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피해자 분노 부른 5년만의 사과
"가습기살균제 1·2등급 피해자 보상"…피해자모임은 영국 본사 이사 고발
【베이비뉴스 김은실 기자】

가습기살균제 최대 가해 업체로 지목된 옥시레킷벤키저가 2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과문을 발표하고 피해자 보상을 약속했다. 가습기살균제가 폐를 손상한다는 사실을 정부가 밝힌 지 5년 만이다.
아타 울라시드 사프달 옥시레킷벤키저 한국 대표이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습기살균제로 인해 폐 손상 피해를 입으신 모든 피해자 분들과 그 가족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가슴 깊이 사과드린다. 자사 제품이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관련된 점, 신속히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한다”며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고 모든 분이 믿음과 신뢰를 다시 얻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옥시레킷벤키저는 피해자 보상을 위해 전문가 패널을 7월까지 구성하고 1·2등급 판정을 받은 피해자 중 옥시레킷벤키저를 사용한 분들 대상으로 보상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13년에 내놓은 기금 50억 원과 지난달 22일 발표한 사과문에서 약속한 기금 50억 원은 3·4등급 피해자들을 위해 사용할 예정이다.
정부는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서 피해자 조사를 진행했다. 현재 1·2차 피해자에 관한 판정 결과가 나왔고, 3차 피해자 조사는 판정이 진행 중이다. 1·2차 피해자로 접수한 사람은 530명이며, 이 중 사망자는 143명이다. 사망자 143명 중 103명이 옥시레킷벤키저의 제품을 사용했다.

기자들과 피해자들은 사과와 대책이 옥시레킷벤키저 영국 본사 차원에서 나온 것인지 거듭 확인했다. 영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생활용품 회사인 레킷벤키저는 2001년 옥시를 인수하면서 옥시레킷벤키저라는 회사명으로 제품을 판매해왔다. 영국 본사는 가습기살균제 판매는 옥시를 인수하기 전에 있었던 일로, 자신들은 위해성을 알지 못했다는 주장을 반복해왔다.
옥시레킷벤키저는 2일 발표한 사과문과 피해자 대책이 영국 본사 차원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프달 대표는 “저는 옥시RB코리아를 대표하고 있지만 영국 본사도 대표한다. 제가 진심 어린 사과를 했을 때는 한국법인과 영국 본사 모두를 대표한다고 보면 된다. 영국 본사 최고경영자(CEO)도 미안하다면서 자신을 대신해 사과해달라고 요청했고, 오늘 발표하는 모든 방안을 시행하기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영국 본사의 지원이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옥시레킷벤키저는 사과와 대책 발표가 5년이나 늦어진 점에 관해서는 “충분하고 완전한 보상안을 마련하느라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상 계획에 대해서는 7월에 패널이 구성되면 피해자들과 긴밀히 협의해 정하겠다고만 답했다.
반면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의혹은 사실상 부인했다. 제품의 위해성을 알았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제품이 15년간이나 판매됐다. 독성을 알았는지는 검찰이 조사하는 것이다. 저희도 조사 결과를 알고 싶다”고 답했다.
사건을 은폐·축소했느냐는 질문에도 “옥시레킷벤키저는 어떤 잘못된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 검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한편, 내부적으로도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를 진행 중이다. 만일 잘못된 행위가 확인되면 즉각적이고 신속하게 시정하겠다”고 말했다.


◇ 피해자모임, 사과 거부, 영국 본사 이사 8명 추가 고발
옥시의 뒤늦은 사과는 피해자와 가족들의 분노를 풀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자회견장을 찾은 피해자 중 서너 명은 사프달 대표에게 다가가 “아이가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왜 이제 왔느냐”며 따졌다. 이들의 항의로 기자회견은 20여 분가량 중지됐고, 이때 피해자들의 질문과 요구를 통역이 직접 대표에게 전달해 대화하기도 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이하 피해자모임)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옥시레킷벤키저의 기자회견 한 시간여 뒤에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파렴치한 살인기업 옥시의 사과는 받지 않는다”고 발표했다.
피해자모임은 옥시레킷벤키저가 28일과 29일 두 차례에 걸쳐 옥시레킷벤키저의 사과문 발표 기자회견에 와달라고 요청했지만 거부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옥시레킷벤키저의 불매 운동이 전개되고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과는 받지 않는다”는 주장을 다시 정리해 발표했다.

피해자모임은 이날 옥시레킷벤키저의 영국 본사 이사회 8명 전원을 살인죄, 살인교사죄, 증거은닉죄로 검찰에 고발했다. 올해 2월 한국 옥시레킷벤키저의 전현직 임원 29명을 고발한 데 이어 고발 대상을 영국 본사로 확장한 것이다.
피해자모임은 이후에도 옥시레킷벤키저에서 2001년부터 재직한 전직 이사들의 명단도 파악해 추가로 고발하고 영국 현지에서도 검찰에 고발할 계획이다.
집단민사소송도 앞당겼다. 피해자모임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환경보건위원회와 함께 진행하는 집단민사소송을 당초 예정일이었던 30일보다 앞당겨 16일에 접수하기로 했다. 2일 현재까지 소송에 참여하는 피해자의 숫자는 121명이다.
피해자모임은 마지막으로 옥시레킷벤키저 불매 운동이 더 퍼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특히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같이 가습기살균제 PB 제품을 만들어 검찰의 수사를 받는 대형마트가 옥시레킷벤키저 제품이 포함된 판촉 행사를 벌이는 것을 두고 “이들의 옥시 제품 판촉행사는 살인 공범들 간의 감싸기, 덮어주기”라고 주장하며 "옥시 제품이 포함된 판촉 행사를 하는 대형마트에서도 물품을 사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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