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날은 친정으로 갑니다
이번 설날은 친정으로 갑니다
  • 정가영 기자
  • 승인 2020.01.21 16: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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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가영의 MOM대로 육아] 결혼 후 처음으로 먼저 가는 친정

【베이비뉴스 정가영 기자】

‘왜 매번 당연히 가는 거야?’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 설날 연휴 시가로 향하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여보, 우린 왜 서울부터 가는 거야?”

“그럼 어디부터 가? 강릉 가고 싶어?”

갑작스런 질문에 남편도 적잖이 당황하는 눈치였다. 결혼 후 매년 찾아오는 설날, 추석 명절 두 번을 늘 남편네 집에서 먼저 보냈다. 명절 당일 아침 예배를 드리는 우리 집과 달리 남편네는 향을 피우고 차례를 지냈다. 수북이 담은 밥과 국 그릇만 일곱 개. 얼굴도 모르는 조상님께 예를 모두 갖춘 다음에야 친정인 강릉으로 향했다.

바삐 움직인다고 어수선을 떨어도 집밖에 나서면 점심시간이 다 됐다. 그 시간에 고속도로에 오르면 백발백중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했다. 우리처럼 차례를 지낸 뒤 이동하거나 놀러가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리라.

평소 같으면 세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아홉 시간을 꼬박 차 안에 앉아 있었다. 파김치가 되어 도착한 친정에서 제대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지도 못한 채 잠을 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던 명절 연휴.

남편과 나 둘일 때는 그것도 추억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난 뒤엔 아이에게도, 차에서 아이를 돌봐야 하는 내게도 너무 힘든 일이었다. 우는 아이를 달래느라 온갖 장난감을 동원하고, 차에서 기저귀를 갈아주며 그 긴 시간을 보냈다. 잠시 쉬고자 내린 휴게소는 사람들로 가득해 그리 좋은 쉼터가 되지 못했다.

친정 부모님은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힘들다”며 오지 말라고 하셨다. 몇 번의 귀성길을 겪으며 친정에는 명절 전에 미리 가거나 아예 나중에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렇다보니 지금까지 명절 연휴를 시가에서만 보내왔다.

몇 번의 귀성길을 겪으며 친정에는 명절 전에 미리 가거나 아예 나중에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베이비뉴스
몇 번의 귀성길을 겪으며 친정에는 명절 전에 미리 가거나 아예 나중에 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베이비뉴스

결혼 전에는 ‘명절은 서울, 강릉 번갈아가면서 보내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곳 갔다, 저곳 갔다,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날은 시가에서, 추석은 친정에서 보내면 가족들을 오래 볼 수도 있고 모두가 편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결혼을 하니 너무나 당연하게 시어머니와 함께 전을 부치고 차례상을 차렸다. 차례를 지낸 뒤엔 밥을 먹고 설거지를 했다. 중간에 손님이 오면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가 밥을 차리고 있었다. “친정에서 명절을 보내겠다”는 말을 내 입으로 한 적도 없었지만, 누구 하나 ”이번엔 강릉부터 가야지“, “차례 지내고 가면 차가 많이 막히니 얼른 가라”는 말을 건넨 사람도 없었다.

친정에서도 “왜 이번 명절엔 못 내려오냐?”고 타박하지 않았다. 명절엔 시가부터 가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우린 모두 습관처럼 그렇게 알고 있었다. 내가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이 그랬고 내 친구, 내 가족, 직장 사람들 모두 그렇게 명절을 보내고 있었다. 법으로 정해져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 문화가 그러했다. 내 아이들 역시 당연하게 그 문화를 보고 자라고 있다.

이상할 게 없었고 당연하게 행해왔던 그 문화가 갑자기 불공평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했다.

“내년 설날은 강릉에서 보냈으면 좋겠어.”

그렇게 내가 말한 ‘내년 설날’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고맙게도 남편은 미리 시어머니께 말했다. 이번 설날은 처가 식구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말이다. 시어머니는 흔쾌히 잘 다녀오라고 말씀하셨다. 문제는 시아버지였다. 가부장적인 시아버지께서 잘 갔다오라고 하실지 남편도 시어머니도 나도 걱정이었다.

지난주 시아버지는 남편을 불러 “새아가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선물까지 빼먹지 말고 다 사가라”며 돈 봉투를 내미셨다. 제사나 차례 때 장손이 빠지면 큰일 나는 줄 아시는, 대쪽 같은 시아버지시다. 그런 시아버지께서 며느리 마음을 헤아려주신 것이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이번 설날 친정으로 가서 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여름한복 입고 열심히 세배 연습하는 둘째 아이. 이번 설날에는 예쁜 한복 입고 처음으로 강릉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세배할 예정이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여름한복 입고 열심히 세배 연습하는 둘째 아이. 이번 설날에는 예쁜 한복 입고 처음으로 강릉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 세배할 예정이다. 정가영 기자 ⓒ베이비뉴스

“서울에 안 가고 어쩐 일이냐”며 깜짝 놀라면서도 좋아하실 부모님 얼굴이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곱게 한복을 입힐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으로 강릉 할머니, 강릉 할아버지와 작은할머니, 작은할아버지, 증조할머니 등 친정 식구들 앞에서 세배를 할 수 있게 됐다. 명절 당일 친정 부모님과 함께 서울에 계시는 시아버지, 시어머니께 영상통화로 인사드릴 예정이다.

조금은 다르게 맞이하는 이번 설날이 참 감사하게 다가온다. 어느 때보다 더 특별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정가영은 베이비뉴스 기자로 아들, 딸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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