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전용주차장은 '역차별'이라는 당신에게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 아침밥 챙겨줄 생각에 주섬주섬 짐을 챙겨 수련회 장소를 나섰다. 사람들과 아침식사를 함께 먹을 여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침 일찍 나가야 한다는 남편에게 일찍 집에 들어가겠노라고 약속한 터였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채 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런데 어느덧 내 옆에 흔들흔들,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저씨가 와서 섰다
눈을 뜨자마자 아이들 아침밥 챙겨줄 생각에 주섬주섬 짐을 챙겨 수련회 장소를 나섰다. 사람들과 아침식사를 함께 먹을 여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아침 일찍 나가야 한다는 남편에게 일찍 집에 들어가겠노라고 약속한 터였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채 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그런데 어느덧 내 옆에 흔들흔들,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저씨가 와서 섰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3~4학년쯤 되었을 땐가,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적어오라는 숙제가 있었다. 숙제에 대해 별로 관여하지 않는 나지만 궁금해서 슬쩍 엿보니, 웬걸, 아이의 꿈은 ‘자취생’. 너무 웃기고도 신기했는데, 사실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이 엄마도 한창 사춘기일 때 집이 너무 싫었는데, 미처 ‘자취생’을 꿈꾸지는 못했지. 몰래 봤다는 사실만 아니면 정
최근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에 따른 부작용, 노출시간을 줄이기 위한 방법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그에 따른 연구결과와 뉴스도 봇물을 이루고 있다. 그 내용을 보면 ▲초등학생이 주로 사용하는 전자기기 순서나 ▲하루 스마트폰 사용시간 ▲스마트폰 사용에 따른 부작용 등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른들이 ‘편리’를
3주 만에 집에 도착했다. 편하다. 남편은 우리가 없는 동안 집에서 밥을 한 끼도 안 해먹었는지, 집 떠나기 전 음식들이 냉장고에 그대로였다. 싱크대엔 즉석밥과 즉석라면이 한 가득 쌓여 있었다. 참치캔을 따서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라오스 음식도 우린 맛있게 잘 먹었지만, 현지에서 돼지고기와 배추, 마늘, 양파를 사서 김치찌개 비슷하게 잘 해먹기도 했지만
시험이다, 학원이다, 바빴을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얼떨결에 시작된 라오스 여행, 욕심을 부려 큰아이 방학 시작하자마자 둘째 아이까지 데리고 떠난 여행은 책과 블로그, 온갖 여행 프로그램에서 봐온 그것과는 퍽이나 다른 ‘좌충우돌 현실 여행’이 됐다. 지금 나는 라오스의 북부, 루앙프라방의 남칸 강변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런데 도시 전체
부모들이 흔히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학원에 보낸다”고 말하곤 하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 방과후 수업이 없는 날은 주로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큰 아이는 중학생이 되어 이제는 돈쓰고 돌아다니는 곳을 좋아하게 됐지만, 초등학생인 작은 아이는 언니의 전철을 밟아 학교에서 돌아오면 신발도 벗지 않고 가방을 휙
지금은 아이들이 자라서 덜하지만, 둘 다 학교에 들어가기 이전 우리 부부에게도 육아는 전쟁이었다. 결혼한 지 3개월, 3년이 고비라고, 그 고비만 넘기면 괜찮아진다고 누가 그런 새빨간 거짓말을 씨불였나.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15년이 된 지금도 싸운다. 그것도 치열하게. 매일 매일이 고비고 매일 매일이 위기다. 좀 다른 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좀 어릴 때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나의 시아버지는 열렬한 남아선호사상 신봉자셨다. 그리고 남편은 딸이 네 명인 집안의 외아들이었다. 그래서 귀하게 자랐냐고? 그건 아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아들’이라는 존재는 ‘무료로 부릴 수 있는 노동력’이었던가보다. 사람을 쓰기엔 형편이 여의치 않고, 농사일은 늘 많아 딸보다는 힘을 좀 쓰고, 일도 좀 더 잘 하는 ‘노동력으로서 아들
“엄마가 뭐라고 했지? 불의를 보면!” “참아야 한다!” 작은 아이의 대답에 나오는 순간 나와 큰 아이는 함께 까르르 웃었다. 작은 아이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엄마가 늘 전전긍긍이었으니까, 아이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안산 주민이다. 안산에서도 우리 동네는 ‘엄마의 마음으로’라는 타이틀을 걸고 세월호 아이들을 ‘집 안 강아지’에
정신없이 바쁜 엄마, 아빠의 아이들로 태어나 그래도 크게 보육에 대한 걱정 없이 자라준 건 오롯이 지역에 있는 어린이집 덕이었다. 두 아이 모두 근로복지공단에서 운영하는 어린이집을 만 1세부터 초등학교에 들어갈때까지 꽉꽉 채워 다녔다. 두 아이 모두 ‘장기근속(?)’자에게만 주어진다는 감사장을 받았고, 그 덕에 나는 둘째 아이가 어린이집을 졸업할 때 학부모
2014년 성남시가 주최한 어린이 통일포스터 대회에서 화제가 됐던 그림이 있었다. “포스터 그리기 지겹다. 통일해라!” 사실 통일이 된다면 그 사회를 살아나갈 주역들은 전쟁과 이산의 아픔이 있는 우리 부모 세대도 아니고, 통일운동을 해온 우리들 세대도 아닌 바로 이 아이들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언제 통일교육을 제대로 받아나 봤을까? 기껏해야 포스
"우와~ 잘 걷는구나~" 사실 18km쯤에서 조금 지친 상태인 둘째아이는 길 초입에서 만난 아저씨를 다시 만나 칭찬을 받고는 금세 쌩쌩해졌다. 첫날 19km를 걸은 아이는 다음날 8km를 더 걷고서야 엄마와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 혼자였다면 엄두도 못낼 거리를 아이가 다리 아프다며 징징거리면 핑계 김에 올레길 사이사이 예쁜 카페에서 같
어릴 적 세 들어 살던 주인집의 둘째딸과 함께 과외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험을 보면 그 친구와 늘 점수 차이가 크게 났다. 안 그래도 셋방살이에 주눅 들었던 나는 공부실력도 크게 차이가 나니 더더욱 주눅 들어 살았더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아빠 없이(아빠는 외화벌이 노동자셨다) 홀로 우리 남매를 키우던 우리 엄마 기 살려드리게
“엄마, 우리 선생님이 뭐라고 했게?” 새로운 반 배정받고 둘째 날, 둘째 따님 또 뜬금포 질문이다. “몰라!” “엄마가 엄청 좋아할만한 얘긴데.” 나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왜, 공부 못해도 된대?” “아니, 땡!” “그럼, 학원 다니지 말래?” “응! 비슷해!” 둘째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는 이랬다. 첫날 아이들에게 “학원을 다니지 않고도 공부를 잘 할 수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처음 2~3년간은 그랬다. 반장, 부반장, 회장, 부회장. 학교에서 각 학급 임원을 뽑고 나면 꼭 전화가 왔다. “반장 누구누구 엄만대요, 임원 엄마들이 모여서 선생님께 인사를 가기로 했어요. 참석해 주실거죠?” “엄마들이 모여서 청소를 하러 가기로 했는데, 같이 갈 수 있으세요?”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가는데 참가 가능하신
작은아이가 겨울방학이 끝나고 학교 화장실에 대단한 것이 생겼다며 맞춰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스무고개처럼 문제를 내던 아이가 알려준 사실은 학교 여자 화장실에 ‘위생용품수거함’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건조대에 널려있는 언니의 면생리대를 만지작거리며, 작은 아이가 물었다. “엄마, 생리하면 아파?” “엄마랑 언니는 생리통이 없어서 너도 없을 가능성이 큰데, 아
두 돌이 막 지난 둘째는 황량한 공장 문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었다. “그래, 마음이 흔들리면 안 돼! 아이는 뭐, 나 혼자 낳았나?”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차에 타곤 시동을 걸었다. 신종플루가 대한민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2009년. 그렇게 내 아이만은 피해가시라 기도했건만 둘째는 덜컥 신종플루 확진 판정을
엄미야의 '일하는 엄마의 눈으로' “언니, 언니 때문에 사람들이 힘들어해요. 그냥 좀 지내면 안 되겠어요?” 내 나이 서른이었을 때, 다니던 직장에서 첫 아이를 임신하고 산전산후휴가를 거쳐 출산 후 1년간 육아휴직을 했다.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었고 여성이 절반에 육박하는 곳이었지만, 미혼 비중이 높아 육아휴직이 사람들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들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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