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연예인의 인권, 어디서 보호받나요?
학습권, 건강권, 수면권 침해받는 아동연예인 "연령대별로 세분화해 아동 보호법 만들어야"
【베이비뉴스 이유주 기자】
현재 연예계에는 김환희, 박민하, 걸그룹 프리티 등 수많은 아동들이 무대, 브라운관, 스크린을 넘나들며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과거 아동연예인은 성인 주인공의 어린 시절, 가족 드라마의 주변인 등 주로 감초 역할에만 머물렀고, 성인예능인이 장악하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기 힘든 존재였다. 하지만 이제 이들은 성인배우 못지않은 심도 있는 연기력, 예쁜 외모, 가창력, 재치 있는 입담으로 무장해 성인연예인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한다. 그렇다면 아동연예인이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나는 요즘, 이들에게 뒤따르는 고통은 없을까. TV 속 화려함의 이면,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아동연예인의 실태를 두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기사 싣는 순서>
① 아동연예인의 인권, 어디서 보호받나요?
② 엄마의 욕심에 상품이 된 아동연예인
재기 발랄한 매력으로 전 연령대의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는 아동연예인 A 양은 요즘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A 양의 최근 일주일 간의 스케줄을 살펴보면 숨 고를 여유도 부족해 보인다.
A 양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학교를 파한 뒤 매일 어린이 생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추가로 월요일, 화요일에는 광고 오디오 녹음을, 수요일에는 B기업 소식을 전하는 동영상 콘텐츠 촬영과 종합편성 J사 교양프로그램 녹화를 소화했다. 금요일에는 화장품, 토요일에는 음료 광고 촬영을, 일요일에는 지상파 S사의 예능프로그램 녹화까지 마쳤다.
한 방송 관계자에 따르면 광고 촬영 시간은 통상 8시간, 예능 등의 방송 녹화 시간은 짧게는 4~5시간, 길게는 10시간이다. 생방송은 1시간만 진행하더라도 방송 시작 2시간 30분 전부터 대기하고 리허설을 마쳐야 해서 보통 3~4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A 양은 생방송과 광고촬영 및 프로그램 녹화 등이 겹치는 수요일, 금요일에는 성인 근로자의 법정 근로시간인 8시간 보다 많은 근로를 한 셈이다. 게다가 주 5일 근무는 고사하고 주말까지 근무해 단 하루도 온전한 휴식을 취하지 못 했다.
황효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이 사례에 대해 "아동의 건강권, 인권을 침해하고 법을 위반하는 문제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아동연예인 증가…문제는?
아동연예인이 종횡무진 활약하는 모습이 다양한 매체를 통해 비치면서 아동연예인의 활동 영역이나 수요는 물론 수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최근에는 어린이 스타 등용문인 오디션 프로그램 '위키드'까지 등장하면서 아동연예인의 지평이 보다 넓어졌다. 문화평론가들은 "아동연예인의 전성시대"라고 말할 정도.
하지만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지난 3, 4차 심의에서 연예인으로 고용되는 아동의 수가 점점 증가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한 바 있다. TV 속 화려함의 이면에는 아동연예인의 신체적·정신적 건강, 수면권, 휴식권, 학습권 등 보호받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기 때문.
196개국이 비준한 국제법 '유엔아동권리협약' 31, 32조에 따르면 아동은 충분히 휴식하고 놀 권리가 있다. 또 경제적 착취와 신체적·정신적 발전에 유해한 노동의 수행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하지만 아역으로 데뷔해 성인 연기자가 된 장근석이 지난 2011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대한민국에서 아역 배우를 한다는 건 외국과 달리 힘든 일이다. 밤샘 촬영에 결석도 밥 먹 듯한다"고 언급한 바 있듯이 국내 아동연예인의 실정은 그리 녹록치 않다.
실제로 2010년 한국청소년연구원이 발표한 '청소년 연예인 성보호·근로권·학습권 실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아동연예인 39명 중 25명(35.9%)이 하루 7시간 이상, 4명(10.3%)이 주당 40시간 이상의 근로를 했고 16명(41%)이 야간근무 및 휴일근로를 경험했다.
아울러 학교에 재학중인 아동연예인 82명 중 43명(47.6%)이 1학기 일주일에 반나절 이상 수업에 빠진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고, 26명(34.1%)이 숙제할 시간이 거의 없고, 16명(19.5%)은 공부시간 자체가 없다고 응답했다.
바쁜 촬영 일정으로 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아동연예인도 있다. 아역배우 C 양은 지난해 "출석만 하고 오는 생활이 반복돼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없었다"며 "나중에 검정고시를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적지 않은 아동연예인이 장시간의 근로, 야간·휴일 근로 등으로 해당 시기에 필요한 휴식은 물론 학업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김기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동연예인 혹은 지망생의 잦은 결석은 학업성적을 저하시키는 것은 물론, 사회생활에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을 습득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등 사회화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인지발달과 인격형성이 가속화되는 시기에 연예활동과 학교생활의 조화부재로 인격형성의 장애, 비행, 정신적 질환이 발생하는 부정적 결과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아동연예인 보호법, 유명무실
문화체육관광부는 그간 문제시 돼 온 관행을 인식하고, 아동연예인의 인권 보호를 위해 지난 2014년 7월부터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15세 미만 아동연예인의 연예 활동을 주당 35시간 미만으로 제한하고 본인 혹은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 사이에 연예 활동을 금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신체적·정신적 건강, 학습권, 인격권, 수면권, 휴식권, 자유선택권 등 기본적 인권을 보장하는 조치를 계약에 포함하도록 했다.
하지만 법이 시행된 지 2년이 지난 지금, 이 법은 사실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역배우 D 양의 엄마 이은서(가명) 씨는 "촬영장 분위기를 보면 법대로 하기 쉽지가 않을 것"이라며 "엄마들이 을의 입장이기 때문에 제작사에게 법을 안 지킨다고 따지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한 방송 PD는 "이러한 규제가 있었는지 전혀 몰랐다. 알고 있는 현장 스태프는 절반이 안될 것"이라며 "안다고 해도 현장에 적용하기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드라마 촬영은 밤낮이 없이 며칠씩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법 조항을 그대로 따르다가는 방영 일정을 못 맞출 수도 있다는 것. 특히 아역이 주를 이루는 드라마 초반의 제작기간이 길어지면 제작비가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요계도 마찬가지. 음악 프로그램 한 번 출연에 10시간이 소요되는데 청소년 아이돌 그룹은 일주일에 공중파방송 3곳의 음악방송만 소화해도 주당 정해진 근무시간이 채워지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뮤직비디오 및 광고 촬영, 예능 프로그램 출연, 인터뷰 등 이외의 수익 활동에 제동이 걸린다.
제작 관계자들은 이러한 상황에 법 조항을 지킬 수 없기도 하고 무엇보다 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에 굳이 힘들게 지킬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처벌과 관련된 조항은 없다. 문체부는 해당 업체가 이 조항을 따르지 않을 경우 시정권고나 시정명령만 내릴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시정명령, 권고가 내려진 경우도 전무하다.
문체부 관계자는 "이 법은 단속을 위한 것보다 예방적 차원에서 만든 것"이라며 "기획사 등에 협조 요청은 한 적이 있는데 행정적 처리는 한 번도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 "아동연예인 노동 환경 보장 이뤄져야"
우리나라와 달리 할리우드가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는 아동연예인을 보호하는 법체계가 촘촘하다. 6개월 미만 영아의 경우 최대 촬영시간은 20분이고 2시간 이상 촬영 현장에 있으면 안 된다. 또 30초 이상 조명에 노출될 수 없다.
2살 미만 영아의 최대 촬영시간은 2시간, 6살 미만은 3시간, 9살 미만은 6시간, 16살 미만은 7시간으로 연령별 촬영시간이 엄격히 정해져 있다. 아울러 촬영현장에 아동 1명당 교사자격증이 있는 스튜디오 티처(Studio Teacher)를 둬 아동이 촬영장에서도 학습할 수 있는 학습권을 보장하고 있다.
영국도 근로기준법에 따라 아동이 하루 4시간 이상 노동할 수 없도록 하고, 제작사들은 이를 엄격히 지키고 있다. 실제로 영화 '해리포터' 주연들도 예외 없이 하루 근무가 4시간으로 제한돼 영화 전체 촬영 기간이 길 수밖에 없었다.

전문가들은 해외 사례처럼 아동연예인의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정비하고, 제작사 관계자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남기연 단국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아동연예인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미성숙한 상태인 만큼 성인과는 다른 각별한 보호가 필요하다"며 "현행 규정처럼 만 15세를 기준으로 획일적으로 정할 것이 아니라, 영·유아부터 미취학 아동 그리고 취학 청소년까지 연령대를 세분화해 보호 기준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최명희 신구대 아동보육전공 교수는 "특히 현장에 심리치료사가 상주해 아이 감정을 돌봐주는 등 영유아의 정신적 건강을 지켜주는 법도 따로 마련해야 할 것"이라며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도 아동의 권리를 존중해야 하는 필요성을 인식하고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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