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아들 대신 괴물과 싸워줄 수 없어
아빠는 아들 대신 괴물과 싸워줄 수 없어
  • 칼럼니스트 최가을
  • 승인 2021.11.1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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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엄마의 방구석 심야 영화관] '뷰티풀 보이'(2018)

아기들이 요즘 유행이라는 파라 바이러스에 걸린 지 열흘째다. 온몸에 뜨끈뜨끈하게 열이 나고, 가슴을 울려가면서 컹컹거리는 기침을 하고, 콧물을 줄줄 흘린다. 30개월이 넘을 때까지 크게 아픈 적이 없는 아기들이라서, 이렇게 본격적인 간호도 처음이다. 아픈 아이 간호가 이렇게 힘든 거구나, 느끼며 아기들이 잠든 한밤중에 ‘뷰티풀 보이’를 봤다. 아아, 영화에도 아픈 자식을 돌봐야 하는 부모가 나왔다. 감기 환자 간호는 명함도 못 내민다. 아버지 데이비드는 아들 닉의 재활을 도와야 한다. 닉이 10대에 약물 중독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냥 일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수준이 아니다. 닉은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 만큼 심각한 중독자다.

"내 아름다운 소년을 본 적 있나요?" ⓒ(주)이수C&E
"내 아름다운 소년을 본 적 있나요?" ⓒ(주)이수C&E

데이비드는 닉을 중독의 수렁에서 건져내기 위해 모든 수를 다 쓴다. 거금이 드는 재활원에 닉을 장기 입원시키기도 하고, 집에 있고 싶다는 닉을 집에서 보호하기도 한다. 대학에서 새출발을 하고 싶다기에 대학 기숙사로 독립도 시켜본다. 온갖 마약 종류에 대해 자료 조사를 하고, 전문가의 도움을 청하고, 마약 판매상들이 있는 거리로 나가 중독자를 만나본다. 약을 하면 도대체 어떤 기분인지 느껴 보려고 남몰래 마약을 직접 해보기도 한다. 함께 이겨내보자고 달래고, 어르고, 매달린다.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마약상들이 다니는 거리로 나선 아버지 데이비드. ⓒ(주)이수C&E
아들을 이해하기 위해 마약상들이 다니는 거리로 나선 아버지 데이비드. ⓒ(주)이수C&E

그러나 쉽사리 빠져나올 수 있다면 그게 중독이겠는가. 닉은 처음에는 집에서 실종된다. 아버지가 겨우 집어넣은 재활원을 탈출하고, 실종 후 응급실에서 발견된다. 그나마 응급실에서도 링거를 뽑고 사라진다. 닉은 단약 성공과 재중독의 과정을 끊임없이 반복하면서 결국 거처도 없이 길거리를 떠도는 중독자 신세가 된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이들 부자(父子)의 고통을 바라보는 게 유난히 고통스러웠다. 나에게 나의 쌍둥이들이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자식이듯이, 데이비드에게도 닉이 너무나 귀한 자식이었기 때문이다. 자식에 대한 사랑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보편적인 것이라서, 감정이입이 너무 잘 돼서 더 힘겨웠다.

데이비드 인생의 빛이었던 닉은 약에 취해서 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하는 아들이 되어버린다. ⓒ(주)이수C&E
데이비드 인생의 빛이었던 닉은 약에 취해서 아버지에게 돈을 요구하는 아들이 되어버린다. ⓒ(주)이수C&E

데이비드는 이혼하고 닉을 혼자 키웠다. 어린 아들에게 “세상 모든 것보다 너를 사랑해.”라고 말하다가 아들과 서로에게 암호처럼 “모든 것everything”이라고 줄여 말한다.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서핑을 했다. 닉은 기자인 아버지를 닮아 글을 잘 쓰는 아름다운 소년, ‘뷰티풀 보이’였다.

닉은 데이비드와 재혼한 캐런에게도 소중한 존재였다. 닉은 여자 친구와 약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돈이 떨어지자 몰래 집에 잠입한다. 그러다가 외출하고 돌아오는 가족들을 보고 황급히 도망치는데, 캐런이 미친 듯이 운전을 해 닉의 자동차를 쫓는 장면은 가슴이 미어진다. 생모 비키도 자신이 사는 도시로 닉을 데려와 재활을 돕고, 중독자를 위한 후견인을 섭외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

어머니 비키와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닉. ⓒ(주)이수C&E
어머니 비키와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닉. ⓒ(주)이수C&E

이 영화가 양육자인 나에게 공포물로 다가온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다. 주변의 성인들이 모두, 온 마음을 다해 사랑으로 키워도 아이는 나쁜 길로 빠질 수 있다. 미국의 50대 이하 사망 원인 1위가 약물 과용이라고 한다. 가정에서 자녀를 공들여 키워도, 사회에 위험 요인이 널려 있다면 그 지뢰를 밟는 걸 막기 쉽지 않다.

데이비드가 재혼하여 얻은 아이들도, 오빠이자 형인 닉을 너무나 사랑한다. ⓒ(주)이수C&E
데이비드가 재혼하여 얻은 아이들도, 오빠이자 형인 닉을 너무나 사랑한다. ⓒ(주)이수C&E

‘뷰티풀 보이’가 공포물이었던 두 번째 이유는 데이비드가 닉에게 쓴 최후의 방법 때문이다. 여자 친구가 심정지되는 모습을 보고, 덜컥 겁이 난 닉은 데이비드에게 전화한다. “아빠, 나는 집에 있어야 돼. 가족이 있어야 힘이 생겨. 재활원은 싫어. 나 좀 도와줘.” 데이비드는 대답한다. “나도 돕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후견인한테 전화해서 도움을 받아. 정상적인 삶을 살길 빈다.” 데이비드는 전화를 끊고 오열한다. 닉의 생모 비키가 이러다가 아들이 죽게 생겼다고 호소하자 데이비드는 우리가 뭘 해도 아이에겐 영향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감기 걸려서 축 처져 있어도 마음이 아픈데, 마약 때문에 야위어 걷지도 못하는 아들을 보는 심정은 상상도 하기 싫다. ⓒ(주)이수C&E
닉이 스스로를 구원할 때까지 데이비드는 옆을 지킨다. ⓒ(주)이수C&E

데이비드의 말은 냉정해보이지만, 틀리지 않다. 중독에서 나오는 열쇠는 아이가 쥐고 있다. 부모가 대신 해줄 수 없다. 아이는 목숨이 걸린 고군분투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니. 그 수렁에서 나오라고, 가족들이 모두 들러붙어서 밧줄을 던져도, 그 밧줄을 아이가 잡지 않는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아이 인생의 주인은 아이라는 사실이 이렇게나 무력하게 다가온 적이 없었다.

이 영화에 삽입된 존 레논의 ‘뷰티풀 보이’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눈을 감아/겁내지 말고/괴물은 갔어/도망 갔어/아빠가 옆에 있어/아름다운 소년아.” 아버지가 아이 상상 속의 괴물을 물리쳐줄 수 있는 기간은 아기 때뿐이다. 소년으로 자란 아이는 자신을 사로잡은 괴물과 스스로 싸워야 한다.

동생들과 함께 노는 닉. 행복이란 이렇게 사소한 빛이거늘.. ⓒ(주)이수C&E
동생들과 함께 노는 닉. 행복이란 이렇게 사소한 빛이거늘.. ⓒ(주)이수C&E

다행히도 이 실화의 주인공은 끝내 밧줄을 잡아 괴물과 싸워 이겼다. “헌신적인 응원과 노력으로 닉은 8년째 약을 끊은 상태다.”라는 자막이 영화의 마지막에 흐른다. 세상에, 이렇게나 반갑고 고마운 자막이라니. 엄마 노릇은 하면 할수록 겁이 늘어 가슴은 쪼그라들고, 머릿속은 안개로 뿌얘지는 일인 것 같다.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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