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이중삼 기자】
“오늘은 아이와 어디서 놀지?”, “뭐 하고 놀지?” 등과 같은 고민은 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것이다. 지난해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놀이를 방해하는 요인으로 ‘양질의 안전한 놀이공간의 부족’을 꼽은 부모가 50.1%로 가장 많았다. 아이들이 행복하게 뛰놀 수 있는 놀이공간을 더 많이 확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세이브더칠드런·정치하는엄마들은 공동으로 22일 오후 2시 경의선 책거리 공간산책 2층 다목적실에서 ‘저출산 시대 놀이로 행복한 아이를 만나고 싶다’라는 주제로 ‘놀 궁리 집담회’를 열었다. 놀이로 행복한 아이를 키우고 싶은 30여 명의 부모들이 모였다. 1부 순서에서는 발제자들이 놀 권리에 대한 각각의 주제를 발표했고, 2부 순서에서는 부모들의 의견 제시와 그룹토의가 진행됐다.
◇ 우리 아이, 놀 시간이 있나요?
이날 첫 번째 발제자로 나온 최현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 연구원은 ‘우리 아이들, 놀 시간이 있나요’라는 주제를 발표하면서 먼저 참석자들에게 “우리나라 아이들의 놀이시간이 어떻게 되는지 아시는 분 있으신가요”라는 질문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최현주 연구원은 “우리나라 아동은 학교(유치원·어린이집)-(문화센터·학원) 등의 기관 위주로 생활을 하고 그 기관은 대부분 인지발달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있다”면서 “먹고, 자고, 잠시 멍도 때렸다 신나게 뛰어놀기도 하는 모습보다는 책걸상에 앉아 책을 보고, 무엇인가를 쓰고 외국어를 쫑알쫑알 거리는 아동의 모습이 더 익숙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통계청이 5년마다 조사하고 있는 생활시간 조사의 가장 최신판인 2014년 결과 자료를 보면 초등학생은 평일 총 학습시간(학교, 학원수강·방송·인터넷 수강·독학·기타 학교 활동 외 학습 등)이 6시간 49분이었다. 평일 놀이시간은 약 2시간 21분에 불과했다.
중학생의 경우는 평일 총 학습시간이 8시간 41분, 놀이시간은 평일 2시간으로 초등학생보다 21분 짧았으며, 고등학생은 학습시간이 평일 10시간 13분으로 조사됐다. 다시 말해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학습시간은 증가하고 놀이시간은 줄었다.
최 연구원은 “최근 육아정책연구소가 발표한 연구도 비슷한 경향이다. 초등 저학년 자녀를 둔 엄마에게 취학 이후 자녀의 놀이시간 변화가 있는지 물어본 결과 놀이시간이 감소했다는 응답이 55.9%로 가장 많았으며, 그 이유로는 ‘사교육 이용시간 증가’가 57.3%로 가장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매해 이러한 자료들이 공개되면 (사)교육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이들의 놀 권리는 사라질 것이라고 여론은 떠든다. 그러나 그 변화는 너무나 미미하게 느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아이들의 시간을 잡아먹는 학습부담의 원인을 공고한 대학 서열화 구조와 그에 따른 출신학교 간 차별과 직업 간 임금 격차라고 주장했다.
그는 “교육 내부에서는 높은 변별력을 요구하는 대입-고입, 고교 서열화, 줄세우기식 평가, 과도한 선행교육과 같은 학교교육의 부실이 있다. 또한 시장은 이를 이용해 과장·허위 마케팅을 펼치고 잘못된 정보를 유통해 부모와 학생의 불안을 부추겨 결국 소비까지 이르게 하면서 결국 우리 사회가 영유아 단계 아이들의 놀이시간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당장의 놀 권리 보장을 위한 응급처지부터 체질개선까지 우리가 할 일들을 하나씩 모색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마무리했다.
◇ 왜 부모들은 막상 놀고 싶어도 갈 곳이 없다고 이야기할까?
두 번째 발제자로 나온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팀 대리는 ‘왜 막상 놀 곳이 없을까?’라는 주제를 발제하면서 원인을 설명했다.
제충만 대리는 “행정안전부에 등록된 대한민국의 놀이시설은 7만여 개가 넘는다. 편의점 3만 5000여 개, 치킨집 4만여 개와 비교했을 때 결코 적은 숫자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놀이공간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다양한 원인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먼저 “놀이터가 한 곳에 몰려있다. 전체 놀이터 중 40%가 서울과 경기에 있다. 서울·경기 거주 15세 미만 인구 비율은 43%이지만 면적으로 따지만 서울·경기는 국토 전체 면적 중 11%”라면서 “어림잡아 10% 땅에 40%놀이터가 있고, 나머지 90% 면적에 60% 놀이터가 있는 것이다. 지역의 놀 공간 불균형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놀이터가 만들어질 때 좋은 곳에 자리잡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현재 놀이터는 아파트 단지나 주택단지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만든다. 하지만 특별한 기준이 없는 외진 곳이나 어둑한 곳, 버려진 땅에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내가 직접 본 곳은 놀이터가 LPG 가스 판매업소 바로 옆에 있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그는 ▲예산이 부족해 유지관리가 안 되는 점 ▲놀이터가 안전하지 않은 점 ▲키즈 카페와 같은 사설 유료 놀이공간이 많아져 비용부담이 커진 점 ▲장애아동은 함께 놀기 어려운 점 등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그는 “이를 한 방에 해결해 줄 마법은 없다. 또한 ‘공간’만 해결한다고 될 문제도 아니다. 어른이 아닌, 아이를 중심에 두고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면 언젠가 모든 놀이터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놀이터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마무리했다.
◇ 아이들의 놀 권리 확보 위해서라도 어른들의 사회 달라져야
세 번째로 발제한 조성실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는 ‘놀이판에는 함께 놀 친구가 필요하다’라는 주제를 발표하면서 “놀 권리에 대한 고민은 시·공간에 대한 고민과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족·친구·이웃 등)가 없는 우리의 현실을 진단하고 이를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이뤄져야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조성실 공동대표는 “대한민국 아동·청소년의 행복 지수를 비롯한 충격적인 수치들이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놀이로 행복한 아이들’을 위한 사회적 책임이 반짝 관심을 받는 것 같았지만 이내 사그러들었고, 그나마의 노력들 역시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정책 실현으로 연결되지 못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조 대표는 “놀이터에 나가도 놀 수 있는 친구를 만나기도 쉽지 않다. 그나마 여가시간엔 주로 실내에서, 컴퓨터 앞에서, 혼자서 노는 게 익숙한 시대다. 오늘날 아이들이 처한 상황은 어른들의 사회와 놀랍도록 닮아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이들의 놀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무엇보다 어른들의 사회가 달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례로, 가정에서 양육자와 즐겁게 놀고 적극적으로 상호 작용해본 아이가 또래와도 잘 놀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러나 우리 현실은 육아기 부모들은 늘 시간에 쫒긴다. 그것도 모자라 출산·육아로 인해 일터에서 쫓겨나듯이 떠나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그는 “육아기 여성의 일·가정 양립이 불가한 현재의 사회구조는 엄마들의 경력단절 및 독박 육아와 같은 사회적 문제로 연결되고, 자녀 양육에 대한 과몰입으로 이어지기 쉽다. 이러나저러나 놀지 못하는 아이들, 쫒기는 어른들. 악순환의 연속이다. 결국 무엇보다 어른들의 사회가 달라져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 그룹토의에서 나온 부모들의 의견들
발제 이후 이어진 그룹토의에서는 부모들의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뛰어놀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요.”
“부모가 바쁘고 여유가 없다 보니, 아이와 눈 맞추고 놀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요.”
“솔직히 부모도 아이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부모가 편한 장소로 아이를 데려가는 것도 있어서 문제인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산이 많은데, 이런 녹지공간을 이용해서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공간으로 돌려줬으면 좋겠어요.”
“놀이터 숫자가 너무 부족해요. 특히 아파트가 아닌, 주택가에 사는 사람들은 더 느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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