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설에서 탈출한 '바퀴 달린 엄마'의 삶과 육아
시설에서 탈출한 '바퀴 달린 엄마'의 삶과 육아
  • 김고은 기자
  • 승인 2017.09.20 11: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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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주년 특별기획] 바퀴 달린 엄마-②신지은·오명진 씨 부부

【베이비뉴스 김고은 기자】


정신 없이 뛰어 다니다가 잠시 바깥 풍경에 시선을 뺏긴 21개월 남자 아이의 뒷모습.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정신 없이 뛰어 다니다가 잠시 바깥 풍경에 시선을 뺏긴 21개월 남자 아이의 뒷모습.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안 돼! 하지마!”


엄마가 사방으로 뛰어 다니는 아들을 향해 소리친다. 아들은 슬쩍 눈치를 보는 척 하다가 다시 저 멀리 달아난다. 엄마의 “안 돼!” 소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계속된다. 21개월 된 세 살 아들의 무시무시한 활동량이 엄마를 자꾸 소리지르게 만든다. 왜 저렇게 뛰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 걸까. 왜 저렇게 온갖 물건을 헤집어 놔야만 직성이 풀리는 걸까. 탄식해 봐야 소용없다. 얌전한 아이였으면 하는 엄마의 바람과 달리 아들은 하루의 활동량을 꽉 채워야만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잠에 드니까. 그게 세 살 어린이의 타고난 숙명이니까.


이 또래 아이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으레 겪는 일이라지만 도무지 엄마는 어쩔 줄을 모르겠다. 뛰어다니다가 넘어지는 아기를 재빨리 쫓아가서 잡아주고 싶은데, 물건을 헤집을 때마다 위험한 일이 생기지 않게 타이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어서다. 엄마가 할 수 있는 건 아이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 것, 그리고 목소리로 경고를 주는 일뿐이다.


엄마는 팔다리와 언어를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중증장애인이다.

 

세 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 신지은(36)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세 살 아들을 키우는 엄마 신지은(36)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시설에서 탈출해 자립생활...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아이


엄마 신지은(36) 씨는 언어장애를 동반한 뇌병변장애를 갖고 태어나 서른 살 가까이 장애인생활시설(이하 시설)에서 살았다. 시설에서는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가야만 했다. TV를 보며 그게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한 뿐이었다. 자유와 권리는 남의 나라 이야기나 다름 없었다. 마음대로 외출할 수도, 물건을 살 수도 없는 통제에 갇힌 삶. 뭔가 하고 싶어도, 하고 싶지 않아도 본인 뜻대로 선택할 수 없는 삶이었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었다.


지인의 제안으로 '자립생활'(Independant Living)에 나선 건 2010년의 일이다. 두려웠지만 용기를 내 세상 밖으로 나온 지은 씨는 그제서야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자립생활이 조금 익숙해 질 때쯤 지금의 남편인 오명진(41) 씨를 만났다. 결혼을 결심했고, 두 사람은 부부가 됐다. 여느 신혼부부처럼, 신혼은 달콤했다.


“설마 했어요. 임신이 될 줄은 몰랐어요.”


아이는 결혼 1년 만에 찾아왔다. 지은 씨는 마음껏 기뻐하지 못했다. 걱정이 앞섰다. 남편이라도 장애인이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막막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남편은 청각장애를 동반한 뇌병변장애 1급의 중증장애인. 이런 두 사람이 산부인과를 찾아 들은 말은 “축하한다”는 말이 아닌 “왜 피임 안 했느냐”는 꾸중이었다.


지은 씨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잘못하면 본인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지만 “그래도 낳아 보자”는 의사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뇌성마비는 유전되는 질환이 아니라는 의사의 말도 큰 힘이 됐다.


우여곡절 끝에 태어난 아기는 다행히 쑥쑥 자라 또래와 같은 성장발달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칠삭둥이로 세상에 나와 희귀난치성 호흡기 질환을 앓았지만 현재는 완쾌된 상태. 다만 아이가 아직 아무 말을 못 하는 것이 지은 씨는 못내 걱정이다. 어서 “엄마”라고 불러 주기를 손꼽아 기다릴 뿐이다.


아이는 집안 세간에 무척 관심이 많다. 눈에 보이는 건 다 만지고 던져 봐야 직성이 풀린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아이는 집안 세간에 무척 관심이 많다. 눈에 보이는 건 다 만지고 던져 봐야 직성이 풀린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기초생활수급비를 쪼개고 쪼개야 하는 육아


제 또래 아이들과 함께 놀면 말을 떼는 데 도움이 될까 싶지만 안타깝게도 아이에게는 친구가 없다. 어린이집은 보낼 돈이 없고, 동네에 또래가 살기는 하지만 집밖으로 자주 나가지 않아 사귈 틈이 없기 때문이다.


“밤에 아이 봐주는 아이돌보미한테 한 달에 50만 원 정도 줘요.”


지은 씨 부부에게는 각각의 활동보조인이 매일 집에 방문해 모든 수족을 거든다. 활동보조인이 오전 8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을 하면, 오후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는 아이돌보미가 아이를 돌본다. 아직 통잠을 안 자는 아이가 자다가 깨서 움직이면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전혀 보살필 수 없기 때문에 아이돌보미가 반드시 필요한 상황. 정부 지원이 있긴 하지만 야간이라서 기본 비용이 높고, 그에 따른 본인부담금도 높아져 넉넉하지 않은 기초생활수급비를 쪼개고 쪼개 아이돌보미를 쓴다.


아이가 통잠을 자서 아이돌보미를 부르지 않게 되는 것, 그래서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고 조금이나마 저축을 하는 것이 단기적인 소망이라면, 지금보다 조금 넓은 집, 안정적인 집으로 이사하는 것이 장기적인 소망이다. 방 하나에 거실 하나인 지금의 10평 대 집은 주인이 돈을 자꾸 올리려 해 언제까지 살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 장애인 임대주택을 신청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지금 신청할 수 있는 집은 너무 거리가 멀어 엄두가 나지 않고, 이사를 가면 지금 받고 있는 생활 지원을 똑같이 받을 수 없어 신청을 못하고 있다.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는 5세 미만 아동 가정에 지급하는 양육수당도 지은 씨 부부는 받지 못한다. 이미 기초생활수급자 자격으로 정부 지원을 받고 있어 중복 지원을 못 받는 것이다. 내년 7월부터 정부가 지급 예정인 아동수당 10만 원도 똑같은 이유로 받지 못할 것 같아 체념한 상태다. 보건복지부 측은 지은 씨 부부와 같은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추가 복지 지원이 어려운 점에 대해 “어쩔 수 없다”고 말을 아끼는 상황이다.


보통의 엄마라면 정부 정책과 제도에, 육아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지만 지은 씨는 그럴 수 없어서 답답한 마음이 크다. 같은 또래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있거나 부모가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다행히 지은 씨를 돌보는 활동보조인 두 명 모두 아이를 키워 봐서 육아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들이 힘들어서 그만둘까 봐 불안한 마음을 지은 씨는 어쩔 수 없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 지 모르겠어요. 막막해요. 아이가 커서 학교 가고 사회 나가면 저는 어떡해야 할까요. 그때그때 아이를 어떻게 대하면 좋은지 교육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어요.”


오랜만에 나들이에 나선 지은 씨 가족.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오랜만에 나들이에 나선 지은 씨 가족.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 기댈 곳 마땅치 않은 육아…엄마의 바람은?


세 가족이 오랜 만에 나들이에 나선 지난 9월초. 햇빛을 받아 푸른색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보자 신이 나 웃는 아이의 모습에 엄마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신혼여행도 여기로 왔어요. 우리 가족의 좋은 추억이 을왕리에 많아요.”


지은 씨 부부는 1년에 한 번씩 인천 을왕리 해수욕장을 찾는다. 가족끼리라면 어려운 일이지만 자립생활을 실천하는 장애인들이 모여 활동하는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민들레센터)의 사람들과 함께 모이는 덕분에 지은 씨 부부도, 아이도 흔치 않은 기회를 누린다.


“민들레센터 내 민들레장애인야학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어요. 남편은 장애인 해방 운동에도 많이 참여하고요. 센터 사람들과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요.”


지은 씨에게 민들레센터는 각별한 곳이다. 지금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미래를 꿈꾸는 것이 민들레센터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었을 지도 모를 만큼 지은 씨 삶에 깊숙이 파고든 제2의 가족이나 마찬가지다.


지은 씨가 아이와의 미래를 생각하며 한글을 배우고 있는 요즘, 명진 씨는 한창 나가던 광화문 농성장에서의 모든 일정을 종료하고 앞으로의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지난 5년 간 광화문에서 실시한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 농성이 박능후 복지부 장관의 긍정적인 답변을 얻으며 종료돼 더 나은 삶을 위한, 또 다른 장애인 해방 운동에 참여하려는 것이다.


“부양의무제 폐지가 안 되면 우리는 아이에게 짐이 될 거예요. 우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 때문에 혼란스럽게 하기 싫어요. 아이는 부모가 장애인인 걸 받아들이는 것만으로도 힘들 거예요. 그게 너무 걱정이에요.”


30초면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데 5분이 훨씬 넘게 걸리는 엄마에게는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산처럼 쌓여 있다. 더듬더듬 어눌하게 말하더라도, 완벽한 문장으로 말하지 못하더라도 엄마는 전하고 싶다. 고마운 마음과 미안한 마음, 아들이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 하지만 못내 걱정되는 마음, 다른 부모처럼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


여러 마음이 뒤섞인 눈빛으로 엄마는 아이의 움직임을 끊임없이 뒤쫓는다. 아이가 또 넘어진다. 울음이 짧은 아이는 언제 넘어졌다는 듯 일어나 다시 세간을 헤집는다. 엄마가 소리친다.


“안 돼! 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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