등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싶은데 못하는 20대를 지원해 빨리 결혼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핵심”이라며 “미팅, 육아 프로그램 등 미디어를 통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제고도 어느 정도 좋은 역할을 한다고 본다. 사회적 정서를 환기한 후 앞서 언급한 복지 지원을 해주면 좋은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 “결국 20대 대학·청년층의 결혼 출산 기피는 경제적 문제가 가장 크다. 중앙 정부가 가족·출산 친화적인 중소기업에 인센티브를 주고 기업은 여성의 일자리와 아빠의 육아 지원을 장기적으로 보장해주는 순환적 구조가 나와야 한다. 여기에 지자체까지 출산이나 육아 비용을 확대 지원해준다면 20대 대학·청년층이 결혼, 출산에 대한 막연한 공포를 덜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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