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권위적인 아빠라고 느끼는 순간
스스로 권위적인 아빠라고 느끼는 순간
  • 칼럼니스트 권성욱
  • 승인 2017.08.28 13: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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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돼!"라고 말할 때 아이의 기분을 살펴야

[연재] 일 가정 양립을 꿈꾸는 워킹대디의 육아칼럼

 

저는 평소 아이를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아이의 감정을 살피면서 자율성을 존중해야 한다고 자주 말합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권위적인 아빠의 모습이 나올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엊그제 오랜만에 나은공주와 함께 워터파크에 갔습니다. 아이는 어지간히 재미있었는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신나게 놀았습니다. 특히 재미있어 한 것은 파도타기와  슬라이더.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라는 표현이 바로 이럴 때 아이의 표정이 아닐까 싶더군요. 하지만 밤늦게까지 있을 수 없어 아이에게 “우리 마지막으로 파도타기 두 번 하고 슬라이더 한 번만 더 타고 가자"라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서운한 표정을 짓더니 “아빠, 3번 더 타면 안 될까?”라고 하더군요. “안 돼. 오늘 많이 놀았잖아. 그만 집에 가야지. 이제 딱 두 번이야”라고 대꾸하니 아이는 시무룩하게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원래 떼쓰는 법이 없는 아이다보니 포기도 빠릅니다.

 

“엄마, 아빠랑 워터파크에 놀려왔어요.” 아이에게는 신나는 하루였고 아빠에게는 뭔가를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권성욱
“엄마, 아빠랑 워터파크에 놀려왔어요.” 아이에게는 신나는 하루였고 아빠에게는 뭔가를 깨달은 하루였습니다. ⓒ권성욱


파도타기가 끝나고 엄마랑 둘이서 마지막으로 슬라이드를 타러 갔습니다. 나은공주는 엄마의 눈치를 보면서 “슬라이더 더 타고 싶어”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모처럼 온 데다 아이의 행복감을 깨지 않으려고 슬라이더를 몇 번 더 태워줬다는군요. 역시 엄마가 아빠보다 공감 능력이 뛰어난가 봅니다. 그런데 아이는 좋아하면서도 엄마에게 “아빠가 알면 혼나지 않을까?”라며 걱정을 했다는군요.
 

어쩌면 일곱 살 아이의 대수롭지 않은 말로 넘길 수도 있는 일이겠지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저 “애들이 원래 그렇지”, “부모가 자식에게 그런 말도 못해?”라고 넘길 일이라고 생각되지는 않았습니다. 언젠가 빵집에 갔을 때 캐릭터 빵을 사려고 하기에 “너는 그 빵 잘 안 먹잖아. 먹지도 않으면서 사는 것은 낭비야. 사지 마!”라고 따끔하게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이번에는 엄마랑 같이 빵집을 가면서 “그때 아빠가 사지 말라는 빵 꼭 살 거야”라고 했다는군요. 그 말을 듣고 한편으로 서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그동안 아이에게 절제를 가르친다고 했던 것이 사실은 억압과 통제로 이어졌던 것은 아닌가 싶더군요. 아이의 기분은 생각하지 않고 명령조로 “이건 안 돼, 저것도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라고 해 왔던 것은 아닌지.

 
흔히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안 돼!”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원칙적으로 본다면 분명 맞는 말입니다. 더욱이 요즘처럼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대부분의 가정에서 아이가 한둘이라 ‘소황제’, ‘소공주’가 되기 쉽다는 점에서 아이의 요구를 뭐든 다 들어주기보다는 절제하는 능력을 가르치는 것은 인성 교육의 첫걸음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으로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안 돼!”라는 말을 언제 어떤 시점에서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 “안 돼”라고 말하는 것도 적절한 타이밍이 있으며 아이에게 전달하는 방법 또한 중요하다는 사실. 그저 덮어놓고 “안 되니까 안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아이의 자율성을 억압할뿐더러 오히려 반항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절제와 억압은 엄연히 다르지만 사실은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은 없죠.


세상의 부모님들은 누구나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하여 고민하고 노력하죠. 하지만 현실의 육아란 시중의 육아서와는 엄연히 다르며 4지 선다형처럼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아이와 조금 놀아준다고, 아이 곁에 오래 있다고 해서 아이와의 간격이 자연스레 좁혀지는 것도 아닙니다. 아이와의 간격을 좁히는 것은 내가 아이를 어떻게 대하는가에 달려 있죠. 아이들의 기질은 천차만별이고 색깔이 제각각입니다. 육아 방법 또한 그런 아이의 색깔에 맞추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아이를 똑같이 보면서 그저 ‘미숙한 존재이니까 어른이 가르쳐서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만 급급한 것은 아닐까요.


때로는 아이에게 “안 돼”라고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명령하는 것보다는 아이의 섬세한 감정을 살피고 “너 잘 되라고 한 말”이 도리어 상처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부모와 아이 또한 엄연한 인간관계이니까요. 때로는 적당히 눈을 감아주는 아량도 필요합니다.


그동안 제가 했던 “안 돼”를 돌아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 아이에게 상처를 주었던 기억들이 새삼스레 떠오릅니다. 원래 그런 의미는 아니었는데,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도 있었는데, 라고 반성하게 됩니다.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으로 실천하기는 쉽지 않네요. 저 역시 권위적인 분위기에서 자라왔기에 무의식중에 몸에 배어 있나 봅니다. 아이를 변화시키는 것보다도 나 자신이 변화하는 것이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칼럼니스트 권성욱은 울산 토박이이면서 공무원으로 13년째 근무 중이다. 36살 늦깎이 총각이 결혼하자마자 아빠가 됐고 집사람의 육아 휴직이 끝나자 과감하게 직장에 육아 휴직계를 던져 시한부 주부 아빠로서 정신없는 일 년을 보냈다. 현재 맞벌이 집사람과 함께 가사, 육아를 분담하며 고집 센 여섯 살 딸아이의 수발들기를 즐기고 있다. 인생에서 화목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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