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언급 안한 李 반색 안한 민주 왜?
이정희 후보 전격 사퇴 대선 판도에 영향
이정희 통합진보당 후보가 16일 전격적으로 후보직 사퇴를 선언해 대선판세에 적지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이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1%대의 낮은 지지율을 기록한 말 그대로 군소후보였다. 40~50%대를 기록하는 박근혜 새누리당,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와 안철수 전 무소속 후보와 비교해보면 미미하기 짝이 없는 지지율이다.
하지만 대선이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는 초박빙 구도가 형성되면서 1~2%의 지지율이 갖는 의미는 심상치 않다.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역대 어느 선거때보다 단단히 결집하면서 어느쪽이 승리하더라도 100만표 미만에서 승패가 결정될 것이라는 예측이 잇따르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투표권을 행사하는 유권자 수는 총 4046만4641명. 이중 중 1%만 되더라도 최소 40만명이 넘는다. 이 후보를 지지하는 이들의 충성도를 감안하면 이 후보의 의사표현에 따라 특정 후보에 대한 '몰표'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 후보와 문 후보의 희비를 가를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후보는 사퇴의사를 밝히면서 진보세력에 의한 정권교체를 강력히 희망했다. "친일의 후예, 낡고 부패한 유신독재의 뿌리, 박근혜 후보의 재집권은 국민에게 재앙이자 돌이킬 수 없는 역사의 퇴행"이라며 박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도 또렷하게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사퇴로 당연히 정권교체의 주체가 되어야할 '문재인'이란 이름 석자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색해야할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측의 반응도 미묘하다. 이 후보 사퇴와 관련, 환영이나 비판 어느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문 후보측 박광온 대변인은 이 후보 사퇴 직후 서울 영등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정희 후보의 사퇴는 정권교체를 바라는 국민들의 열망을 무겁게 받아들인 결정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문재인 후보와 민주당은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루고 새 정치를 실현하고 사람이 먼저인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고 덧붙였다.
'고맙다', '환영한다'는 의례적 수사는 일체 없었다.
이같은 상황의 배경은 2010년 지방선거 때부터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4.11총선까지 이어져온 통합진보당과 민주당간의 얽히고 섥킨 관계에서 추론할 수 있다.
두 당은 야권연대의 틀안에서 줄곧 공조를 이어왔다. 민주노동당 2년 전 지방선거에서는 완승을 거뒀고,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시민사회진영의 박원순 후보를 당선시키는 등 찰떡궁합을 과시했다.
당시만해도 통합진보당은 민주노동당 간판을 달고 있었다. 당세의 차이는 있지만 선거의제 등에 있어서는 민주당이 무상급식 등 민노당의 진보정책을 대폭 수용하는 등 대등한 관계였다.
지난해 말 친노세력이 주축이 된 국민참여당과 스타급 정치인 심상정, 노회찬으로 대표되는 새진보통합연대(진보신당 탈당파)가 통합해 통합진보당이 탄생하면서 민주당과의 관계는 한층 긴밀해지는 듯 싶었다.
하지만 4.11 총선 전후로 불거진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과 종북논란은 양당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균열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통합진보당은 13석을 획득해 제3당으로 자리잡은 반면 민주당은 김종인이라는 의외의 인물을 영입하고 당명까지 바꾼 새누리당에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빼앗기며 제1당의 자리를 내주는 실패를 경험한다.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한미FTA 재검토 등 통합진보당과 입장을 같이했던 것이 패인중 하나라는 내부비판이 이 무렵 민주당 내부에서 나왔다.
이후 민주당은 통합진보당과의 관계설정을 재점검하게 됐고, 국민참여당계가 주촉이 돼 벌어진 통합진보당의 분당사태로 양당간 관계는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 같은 존재가 됐다.
민주당으로서는 특히 중도층의 표심이 전체 판세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상황에서 종북논란에 휩싸인 통합진보당과의 연결고리를 끊는데 주력했다. 통합진보당이 진짜 종북정당인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 말이다.
그러면서도 이 후보의 출마로 인해 진보진영의 표가 잠식될 것을 우려했다. 박 후보측이 이인제, 이회창 등 껄끄러운 보수세력을 끌어안으면서까지 표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감안하면 한번 쯤 이 후보측에 손을 내밀어야 했지만 이를 주저했다. 이 후보의 사퇴는 염원하지만 중도층의 동요를 우려, 이를 표면화할 수 없는 것이 민주당측의 정확한 입장이었다.
이 후보측이 그동안 내부적으로 사퇴 명분쌓기를 위해 민주당측의 러브콜을 기대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박 후보의 당선은 분당사태로 반쪽난 민주통합당의 입지를 더욱 좁히는 결과라는 것은 진보진영 모두가 공유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후보가 사퇴 기자회견에서 문 후보의 이름을 올리지 않은 것은 이같은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렇지 않아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발언을 둘러싸고 문 후보가 곤욕을 치르고 있는 상황에서 종북세력의 지지를 받는다는 이미지가 더해질 경우를 우려해서란 것이다.
이쯤되면 이 후보측의 이날 기자회견은 나름 문 후보에 대한 배려의 의미가 담겨있다고 봐야한다는 지적이다.
문 후보측도 내심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지만 제대로 내색하지 못한 것은 박 대변인의 논평에서도 그대로 묻어난다.
한때 열렬히 사랑했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갈라선 부부. 하지만 재결합하면 서로에게 상처만 줄 수 있는 사이. 이 후보의 중도사퇴가 연상시키는 씁쓸한 러브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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