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 장애인이거든"...당당한 부모, 당당한 아이들
"우리 아빠 장애인이거든"...당당한 부모, 당당한 아이들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7.11.02 10:47
  • 댓글 9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AD
[창간 7주년 특별기획] 바퀴 달린 엄마-⑦박대운·최윤미 씨 부부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갈까?’ 베이비뉴스는 창간 7주년 특별기획 시리즈 ‘바퀴 달린 엄마’를 연재합니다. 장애가 있는 부모들의 삶과 육아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우리 사회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기자 말

지난 9월 25일 인천시 연수구 한 아파트에서 휠체어를 탄 박대운(46) 씨와 자전거 탄 두 아이가 함께 놀이터로 향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9월 25일 인천시 연수구 한 아파트에서 휠체어를 탄 박대운(46) 씨와 자전거 탄 두 아이가 함께 놀이터로 향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늘 당당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맘이 약해지더라고요. 아이가 장애가 있는 아빠 때문에 상처받지는 않을지. 큰애가 4살 때 어느 날 갑자기 ‘아빠는 왜 다리가 없어?’라고 묻더니, 재빨리 말을 바꿔 ‘아빠는 다리가 없는 게 아니라 왜 짧은 거야?’라고 묻더라고요.”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친구랑 다투다가 ‘우리 아빠 장애인이거든’ 하고 자랑스럽게 말했다고 하더라고요(하하하). 제가 어디서든 바른 소리를 잘하는 편이에요. 장애인 주차장에 아무나 차를 세우거나 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죠. 그런 모습을 봐온 아이 눈엔 장애인이 대개 좋은 것인 줄 알았나 봐요.”

한 때 ‘바퀴달린 사나이’로 불린 박대운(46) 씨는 열 살 아들과 일곱 살 딸을 뒀다. 아이들 이야기를 시작하자 자연스럽게 얼굴에 기쁨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박 씨는 1971년 대구에서 태어나 6살 때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다. 일반 초등학교 측의 입학 거부에도 끝내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중학교, 고등학교도 모두 일반학교를 다녔다.

박 씨는 대학 시절, 한일 월드컵 성공 개최 기원 유럽 5개국 2002㎞ 휠체어 횡단, 한일 4000㎞ 국토종단에 도전해 성공했으며 사회에 나와 리포터, 기자, 개그맨 등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다. 베이비뉴스는 지난 9월 25일 오후, 박 씨가 근무하는 서울 송파구 방이동 대한장애인체육회 감사실을 찾아 삶과 육아를 주제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장애인의 삶, 싸우고 부딪혀야 얻을 수 있었다”

박 씨는 6살 때 동네 형들 따라 놀러가다 대구 MBC 근처에서 갑자기 나온 차에 치여 두 다리를 잃었다. 지금은 자동차보험이 보편화돼 있지만 그때만 해도 무보험 차가 많았다. 박 씨는 “당시 사회 분위기는 사고를 내면 병신을 만들지 말고 죽여야 사고 수습이 더 쉽다는 말이 있을 때였죠. 운전자가 나를 치고 다시 후진해서 한 번 더 쳤다고 하더라고요”라며 착잡한 심정으로 그때를 떠올렸다.

또래보다 3년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주변 사람들은 특수학교를 권했지만 박 씨 어머니는 박 씨를 특수학교에 보내면 ‘할 수 있는 것보다는 할 수 없는 쪽으로 적응할 것 같다’고 판단하고, 일반학교로 보내기 위해 애를 썼다.

초등학교 측은 장애인은 학업능력이 떨어질 것이란 이유로 입학을 거부했다. 결국 다니다가 학업능력이 떨어지면 특수학교로 옮기겠다는 전제로 입학을 허가받았다. 체육 수업에 참여하는 것은 엄두를 낼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5학년 때 반장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전과목 성적에 ‘우’가 두 개 미만이어야 반장을 입후보할 수 있었다. 체육 ‘미’를 ‘우’나 ‘수’로 바꿔야 가능했다. 반대를 무릅쓰고 체육수업에 참여해 결국 ‘미’를 ‘우’로 바꿔서 5학년 2학기 때 반장이 됐다.

“학교에 입학할 땐 어머니가 세상과 부딪혔고, 반장 선거에선 제가 직접 세상과 부딪쳐 승리를 경험했죠. 입학조차 거부당했던 사람이 경쟁을 통해 작은 승리를 이룬 게 큰 경험이고 성취였어요.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발판이 된 셈이죠.” 그에게 반장은 자신감을 얻은 소중한 승리의 첫 경험이었다.

일반학교를 다니면서 유사한 많은 차별을 경험하면서 ‘싸우고 부딪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장애가 있으니 앉아 할 수 있는 일을 직업으로 찾아라’는 말이었다. ‘장애가 있는 것과 내 삶은 별개인데 왜 모두 장애와 연결시켜 얘기할까. 장애인으로 하기 힘든 일이 뭘까’라는 고민 끝에 활동성이 클 것 같은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했다. 이후 프리랜서 기자, 아마추어 개그맨을 경험하면서 장애인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박 씨는 어릴 때 본 장애인의 두 다른 삶의 모습이 본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하게 한 큰 사건이었다고 기억했다. “시장 앞에 살 때 다리가 없는 분들이 수레를 밀고 다니면서 생필품을 팔고 다니는 모습을 봤어요. 그 땐 월남 전쟁 후라 상이용사들이 많았거든요. 그 장면을 보고 굉장히 놀랐어요. ‘나의 미래구나’ 하는 생각에 한동안 정말 우울했죠. 그러던 중에 미국의 한 대통령이 휠체어를 타고 나와 구름 같은 관중 앞에서 연설을 하고 박수 받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결국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부정적으로 살면 누군가에게 동정 받는 불쌍한 장애인이 될 수도 있고, 긍정적으로 살면 박수 받는 삶을 살 수도 있겠구나.’ 그 생각이 지금까지 저를 지탱해 온 힘이 된 것 같아요.” 박 씨의 긍정적인 모습의 깊은 뿌리를 알 수 있었다.

박 씨에게는 특별한 이력이 있다. 2005년 KBS 2TV ‘폭소클럽’이라는 개그 프로그램에 휠체어를 타고 출연해 ‘바퀴 달린 사나이’라는 코너를 맡았다. 장애인과 관련된 이야기를 개그 소재로 활용해 장애인의 애환을 전달하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장애인이라고 해서 행복하지 않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살면서 다양한 모습이 있는데 장애인도 그 중 하나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라며 반년동안 아마추어 개그맨 활동을 하게 된 이유를 전했다.

지난 9월 25일 인천시 연수구에 위치한 박대운 씨의 아파트 주차장. 박 씨가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난 9월 25일 인천시 연수구에 위치한 박대운 씨의 아파트 주차장. 박 씨가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모습에 장애가 크게 보이지 않았다”

박 씨 사무실에서 한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누다가 인천 연수구에 위치한 박 씨의 집으로 가서 인터뷰를 더 진행하기로 했다. 박 씨가 운전 하는 차로 사진기자와 함께 동승하기로 하고 주차장으로 나갔다. 박 씨는 차 뒤 트렁크 문을 열고 거기 올라앉아 휠체어를 접어 실었다. 몸을 운전자석으로 이동해 자리에 앉았다. 기자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이 운전하는 차는 처음이라 탑승부터 운전까지 모든 게 놀라웠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박 씨의 어린 시절 야구시합 이야기, 낚시 이야기 등 두 다리를 잃은 장애인으로서는 경험할 수 없었을 것 같은 다양한 경험담을 들을 수 있었다. 장애인으로서의 어려움에 불가능이 없는 박 씨의 일상과 삶을 통해 그동안 갖고 있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다 깨지는 순간이었다.

박대운 씨는 퇴근 후 집 근처 딸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데리러 갔다. 아빠를 보자 딸아이는 휠체어에 폴짝 올라앉아 사진을 찍자 당황한 모습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박대운 씨는 퇴근 후 집 근처 딸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 데리러 갔다. 아빠를 보자 딸아이는 휠체어에 폴짝 올라앉아 사진을 찍자 당황한 모습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한 시간 반쯤 걸려 박 씨네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딸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어린이집 입구에서 아빠를 보고 달려 나오는 딸아이는 반가움에 폴짝 박 씨의 휠체어 위에 올라앉았다.

딸아이와 아들, 박 씨가 만나 함께 자전거를 타고 놀이터로 갔다. 아빠는 휠체어, 두 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경쟁하듯 씽씽 달렸다. 두 아이는 매우 밝고 활발했다. 장애가 있는 아빠를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애가 있다는 것조차 잊은 것 같단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박 씨는 아이들과 몸으로 부대끼고 운동하는 것을 워낙 좋아해 매달 ‘문화가 있는 날’이면 퇴근을 조금 앞당겨 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다. 박 씨가 아들과 배드민턴을 치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아내 최윤미(43) 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박대운 씨와 최윤미 씨 부부, 열 살 아들, 일곱 살 딸의 모습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박대운 씨와 최윤미 씨 부부, 열 살 아들, 일곱 살 딸의 모습이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최 씨는 박 씨의 유럽횡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우연찮게 보고 긍정적인 모습에 감동받았다. 2년 후 또 다른 방송사 프로그램을 통해 전과는 다르게 그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무작정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4~5개월 정도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다가 인연이 이어져 2005년 6월 결혼까지 하게 됐다.

아내 최 씨는 “남편의 당찬 모습 하나에 반했어요.(웃음) 장애가 있는데 정말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거예요. 우연히 본 방송 인터뷰에 ‘남들 시선이 신경 쓰이지 않느냐’는 질문에 ‘내가 잘생겨서 쳐다보는데’라고 말하는 자신감 있는 태도가 눈에 확 들어왔어요. 장애가 크게 보이지 않더라고요”라고 말하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외동딸인 최 씨와 장애를 가진 박 씨의 결혼이 쉽지만은 않았다. 반대가 있었지만 워낙 최 씨가 고집도 있고 강단 있는 성격이라 가족들도 길게 반대하지는 못했다. 결혼하자 건강한 아기를 빨리 갖기 위해 곧바로 병원을 다녔다. 인공수정을 하면 아무래도 더 건강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두 아이 모두 인공수정을 통해 얻었다.

최 씨는 정작 본인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던 남편의 장애에 대해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애들이 상처받거나 놀림 받진 않을지 우려했다고 했다. “다행히 애들도 남들 시선 신경 안 쓰고 상처받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아빠 닮아서 당찬 성격이에요. 그래도 학교 보낼 때는 걱정을 많이 했어요. 먼저 상담을 해야 하나, 괜히 얘기해 편견이 생기진 않을까 고민하다 1학년 하반기에 가서 아빠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말씀드렸어요. 선생님도 편견을 갖는 것 같진 않았어요.”

부부는 결혼해서부터 쭉 이곳에 살고 있다. 아이들 친구나 부모님들도 박 씨의 장애에 대해 전혀 의식하지 않는다. 주변의 따뜻한 시선 덕분에 아이들은 긍정적이고 밝게 상처 없이 자라고 있다. 최 씨는 “주변 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을 수차례 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많은 쇼핑센터나 백화점에 가면 아이들이 박 씨를 따라와서 자꾸 쳐다본다. 아이니까 몰라서 호기심에 쳐다볼 수 있다. 그럴 때 어떤 부모들은 아이에게 그러면 안 된다고 알려주기도 한다. “장애를 불편하지 않게 봐주기만 해도 감사하죠”라고 말하는 최 씨에게서 주변의 부족한 배려에 대한 안타까움과 씁쓸함이 묻어났다.

박 씨는 장애가 있다고는 믿지 못할 만큼 아이들을 위해 모든 것을 다해주고 있다. 최 씨는 “박 씨가 주말에 뭐든 애들과 함께 하려는 의지가 엄청 강해요. 캠핑 가고, 수영장도 가고, 그때그때 소소하게 못하는 것 없이 다 해요 정말. 자전거랑 인라인도 애들 아빠가 가르쳤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아빠 박대운 씨가 아들과 놀이터 한쪽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빠 박대운 씨가 아들과 놀이터 한쪽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있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휠체어 타고 남북종단 목표, 우리 누구나 갈 수 있는 곳”

“장애가 있다고 해서 저 스스로 부끄러워하거나 마음의 위축 혹은 어두운 부분이 있거나 하지 않아요. 예전에 대중목욕탕에 가면 주인아저씨가 손님 떨어진다고 오지 말라고 하기도 했어요. 제 나름 그런 상황을 저항하고 이겨내다 보니 장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해요.”

놀이터에서 깜깜한 밤이 될 때까지 박 씨네 가족은 배드민턴도 치고, 줄넘기도 하고 어울려 보냈다. 함께 집으로 가는 길. 여느 집과 다르지 않게 아이들의 이야기 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아이들이 ‘아빠, 나보다 키도 작잖아’ 하고 놀리듯 말한다. 다른 아빠와 다름없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업어주거나, 목말도 태워줬다. “목말을 태워주긴 하는데 높이가 다르니까...(하하하).” 말의 끝을 맺지 못하고 박 씨는 멋쩍게 웃어넘겼다.

박 씨는 눈썰매장, 수영장 등 스포츠 활동에 크게 제약이 없다. 아이들에게 인라인, 자전거도 영상을 보고 직접 가르쳤다. 어릴 때부터 다 경험해봤던 게 좋은 자산이 된 것이다. 보통 사람에게도 경험이 중요하지만 장애가 있으면서 아이를 키우게 되면 얘들은 부모의 장애 때문에 뭔가 제한된 경험을 할 수밖에 없기 마련인데 박 씨네는 예외다.

“큰애가 4살 때 어느 날 갑자기 ‘아빠는 왜 다리가 없어?’ 라고 묻더니, 재빨리 말을 바꿔 ‘아빠는 다리가 없는 게 아니라 왜 짧은 거야?’라고 묻더라고요. ‘아빠는 다리가 없는 게 아니라 네 말처럼 짧지만 사는 데 크게 중요하진 않아. 아빠가 휠체어를 타고 있다고 해서 아빠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하지 않지?’하고 물으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 안전에 대한 고려가 커졌으면 좋겠다는 게 박 씨의 가장 큰 바람이다. “저도 교통사고에 대한 피해자다 보니 운전하는 사람들이 안전의식이 너무 없고 학교에서도 안전교육이 부족한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어릴 때 안전에 대한 교육이 많이 강화됐으면 좋겠어요.”

박 씨는 ‘안전한 사회’와 더불어 ‘긍정적인 사회’를 강조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촛불집회에 11번 나가고, 탈핵 집회에도 나갔다.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좀 더 긍정적이고 밝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사회를 바꾸는 활동에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박 씨는 다음 도전, 그리고 꿈을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 핵실험 등 여러가지 문제로 안전에 위협받고 있어요. 통일이 되면 그런 위험에서는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런 의미에서 휠체어를 타고 우리나라가 가장 영토가 넓었을 때 그 지점을 기점으로 남북종단을 해보고 싶어요. 휠체어를 타고 장애인이 가는 곳이라고 하면 우리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란 의미인거잖아요.”

【Copyrights ⓒ 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베이비뉴스는 창간 때부터 클린광고 정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작은 언론으로서 쉬운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비뉴스는 앞으로도 기사 읽는데 불편한 광고는 싣지 않겠습니다.
베이비뉴스는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드는 대안언론입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에 동참해주세요. 여러분의 기사후원 참여는 아름다운 나비효과를 만들 것입니다.

베이비뉴스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관련기사

베이비뉴스와 친구해요!

많이 본 베이비뉴스
실시간 댓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9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sunn**** 2017-12-25 22:23:50
가족사진의 미소가 너무나도 아름답고 행복하게 느껴지네요 ^^
언제나 행복한 가정 꾸리세요^^

whdtmd**** 2017-12-25 22:22:20
다른말이 필요없네요..가족이란말이 더할것없이 행복인것 같네요^^

m**** 2017-12-25 21:20:22
우리 아빠 장애인이거든"...당당한 부모, 당당한 아이들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gihae**** 2017-12-25 20:34:35
예전 칠 팔십년대만 해도 집안에 장애인이 있으면, 다른 가족들이
창피 해 하거나, 숨기는 것이 예사였지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인식이 많이 개선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남의 가족의 일원이 장애인이라는 것에 큰 관심을 갖는 사람도 별로 없지요.
그저 무덤덤하게 바라 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월이 가니,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변해가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jlh**** 2017-12-25 20:34:22
정말 멋진 부모, 멋진 가족 그리고 자랑스럽고 든든한 아이들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지네요. 이 사회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참 살기 힘들고, 그 자식들 역시 제대로 잘 자라기 힘들다 라는 아주 부정적인 편견을 가지고 있던 편협한 사고를 가진 부끄러운 제 자신을 반성하게 되네요. 높은 자존감과 성숙한 인격을 가진 어른으로 자라날 아이들에게 그리고 그런 어른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님들.. 많은것을 배우고 느끼게 되는 이 사회를 성숙하게 만드는 기사를 만나게 되어 기쁜 크리스마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