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펑펑 울고 싶은 우리 대한민국 남자들
가끔은 펑펑 울고 싶은 우리 대한민국 남자들
  • 칼럼니스트 차은아
  • 승인 2018.06.29 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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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은아의 아이 엠 싱글마마] "남자도 울고 싶으면 우는 거지, 뭐!"

내가 살았던 시골은 정말 작은 동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동네 친구들이 모두 다 같이 올라가는 그런 작은 단위의 시골이었다. 그래서 친구 아빠와 엄마의 생신부터 밥숟가락 갯수 하물며 동네 친구 할머니 제삿날까지도 알 정도로 가족같은 시골이었기에 커서도 남자 여자 상관없이 동창회에서 만날 때마다 가족같이 편안한 곳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 각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명절 때마다 만나는 시골 동창생들을 그렇게 순박하고 귀여울 수가 없다.

아직도 고향에 사는 동창들을 가끔씩 볼 때마다 '왜 이렇게 촌스럽게 생겼냐'며, '비싼 메이커 입으면 뭐하냐? 자랑하러 갈 때 없는 시골 동네 아저씨 같다'고 놀릴 정도로 우리는 서로를 편하게 가족처럼 믿고 신뢰한다. 그러다 보니 만날 때마다 서로의 속마음을 편하게 얘기해 놓기도 하는데, 내 친정부모님의 생신에 맞춰 시골에 내려갔을 때 급 동창모임을 한 적이 있었다.

갑작스레 모인 자리라서 반가움이 더 커졌고, 서로 안부도 묻고 지난 얘기를 하느라 너무 신나서 서로 손들면서 얘기할 정도로 화기애애했는데, 동창 한 명이 욕을 바가지로 먹을 만할 경험을 얘기했다. 그 문제의 동창이 어느날 회사 동료들이랑 호프집에서 술을 먹는데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젊은 여동생들이 술게임에 져서 술 한잔 받으러 왔다면서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합석을 해서 술도 먹고 노래방도 가서 신나게 놀았다는 얘기를 하자마자, 우리 친구들의 입에서는 쌍욕이 흘러 나왔다.

와이프는 5살, 3살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금도 집안일 하며 애 씻기며 힘들어 하고 있을텐데 넌 젊은 여동생들이랑 놀면서 술값쓰고 노래방 값 내고! 그 돈 가져다가 애들 고기나 사서 구워주라며, 니가 사람이냐며 한국에 총기가 허락이 됐다면 넌 여기서 우리에 총알 10발이 꽃힌채 뉴스에 나왔을거라며 모든 여자 동창생들이 욕에 욕을 더해 단숨에 만신창이로 만들어 버렸고, 그 벌로 우리는 너 따위와는 더 너랑 놀아주지 않겠다면서 얼른 들어가서 와이프 발이나 닦아주라고 쫒겨내듯 보내버렸다.

스머프 같은 동심의 세계에서 자란 우리가 어째서 이렇게 썩은 냄새가 나게 됐느냐며 한탄을 할 때, 열분을 토하는 여자 동창생들과 그 내용을 듣고 있던 공공의 적이 된 남자 동창생 사이에서의 분위기가 점점 더 고조되고 있을 때, 동창 한 명이 또 다른 얘기를 꺼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자기딴에는 와이프가 너무 힘들어하는거 같아서 자기도 집안일을 열심히 도와주는데 도와주면 칭찬은 고사하고 시킨 것도 제대로 못한다고 욕먹는 기분을 너희들이 아느냐고 하면서 자기의 얘기를 하는 것이었다.

샤워하고 나면 머리카락을 제대로 정리 하지 않았다고 욕을 먹는단다. 물론, 자기딴에는 나름 샤워 후 뒷정리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와이프 눈에는 못미더웠던 것이다. 마른 빨래를 걷어다가 개어놓으면 누가 빨래를 이렇게 개어 놓느냐고 시키지도 않은 일은 잘만한다고 핀잔 듣기 일쑤니 집에 일찍 들어가기 싫다는 것이다.

그 얘기가 또 일리가 있어 우리는 고개를 끄덕여주면서 경청하고 있을 때 하루는 와이프랑 싸우고 사이가 안 좋아서 쌓이고 쌓였던 그동안의 모든 섭섭한 감정들이 터지듯 와이프에게 자기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펑펑 울면서 '내가 남편으로서 아이 아빠로서 그렇게 부족하냐'고 '어떻게 하면 마음에 들겠냐'고 1시간동안 와이프 앞에서 펑펑 울었다는 얘기를 담담히 하는 것이었다.

남자들도 울고 싶은 일이 많겠지. ⓒ베이비뉴스
남자들도 울고 싶은 일이 많겠지. ⓒ베이비뉴스

'와이프 앞에서 펑펑 운다? 와이프 앞에서 남자가 펑펑 울었다고??'

내 전 남편에게서 한번도 본 적이 없었던 모습들이다.

남자 동창생이 무덤덤하게 그 얘기를 할 때 나는 속으로 '그래도 너희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는 가정이네! 서로를 충분히 의지하고 믿고 있으니깐 그렇게 울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내 앞에서 한번도 펑펑 운적이 없던 전 남편은 내 귀로 돌고 돌아 전해 들은 얘기로는 지금 살고 있는 그 여자 앞에서 나와의 힘든 부분을 얘기하면서 그렇게 서럽게 펑펑 몇시간을 울었다는 얘기가 문득 스쳐 지나갔다.

'왜? 내 앞에서는 펑펑 울지 않았을까?' 그렇게 내가 이기적이고 독단적이어서 전 남편의 마음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나의 무심한 마음이 들킨거 같아서 내 자신이 너무도 창피했다.

참... 나는 아내로서 그 사람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될까?

'차라리 내 앞에서 울지...' 찌질이라고 놀렸어도 속마음으로는 더 잘해주려고 했을텐데 딴 여자한테 가서 그렇게 펑펑 울 정도로 나란 여자는 정말 전 남편에게 쓸모없었던 사람이었을까, 라는 생각에 질투와 약오름 자괴감마저 들었던 순간이었다.

남자 동창생의 진심어린 이야기에 우리는 아까와는 다른 반응으로 '토닥토닥', '오구오구'를 연발하며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줬다.

어렸을 적 그저 서로 놀리고 때리고 마냥 동네 산과 들을 누비며 다녔던 코찔찔이 우리가 이제는 가정에 와이프에 책임에 눈물에 갈등에 함께 고민하고 위로하고 들어주는 나이가 되다 보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저 같이 얘기하면 공감할 수 있는 그 순간 자체가 우리에게는 큰 힘이 되는 나이가 된거 같아서 든든하면서도 벌써 우리가 이런 나이가 됐나 싶을 정도로 어색하기도 했다.

'지금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뭘까? 지금의 나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걸까?' 펑펑 울며 내가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그렇게 부족한 부분이 뭐냐고 물었던 그 동창생의 울먹임 속에서 그 와이프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펑펑 우는 동창생의 울음에 깜짝 놀란 와이프가 되레 요즘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도 쌓여 자기가 예민하게 굴었던거 같았다고 너무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그 사건 이후 1주일 정도는 자신을 괴롭히지 않더라는 동창생의 얘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너란 아이 겁나 웃긴 아이라며 같이 웃어 버렸다.

나는 그 동창생에게 와이프 앞에서 참 잘 울었다라고 토닥여줬다.

남자도 힘들면 울 수 있는거지 누가 남자는 죽기 전까지 3번만 울어야 한다고 그런 거지같은 발언을 했냐고 하면서 앞으로 힘들면 딴 여자한테 가서 질질 짜지말고 와이프한테 가서 힘들면 힘들다고 얘기하라고, 그게 너희 두 부부가 더 건강해지고 더 단단해 지는거라고 했더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른 소리를 한다면 칭찬까지 듣게 됐다.

그 순간 나는 나의 과거의 모습이 생각이 났고, 친구 가정이 부러웠고, 전 남편에게 아내로서 부족한 내 모습에 미안했고, 그때는 왜 남편의 힘듦이 내 눈에 안보였는지 내 자신이 창피했다.

소중함, '지금도 알았던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글이 오늘은 왜 더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휴...

*칼럼니스트 차은아는 6년 째 혼자 당당하게 딸아이를 키우고 있다.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어설픈 아메리카 마인드가 듬뿍 들어간 쿨내 진동하는 싱글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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