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윤지아 기자】
[1화] "바쁘게 달려온 5년,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2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들의 요구에 귀기울여주세요"
쉴 새 없이 울리는 전화, 피해자들의 문의, 시민단체와의 일정, 운영진 회의 등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한 사람. 세간의 이슈, 가습기살균제의 피해자들을 대변하는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의 강찬호 대표다. 술 한 잔에 이야기 나누기를 좋아하던 평범한 한 가정의 아빠는 피해자들의 리더가 됐다. 어쩌다 이 자리에까지 서게 됐을까.
2011년 8월 31일. 원인 미상 폐질환으로 사망자가 속출하던 그 시점. 정부는 원인미상 폐질환의 원인을 ‘가습기살균제’로 집어냈다. 정부, 그리고 기업과의 외로운 싸움은 그때부터였다. 자그마치 5년의 시간이 흘렀다. 불치병에 걸린 줄로만 알았던 딸이 아픈 이유를 알게 됐지만 강 대표는 어떠한 해결도 보상도 받지 못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부모가 돼 있었다.
다른 피해자들과 힘을 모아 달려 온 지도 5년이 흘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도마 위에 올리고, 본격적인 검찰 수사에 이르게 하기까지 강 대표는 앞만 보고 달려왔다.
더욱이 20대 국회가 개원해 사태가 급물살을 타면서 사태 해결에 주력하고 있는 강 대표. 최근 들어 국회에 드나드는 일이 잦아졌다. 청문회와 특별법 제정을 위해 요구안 전달은 물론, 토론회 참석, 전문가들에게 조언까지 챙기기 위함이다.
지난 16일 가피모의 입장과 요구안은 국회의장에게까지 전달됐다. 국회의장이 전한 기대 이상의 긍정적인 멘트로 다시 기운을 얻은 그날 오후, 강 대표를 국회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그에게 지난 5년은 어떤 시간들이었을까.
- 어느 때보다 바빴다. 20대 국회 개원 때만 해도 눈 코 뜰 새 없었다. 보통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나.
기자회견 등 공식 일정이 생기면 그쪽을 우선시 챙긴다. 최근에는 서울시에서 가습기살균제 피해 상담실로 사용할 사무실을 마련해줘서 시간이 될 때면 피해자 상담을 하려고 하고 있다. 그 밖에도 계속 일정이 생긴다. 토론회 일정, 가습기살균제 피해 사태를 해결하려는 국회 쪽 움직임도 챙기고 운영진과의 회의 등 바로바로 생기는 일정들이 많다.
검찰 수사가 한창 진행될 때는 언론의 열기도 뜨거워 연예인도 아닌데 연예인 스케줄을 체감했다. 적어도 4, 5월 두 달은 그렇게 지났다. 일정이 너무 바쁘게 돌아가면 일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시간도 없고, 사람들의 조언에도 귀에 기울일 수 없다.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할 필요가 있는 문제인 만큼 조언을 듣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시간과 자원은 한정이 있지 않은가. 일이 끊임없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 5년간 가피모를 지켜왔다. 외롭던 싸움의 길을 베이비뉴스 독자들은 다 지켜봐왔다.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가습기살균제 사태가 국민들의 큰 관심을 받은 데 반해, 여전히 정부는 외면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 사건은 처음 원인이 밝혀지면서부터 일개 ‘교통사고’로 치부돼버린 사건이다. 정부는 구입한 제품에 하자가 있어 발생한 사건으로 ‘제조물책임법’만 적용해 해결하려 했다. 피해자들이 직접 ‘민사소송’을 해 가해 기업과 싸워나가야 한다고 제시했던 것도 정부다.
정부는 당연히 무고한 시민의 삶과 존엄한 인권이 짓밟힌 사건에 대해 책임질 국가의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외면했다. 국가가 국민들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고, 그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힘들어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줘야 했는데도 말이다.
여전히 정부는 피해자들의 요구를 들으려는 느낌이 없다. 마치 민간의 교통사고를 먼저 나서서 처리해주는 것 같은 생색내기식 지원만 진행되고 있을 뿐이다. 피해자들에 공감하면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으면,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로만 나누는 대상적 문제로 가버린다. 피해자에게 무언가의 보상만 해주면 된다는 대상적 문제로 흘러가선 안 된다.
- 정부의 역학조사를 통해 가습기살균제 정체가 밝혀진 게 2011년 8월 31일이다. 피해자들은 정부의 발 빠른 대처를 기대했던 것 같은데.
2011년 8월 말일. 원인 미상 폐질환의 원인으로 가습기살균제가 지목되면서 9월에 바로 피해자들이 모였다. 대부분 어린아이들이 사망한 유족들이었다.
나 역시 아이가 아픈 상황을 겪으면서 참석한 부모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환경부는 “개별사안으로 인해 법을 만들면, 법을 남용하는 것”이란 핑계로 피해구제 근거가 없다는 설명을 늘어놨다. 옹색한 변명이었다. 국회 차원에서 결의안을 통해 피해구제에 적극 나서라고 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국회의 압박에 피해구제 근거를 만든 환경부는 환경보건법에 시행령 한 줄을 추가시켰다. 19대 국회 야당의원들이 발의했던 가습기살균제 특별법이 시행령 한 줄과 맞바꿔진 것이었다.
그렇게 사건이 1~2년의 시간이 흘렀다. 당시 1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정부의 접근 방식이 기가 막혔다. 결의안이 폐기되고 의료비 근거조항이 만들어지면서, 피해자를 4단계로 나눈 것이다. 4단계 중에서도 1, 2단계 피해자들에게만 의료비와 장례비를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처사에 황당했다. 하지만 가피모 측에서는 당장 지원이 시급한 피해자들이 있었기 때문에 조건부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가습기살균제 구입증명이 어렵더라도, 구입한 소비자 모두를 피해자로 인정해주고 건강모니터링을 진행했어야 했다. 피해가 경미해 굳이 피해구제가 어렵더라도, 사과문이라도 받았어야 맞다.
하지만 환경부가 정부의 책임이 없다고 선을 긋고, 기업과 피해자들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단정 지으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 딸 나래 이야기도 듣고 싶다. 나래 역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다. ‘세퓨’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래는 다행히도 목숨을 건졌지만, 어떤 상태인가.
폐에 번지는 염증의 확산을 막았지만, 정상적인 폐로 돌아가진 못했다. 당시 자꾸 기침하는 아이를 감기라고 판단해 가습기를 더 틀어줬다. 감기약도 처방받아 먹였다. 약물과 화학물질에 이중노출이 됐던 셈이다.
2011년 6월 15일. 나래가 입원하던 날이다. 보통 폐 질환에 대해 부모들이 전조증상을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치면 호흡곤란을 일으켜 사망에 이르고 만다. 다행스럽게도 나래의 엄마는 간호사다. 아내는 아이의 호흡이 가빠졌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바로 병원으로 갔고, 서울대병원에서 기겁을 했다. 원인도 모르고, 10명 중 4명은 사망했고 치료법도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었다. 그렇게 나래는 ‘원인미상 간질성 폐질환’이란 불치병 환자가 됐다.
나래는 폐의 염증을 멈추는 치료를 진행했다. 다행히 치료에 성공해 염증 진행이 멈췄다. 하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는 것은 부모로서 힘든 일이었다. 딸은 항암치료를 비롯해 생소한 온갖 치료를 견뎌냈다. 부작용이 있는 스테로이드 치료도 감안하고 진행했다. 아이가 불치병이라고 하니까 한약방까지 찾아다닐 정도로 안 해본 치료가 없다.
7월 중순 경 퇴원을 한 나래가 통원치료를 하고 있던 그 시기. 원인미상 간질성 폐질환의 원인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 나래는 지난해 9살 나이로 영국 항의방문에 함께했었다. 나래는 그 방문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지난해 5월 18일 약 나흘간의 영국 항의방문에 나래를 데려갔다. 영국 일정이 오전 6시에 일어나서 라면 먹고 하루를 시작해, 오후 9~10시에 끝나는 일정으로 강행군이었다. 어른들도 지치는 힘든 일정에서 나래는 단 한 번도 투정을 부리지 않았다.
나래는 9살 아이답게 영국으로 출국할 당시만 해도 굉장히 신나했다. 귀국할 때는 기내식도 못 먹고 잠이 들 정도로 녹초가 됐지만 말이다. 영국 일정을 소화하며 나름대로 긴장을 했던 것 같다.
지금 돌이켜보면 아무리 훌륭한 기획이었더라도 아이의 삶을 생각지 않고 영국까지 데려간 것은 ‘너무 이기적이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투정 없이 견뎌준 데는 나래 역시 본인 문제에 대한 부당함을 알고, 엄마아빠가 그에 대해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때의 일이 미안해 나래에게 “이 문제가 해결되면 아빠가 영국, 프랑스 다 여행시켜줄게”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얼른 그날이 와야 할 텐데 말이다.
- 뉴스에 나오는 아빠 모습을 보고 나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뉴스나 신문을 다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 10살인 아이는 만화책 보는 데 더 바쁘다. 아빠가 묻는 말에도 새침하게 대할 때가 많은 소녀다. 하지만 아빠의 활동에 대해 응원해주는 면은 없지 않아 있다.
- 가피모는 5년간 피해자들이 신고를 할 수 있도록 돕고, 전 국민이 사태를 알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쉽지 않은 활동들이었다.
환경부는 그동안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교통사고 취급하며 사건을 해결하려 해왔다. 하지만 이 사태는 인권의 관점에서 다시 사건을 풀어볼 필요가 있다. 2011년 정부의 역학조사 발표 이후, 정부는 피해자들에게 김앤장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이나 기업과 피해자와의 합의를 종용했다. 그리고 피해자들을 4단계로 나눴다.
5년이 흐르는 동안 언론에서도 이 사태에 대해 무관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임산부 죽음에 대해서만 조명될 뿐, 영유아피해자에 대한 조명은 어두웠다. 검찰 수사가 일찍 이뤄졌다면 이슈화도 빨랐겠지만, 심지어 MB정부 때 이 사태는 방치라고 느낄 정도로 사태 해결은 더디기만 했다.
지난 4월 검찰의 본격적 수사가 시작되고 가해 기업의 잇따른 사과와 옥시 관계자들이 구속되면서 ‘어쩌면 사건이 금방 해결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긴 싸움이 될 거라는 걸 분명 알면서도 했던 기대였다. 하지만 반쪽짜리 수사는 이번 달 말 마무리가 된다는 말이 나온다.
옥시는 1, 2단계 피해자 보상만을 말하고, 정부 역시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생색내기식 지원 대책만 내놓을 뿐이다. 5년이 흘러도 달라진 점은 없다. 이슈화됐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점을 느끼지 못하겠다. 때문에 이 사건을 바라보는 태도와 인식을 전환해 다시 이야기했으면 한다.
- 대표님이 말하는 ‘태도와 인식을 전환’은 어떤 것을 말하는 건지.
이 사태는 개인적으로 ‘국가적 재난, 참사’로 규정한다. 앞으로 피해자가 얼마나 더 나올지는 모르지만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제품이 만들어졌고, 모든 사람들이 구입할 수 있었다. 화학물질이라는 침묵의 살인자가 무고한 시민을 죽고 다치게 했던 테러다. 결과적으로도 명백히 드러났지 않은가. 인재에 의한 국가적 재난으로 규정하는 것이 맞다.
‘태도와 인식의 전환’은 재난 때문에 짓밟힌 피해자의 인권 피해문제가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5년 동안 피해자 인권문제는 방치돼 있었다. 원인이 밝혀져 있는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와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한 대응을 교통사고 처리하듯, 피해자와 가해자를 나눠 합의를 보게 하는 방식으로 이끌어왔다. 이는 매우 심각한 근본적 문제다.
‘화학물질이 사람을 죽였다’는 문제를 떠나서 국가가 인증해 판매됐던 화학물질로 인해 사람의 목숨과 안전이 위협받았고, 그 결과로 참사와 재난을 겪었다는 것이 팩트다. 인권이 최우선의 문제였다. 지금까지는 전혀 집중되지 못했던 사안이다. 때문에 사태를 처음으로 되돌려서라도 해결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 가습기살균제 사태 문제해결을 위해 인권으로 시선을 돌린 이유가 있을까.
누구나, 모든 국민이 이 사건의 희생자가 될 수 있었다. 희생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 소비자의 시선, 정부의 시선들이 ‘보호받아야 할 인권을 놓치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에 대한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1, 2단계 판정을 받지 않은 피해자들은 심각하게 아픈 곳이 없으니 피해자가 아니게 되고 그것은 피해자들을 두 번 다치게 하는 것이다.
- 평범한 시민에서 피해자들의 대표로 나서 활동을 이어 나간 지 5년이다. 사태에 대한 시선 전환을 외치는 것도 외로운 시간이었을 텐데, 5년간 가피모를 이끌어갈 수 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우리 아이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너무나 소중한 내 아이가 이런 일을 겪을지 몰랐고, 아이에게 이런 상황을 겪게 한 게 굉장히 미안했다. 아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내 가족과 아이의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활동하는 건 맞지만, 너무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처럼 과장 되게 포장되고 싶지 않다.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아이에게 사태를 설명하고, 아빠로서의 나름대로 변명을 하기 위해 활동을 하는 것이다.
아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을 바라보면 갑갑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갈수록 힘들고 끔찍해지고 있는 면이 보이기도 한다.
아이는 어린 나이에 엄청난 일들을 겪었다. 가피모 활동을 하면서 현장에서 나래와 같은 아이들도 많이 마주했다. 그들과 함께 일행이 되면서, 이제는 아이들을 위한 좋은 사회 만드는 일을 못 본 척할 수 없는 입장이 됐다.
5년이 지났는데도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는 것은, 아이의 문제가 결국은 사회의 문제로 결부된다는 사실을 몸소 느꼈기 때문이다. 이만큼이 다 내 책임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아이에게 변명할 수 있는 정도의 활동은 해야겠다’는 게 근본적인 힘이다.
비록 집에서 아이를 조금 못 돌보고, 아내에게 돈을 많이 못 갖다 주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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