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앞이 보인다면… 아이와 달리기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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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 앞이 보인다면… 아이와 달리기 하고 싶어요”
  • 권현경 기자
  • 승인 2018.09.17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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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8주년 특별기획] 바퀴 달린 엄마-⑪시각장애 정다정(가명) 씨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장애가 있는 부모들은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며 살아갈까?’ 베이비뉴스는 지난해에 이어 창간 8주년 특별기획 시리즈 ‘바퀴 달린 엄마’ 시즌2를 연재합니다. 장애가 있는 부모들의 삶과 육아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우리 사회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 기자 말

여섯 살 남자아이의 엄마인 정다정(가명·38) 씨는 지난해 늦가을 시력을 완전히 잃고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9년째 특수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는 정 씨. 남편 역시 특수학교 교사다. 정 씨는 비장애인인 남편과 서른둘에 결혼해 서른셋에 출산했다.

정 씨는 20대 초반 대학생 때 야맹증이 심해 병원에 갔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큰 병원에 가라며 10년 안에 실명할 것이란 말을 들었다. 정 씨는 놀라기도 하고 방황도 했지만 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좋아하면서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했다. 그래서 특수교육과로 다시 대학에 진학했고, 거기서 시각장애에 대해 배우면서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됐다.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시의 한 카페에서 정 씨를 만나 결혼과 임신, 출산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다정(가명) 씨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가 없다. ⓒ우야지
정다정(가명) 씨는 앞이 보이지 않으니 아이에게 책을 읽어줄 수가 없다. ⓒ우야지

◇ 지난해 시력 완전 상실… 여섯 살 아이 얼굴도 볼 수 없게 됐다

정 씨는 다행히 친정 부모님과 언니네와 한동네에 살고 있어 가족들이 아이를 유치원에 맡기고 데려오는 것을 돕는다. 장애인 콜택시로 출퇴근을 하는 정 씨는 장애인 콜택시가 많지 않아 배차가 쉽지 않다고 했다. 정 씨는 활동보조인 서비스를 150시간 정도, 근로서비스로 도움을 받고 있다. 

“결혼하면 자녀 양육과 가사가 여성에게 많이 요구되는데 저희 집은 제가 못하죠. 아이 아빠는 비장애인이다 보니 안 하던 가사를 하느라 더 힘든 것 같아요. 저는 활동보조 서비스를 근로서비스로 도움받고 있어서 가사는 도움을 받지 못해요. (저는 안 보이니까) 집 안이 어질러져 있어도 알 수 없고 아이가 무엇인가 흘리거나 엎질렀을 때 못 보니까 빨리빨리 치울 수 없다는 게 마음 아파요.”

비장애인인 남편은 처음에 '안 보인다'는 개념을 이해하기 어려워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왜 불편한지 잘 모르니까. 아예 안 보이는 게 어떤 건지 몰라 눈을 찡그리고 보기도 했다고. 정 씨의 남편은 아내를 데리고 외출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외출하려면 아이와 아내, 둘을 챙겨야 한다.

정 씨는 남편을 위해 도와줄 수 있는 게 뭘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자신을 더 많이 알려주는 쪽을 택했고, 등산을 가면 아이와 남편이 정상까지 다녀오게 하고 아래서 기다리는 정도의 배려를 하고 있다.

정 씨는 6개월 전부터 본격적으로 점자를 배워 사용하는데, 아이 교육 문제에 걱정이 많다. 정 씨의 경우 시력이 있다가 상실한 것이어서 글자를 알고 있기 때문에 글자를 써서 아이한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가 책을 읽어달라고 할 때가 문제다.

“저는 점자책이 아니고는 읽어줄 수가 없으니까요. 앞으로 숙제도 봐줘야 하고 책도 읽어줘야 하는데 할 수 없으니, 대학생 자원봉사같이 아이들 숙제도 봐주고 책도 읽어주는 게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정 씨가 일하는 학교는 특수학교다 보니 교사 이상의 마인드로 돌봄을 제공하고 있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상당히 피곤해 쉬고 싶을 때가 있는데 아이도 돌봐야 한다.

“아이도 온종일 엄마를 기다렸을 텐데…. 아이를 위해 엄마니까 당연히 하긴 해야 하는데 제가 해주고 싶은 만큼 해줄 수 없는 게 안타까워요(눈물). 아이 얘길 하니까…. 죄송해요.”

정 씨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이 제일 크다. 출산했을 때는 아이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지난해부터 아이 얼굴을 볼 수 없게 됐다. '이 시기만 지나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갈수록 엄마 역할이 더 커지는 것 같다. 취학 전부터 엄마들끼리도 어울려야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어딘가 많이 다녀야 하고, 엄마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데 그런 점이 안타깝다. 정 씨는 그렇게 말하며 또 한 번 눈물을 보였다.

시각장애를 가진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데 가장 어려운 것은 약 먹이는 것. 체온도 재고 처방전에 따라 약도 먹여야 하는데 눈금이 보이지 않는다. ⓒ우야지
시각장애를 가진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데 가장 어려운 것은 약 먹이는 것. 체온도 재고 처방전에 따라 약도 먹여야 하는데 눈금이 보이지 않는다. ⓒ우야지

◇ “아이 아프면 약 먹이고 체온 재고… 안 보이니까 너무 어려워요”

“아이를 보기 위해선 젖병 눈금을 봐야 해요. 제일 어려운 게 약 먹이는 거예요. 약은 처방한 양에 맞춰 5밀리미터만 먹여야 하는데 이런 눈금은 안 보여요. 아기가 어릴 땐 열감기가 많이 걸리는데 제가 체온을 못 재니까. 부모님께 밤늦게 전화해서 아이 체온 재러 와달라고 한 적도 있어요.”

정 씨는 소리 나는 체온계가 있다면 시각장애 엄마들이 아이 체온을 쉽게 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또 "5밀리미터, 10밀리미터짜리 약병이 있으면 약 먹이는 데도 문제가 없을 텐데"라며, 그런 도구가 개발되길 바랐다.

정 씨는 아이가 17~18개월쯤 됐을 때부터 아파트 관리동 어린이집에 보냈다. 육아휴직 기간에는 아이를 직접 육아했고, 너무 기다렸던 아이라 그때는 힘들다는 생각 없이 너무 행복했다. 다만 밖에 많이 데리고 나가고 싶은데 주로 집에서 놀아야 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여섯 살이 된 지금 아이는 병설유치원에 다닌다.

“유치원에 갈 일은 거의 없는데, 입학설명회나 참여수업, 공개수업에 안 가게 되더라고요. 아이 아빠가 가고, 저는 공개된 장소는 잘 안 가는 편이에요. 가고 싶은데… 편견을 가지게 될까봐. 안 가게 되더라고요(눈물).”

정 씨는 아이를 병설유치원 보내기 전 1년 동안 사립유치원에 보낸 적이 있다. 부모 참여수업이 많았는데, 그때도 잘 보이지 않았지만 참여수업에 남편과 같이 갔다. 아이랑 아빠가 요리를 하면 옆에 앉아 있었다. 정 씨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신경이 쓰였다.

엄마들이 끼리끼리 무리를 짓고 친한 엄마들의 아이들끼리 또 관계를 맺고 친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힘들었다. 모임에 나갈 수도 없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게 됐다. 이후부터는 유치원에 가지 않는다.

중도에 장애를 갖게 된 정 씨에게 장애인 복지 인프라에 대해 물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복지관이나 교육시설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중도에 시력을 잃게 되면 재활이 안 되면 생활이 안 되죠. 눈을 감고 다니는 것과 똑같아서 시각장애를 갖게 되면 한 5~6년씩은 집에서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재활시설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 씨는 하루 동안 앞이 보이면 달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와 달리기 시합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야지
정 씨는 하루 동안 앞이 보이면 달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와 달리기 시합을 하고 싶다고 했다. ⓒ우야지

◇ "장애인 가족들에게 심리상담 기회가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정 씨는 아이가 아파 병원에 데려가야 할 때, 장애가 있는 엄마가 혼자 데려갈 수가 없으니 이를테면 경찰서 같은 곳에서 좀 도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장애인 콜택시도 장애등급 1, 2급만 이용 가능해서, 3급일 때 혼자 다니기도 어려운데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가 다칠 뻔한 적도 있다는 것이다. 장애등급 1, 2급이 아닌 장애인들은 서비스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 씨는 중도장애를 겪으면서, 안 보인다는 게 육아를 하는 데 어떤 어려움이 주는지 하나씩 새롭게 경험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직 아이가 어리지만 사춘기가 되면 우리 가족이 다른 가족과 다르다는 점 때문에 아이가 위축될 수 있을 것 같아 걱정하고 있다.

“엄마의 장애에 대해 다른 친구들이 쉽게 말할 때 상처받을 수 있어요. 장애 가족이 있는 아이들은 심리적으로 힘든 아이들이 많아요. 형제나 부모나 장애 자녀를 가진 가족들에게도 심리상담 기회가 많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들은 정 씨의 아이를 모두 기다렸고, 낳고도 좋아했다. 하지만 정 씨는 출산 전에, 아이도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했다.

“아기를 빨리 갖고 싶었어요. 결혼이 늦었고 아기를 예뻐해서, 빨리 아기를 가지고 싶어서 결혼한 지 1년도 안 돼서 병원도 다녀보고 그랬어요(웃음). 임신하고 초음파 사진 볼 때 정말 신기했어요. 자궁에 점 하나 찍혀 있는데 정말 신기하고 좋아서 출산 전 일기도 쓰고 아기한테 편지도 쓰고…. 임신 중독으로 아이를 한 달 빨리 낳았어요. 아이가 너무 작아서 '이렇게 작은 아이가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감격스러웠어요.”

정 씨는 아이를 낳아 키우는 지금 정말 행복한 순간들이 많다고 했다.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면서 신기하고 감격스러운 순간이 많아요. ‘우리 아이가 이런 말도 할 수 있구나’, ‘잘 크고 있네’ 하고요. 저희 아이가 ‘엄마가 있어서 행복해요’라면서 정말 예쁜 말을 많이 해요. 할머니 집에서 밥을 많이 먹으니까, ‘할머니는 정말 멋진 요리사예요, 할머니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이런 말을 전해 들으면 정말 행복해요(눈물).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정 씨는 "저희 부모님도 저를 장애를 가지도록 낳고 싶지 않으셨을 텐데 지금도 너무 마음 아파하세요"라며 또 눈물을 보였다. 하지만 정 씨는 "살다 보면 꼭 눈이 나빠지지 않더라도 누구에게나 장애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제가 해줄 수 있는 역할은 세상이 따뜻하다는 걸 엄마인 제가 아이에게 알려주는 일인 것 같아요"라면서 다시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지막으로 정 씨에게 하루 동안 앞을 볼 수 있다면 아이와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하루 동안 보이면… 글쎄요, 아이가 달리기를 좋아하거든요. 같이 달리기 시합을 하고 싶어요(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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