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막은 공사장… 유모차는 불편·불안 '이중고'
인도 막은 공사장… 유모차는 불편·불안 '이중고'
  • 김윤정 기자
  • 승인 2018.09.2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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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부터 괴로운 유모차②] 공사장 주변과 인도 위 노상시설

【베이비뉴스 김윤정 기자】

베이비뉴스는 유모차(유아차)를 끌고 마음 편히 다닐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개선하기 위해 2013년부터 매년 ‘유모차는 가고 싶다’ 영유아 보행권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집 앞 골목길부터 유모차를 괴롭히는 보도 환경과 불법주차 문제 등을 집중 조명한다. - 기자 말

“공사장 근처 임시로 만들어놓은 인도를 차량들이 점령하고 있어요. 사람들과 유모차가 좁은 차로로 다녀 사고의 위험이 있어 보여요. 매번 민원을 넣을 수도 없고 답답해요.” - 육아맘 A씨(서울 영등포구)

“아침에 아이들을 데리고 공사장 출입구 앞을 지나려고 하는데 덤프트럭이 나오는 바람에 사고가 날 뻔했어요. 트럭이 아이가 탄 유모차 옆에 약 1m 간격으로 서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다신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해요.” - 육아맘 B씨(서울 영등포구)

공사장 주변 울퉁불퉁하고 공사 자재나 차량으로 막혀버린 보도가 유모차를 끄는 육아맘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 관련 법령이 있으면서도 처벌과 단속 기준은 없고 규정을 따르기 어려운 현실이 유모차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유모차를 끄는 육아맘이 서울시 내 한 초등학교 통학로 정비공사 현장에서 통행에 불편함을 겪고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유모차를 끄는 육아맘이 서울의 한 초등학교 통학로 정비공사 현장을 지나고 있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환기구·펜스로 좁아진 공사장 주변 보도, 유모차 통행 방해

서울 목동의 한 상가 공사 현장에서는 높은 펜스가 공사장과 보도의 경계를 나타내고 있었다. 기존 보도 가운데 설치된 펜스는 인도의 폭을 줄였다. 지하철 입구와 환기구가 있는 곳이라면 길은 더욱 좁아졌다.

펜스와 지하철 환기구 사이의 폭은 약 90cm, 지하철 입구가 있는 길의 폭은 약 150cm였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구민지 씨의 논문 ‘근린생활권 내 보행환경에 관한 연구 : 유모차 이용자의 보행 활동을 중심으로’(2017년)에 따르면, 유모차를 이용하는 데 최소한으로 필요한 폭은 70~80cm다.

최소 약 90cm에 지나지 않는 이들 공사장 주변 보도는 유모차가 통행하기엔 불편한 환경이다. 특히 환기구가 있는 보도는 폭이 한 사람이 걸어서 지나갈 만큼만 남아 교차보행이 불가능했다. 반대편에서 유모차를 끈다면 뒷걸음질을 쳐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기자는 지난 13일 서울시내 보도가 있는 공사현장 11곳을 찾았다. 11곳의 공사장 보도의 유효폭은 최소 약 90cm부터 최대 2.2m까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에선 보도에 공사 자재가 깔려 있거나 공사차량이 들어와 보행자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곳도 있었다.

목동 상가 공사 현장의 시공사 관계자는 “공사를 하기 전에 구청에서 인·허가를 먼저 받고 허가가 되면 시행을 하게 된다. 위법 부분이 있다면 시정을 해야겠지만 펜스 등을 대지경계선에 따라 설치한 것”이라며 현장엔 문제가 없음을 알렸다.

충분치 않은 보도로 불편함을 겪는 건 육아맘들이었다.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가 보도가 막혀 차도로 돌아가게 된 육아맘 C씨는 “임시 보도를 만들었어도 주위에 장애물이 있으면 차도로 돌아갈 수밖에 없어 불편하고 불안하다. 공사 현장 주변 길은 울퉁불퉁해서 유모차를 끌 때 걸릴까봐 더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지하철 환기구가 있는 보도에 공사장 펜스가 설치되자 걸을 수 있는 폭이 약 90cm 내외였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지하철 환기구가 있는 보도에 공사장 펜스가 설치되자 걸을 수 있는 폭이 약 90cm로 좁아졌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보행안전통로·안전시설 설치, 기준은 있지만 단속·처벌 규정은 없어

보행안전법 제25조 공사 중 보행자를 위한 안전조치 의무에 따르면 인공구조물이나 물건, 그밖의 시설을 신설·개축·변경·제거하거나 그밖의 목적으로 보행자길을 점용하는 자는 보행자에 대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보행안전통로와 안전시설을 설치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7월 개정한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에서는 가로수 등을 제외한 보행자 통행에만 이용되는 유효폭을 최소 1.5m 이상으로 규정했다. 개정 이전의 기준은 최소 1.2m로, 개정 시점에서 이미 지침을 시행 중인 건설공사 및 설계용역은 발주기관의 장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종전의 규정을 적용할 수 있다.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 개정 시점을 고려하면 보행자들이 다닐 수 있는 보도의 유효폭은 최소 1.2m 이상인 곳이 대부분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서초구청의 한 관계자는 “공사장이 매우 많은데 날마다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현장에 나가 확인하지 않겠냐”며 “안전관리상황이 미비한 곳은 현장에서 계도·시정하고 정비하거나 수정할 수 있게 행정제재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공사장 보도에서는 유효폭을 확보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행안전통로를 미끄럽지 않게 평평하게 하고 펜스와 캐노피 등으로 안전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서지만 법적 강제성은 없어 단속이나 처벌은 이뤄지지 않는다.

김명수 한밭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난 15일 기자와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일반적으로 일정 규모 이상의 공사장에서는 교통처리계획을 수립하게 돼 있다. 공사장 상근 근로자의 차량, 공사장 자재 보관 장소, 중장비 차량에 대한 저장, 박차 공간, 차량 서행, 보행자 안전통행로 확보 등을 활용하도록 하지만 공사 현장에서는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관리감독을 해야 하는 지자체에서는 현장을 잘 나오지 않고, 건축법상 건축물 공사는 건축사에게 위임해 감리 등을 업체에 위탁하기 때문에 책임의식이 떨어진다”며 “공사 중 교통처리대책을 강화해 불법주차나 움푹 파인 보도가 없도록 하고 중장비 차량으로 인한 장애, 자재의 불법적치물 등이 없도록 건축법상의 규제 강화와 벌금 제도 등이 도입돼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보행안전통로 및 안전시설 설치에 대한 법적 강제성은 없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공사장 주변 보행안전통로 및 안전시설 설치에 대한 법적 강제성은 없다. 김재호 기자 ⓒ베이비뉴스

◇ 표지판·가로수 등 노상시설도 유모차 통행 막아…

보도에 설치된 표지판 및 가로등, 가로수 등 도로 부속물인 노상시설도 보행자 및 유모차의 통행을 방해한다. 노상시설들은 유모차가 다닐 수 있는 면적을 줄여 다른 길로 돌아가게 만든다.

국토교통부의 도로의 구조·시설 기준에 관한 규칙 제16조 4항에 따르면 보도에 가로수 등 노상시설을 설치할 땐 노상시설 설치에 필요한 폭을 추가로 확보해야 한다.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에서도 보도의 노상시설에 대한 규정을 두고 있지만 보도 유효폭의 확보 문제와 마찬가지로 법적 강제성은 없다.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에서는 기존 보도의 유효폭을 1.5m 확보하기 어려운 구간에선 50m마다 1.5m×1.5m 이상의 교행구역을 검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교행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 있다면 교행구역의 설치를 생략할 수 있고, 교행이 많이 발생하는 곳은 교행구역을 이용한 보도의 설치보다는 보도 유효폭 1.5m 이상을 연속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권장했다.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에서 정하고 있는 ‘노상시설을 설치하는 경우의 보도 유효폭’. ⓒ국토교통부
보도 설치 및 관리 지침에서 정하고 있는 ‘노상시설을 설치하는 경우의 보도 유효폭’. ⓒ국토교통부
보도의 노상시설도 유모차 통행에 불편함을 준다.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인천 석남동의 한 사거리 보도. 보도 위에 설치된 노상시설로 인해 길이 절반 정도 더 좁아졌다. 한 사람이 걸어서 지날 수 있는 정도지만 유모차는 지나갈 수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차도로 내려가야 한다.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전봇대와 안내판 등이 보도의 폭을 좁히고 있다.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위 사진의 길을 반대쪽에서 본 장면. 안내판과 전신주, 교통신호등 등이 좁은 보도 위에 설치돼 유모차 통행이 불가능하다.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버스정류장의 기둥과 벤치, 한 가게에서 설치한 발판이 유모차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인천 석남동의 한 버스정류장. 좁은 보도 위에 설치된 쉘터 기둥과 벤치, 상가에서 설치한 발판이 유모차의 통행을 방해하고 있다. 최규화 기자 ⓒ베이비뉴스

◇ 현장 따라 다른 공사장 보도 환경, 유모차 통행 위한 안전성 확보 시급

공사장 보도 관련 규정들은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사실상 시공사에 따라 자체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공사 현장마다 보행안전통로나 안전시설의 설치에서 차이가 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또 다른 시공사 관계자는 “같은 보행안전통로라 해도 어느 곳은 펜스만, 어느 곳은 펜스에 캐노피까지 설치된 곳이 있다. 안전시설을 움직이지 않고 준공까지 가는 현장이라면 더 철저히 해놓을 것이고 펜스 등을 계속 옮겨야 하는 공사장이라면 간단히만 설치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행안전통로나 안전시설의 설치가 더욱 안전하게 이뤄지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공사 현장 상황에 있다. 좁은 길과 주택지 등 보행안전통로의 유효폭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청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보행안전통로를 설치하지 않은 곳은 거의 없을 정도로 무조건 돼 있다고 보면 되지만 현실적으로 설치가 어려운 환경도 있다. 좁은 길에선 도로를 점유해야 하기 때문에 유효폭을 충분히 확보하기가 어려운 실정”이라고 귀띔했다.

기자가 찾은 11곳 중 캐노피가 설치된 유일한 공사 현장. 바닥 역시 평평하고 고르게 돼있어 통행에 불편함이 적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기자가 찾은 11곳 중 캐노피가 설치된 유일한 공사 현장. 바닥 역시 평평하고 고르게 돼 있어 통행에 불편함이 적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김 교수는 “미국 등 일부 외국은 도로와 연접한 공사장에서 교통경찰이 차량 통행과 보행자를 위한 지도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부 공사장에서는 보행안전 도우미를 활용하지만 다른 업무를 병행하기 때문에 그 역할이 미약하다. 전문적인 보행 도우미의 정착과 유모차와 보행자를 위한 안전성 확보가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김 교수는 “공사가 완료된 후에도 보도가 원상 복구되지 않은 곳이 있어 보행자가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는데 사후 처리의 강화도 필요하다. 공사를 시행하기 전에 주민자치센터 등을 통해 주민과의 간담회를 진행하고 행정관청에서 상시 시찰 등을 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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