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에서 아들을 잃었어요... 그리고, 10년 뒤에 그 이유를 알게 됐죠"
"눈 앞에서 아들을 잃었어요... 그리고, 10년 뒤에 그 이유를 알게 됐죠"
  • 김정아 기자
  • 승인 2022.02.01 07: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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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목소리를 청와대로, '대선 마이크'] ④'가습기살균제 아이피해자 모임' 전성희 씨

【베이비뉴스 김정아 기자】

20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이 낳고 기르기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대통령이 꼭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베이비뉴스는 대선을 앞두고 육아와 생계를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는 아빠·엄마들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아이를 기르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기자 말

두 돌 된 첫째 아들을 잃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전성희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두 돌 된 첫째 아들을 잃은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전성희 씨.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지금까지 하루도 아이를 잊어본 적 없어요. 생각을 안 하려 해도 불쑥불쑥 생각이 나요. 아이가 살아있었으면 지금쯤 대학교 간다고 수능 시험도 보고 그랬을 텐데. 제가 알레르기성 천식이 있어서 숨 쉬기 힘들 때마다 아이 생각이 나요. 어린애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전성희(46‧회사원)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이다. 2003년, 첫째 아들 지한 군이 태어나던 해부터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에는 건조한 날 수건을 방 안에 널어두는 것이 전부였지만, 첫 아이에게 모든 걸 다 해주고 싶었던 전성희 씨는 아들을 위해 가습기도 사고 물 속 세균을 없애준다는 가습기살균제도 구매했다. 

"첫 아이가 태어난 2003년 5월 이후, 여름을 제외하곤 아이가 자는 방, 아이 옆에 늘 가습기를 틀어놨어요. 가습기살균제는 옥시 제품을 썼었는데 정량보다 더 많이 넣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추가로 더 넣어 쓰기도 했죠. 직접 코를 갖다 대고 냄새도 맡아보고 그랬어요. 당시엔 정부에서 허가한 제품이고 TV광고에도 많이 나왔기 때문에 전혀 의심하지 못했죠."

아들을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구매한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아이가 목숨을 잃을 것이라곤 꿈에도 몰랐던 전성희 씨.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잘 먹지도, 잘 놀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고, 걱정이 돼 동네 소아청소년과 의원에 데려갔지만, 의원에선 감기약만 처방해줬다. 아무래도 감기가 아닌 것 같아 '주말이 지나면 대학병원에 데려가야지' 했던 주말 새벽, 지한이는 심정지가 됐다. 호흡 곤란이 온 아이가 잠에서 깨 엄마를 불렀고,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의식을 잃었다. 

“119에 신고해서 병원에 갔어요. 심폐소생술로 심장은 다시 뛰게 했지만 이미 뇌사 상태였어요. 중환자실 간호사가 ‘아이한테 검은 가래가 많이 나온다’고 했지만 그 당시에 폐나 호흡기 관련으로는 검사를 안했었어요. 사인은 심정지와 뇌사였어요.”

◇ 첫째 아들 사망 후에도 사인 몰라 가습기살균제 계속 사용 

두 돌 때까지 기저질환 없이 건강했던 지한 군은 호흡곤란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전성희
두 돌 때까지 기저질환 없이 건강했던 지한 군은 호흡곤란으로 갑자기 사망했다. ⓒ전성희

비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 사망 후에도 원인을 몰랐던 전성희 씨는 계속해서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지한이가 사망한 후 몸도 마음도 힘들었던 전 씨 가족은 부모님이 계신 필리핀으로 이주를 했고, 1년 후 직장 문제로 전 씨만 한국에 돌아왔다. 원룸에 혼자 살면서 전 씨는 가습기살균제를 계속 사용했다. 그리고 이후 둘째 아들과 아내가 한국에 들어와 함께 살게 됐을 때도 거실에 가습기를 틀었는데, 그 때도 어김없이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했다. 

"지한이가 세상을 떠나고 1년 후, 저는 간농양 판정을 받았어요. 간농양은 간에 세균에 감염돼 정상 간세포와 간 조직을 파괴시키고 그 자리에 고름이 고이게 되면 형성이 되는데 원인은 '상세불명'이었어요. 그 후 숨이 차고 힘든 증상도 나타나 병원에서 검사했더니 부정맥, 알레르기성 천식 진단을 받았습니다. 공황장애로 약물치료도 받고 있어요.”

◇ “정부 담당자들에게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일거리’일뿐”

전성희 씨는 본인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라는 사실을 가습기살균제를 처음 사용한지 10년이 훌쩍 지나서야 알게 됐다. 둘째 아이 교육을 위해 TV를 없앤 후 뉴스 보도를 거의 접하지 못했던 전 씨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지한이가 사망한 게 가습기살균제 때문이구나' 하고 처음 깨달았다고 했다. 

"피해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가습기살균제 구매내역과 진료 기록 등을 제출해야 했어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가 스스로 피해자라고 소명해야하고 인과관계를 설명해야 해요. 정부에서 안전하다고 허가 해준 제품이라 피해자들이 사용한 건데 말이죠. 정부에도 책임이 있는데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기업 눈치도 보고요. 조용히 이렇게 덮고 가려는 건가 싶어요. 피해자들과 간담회도 하고 면담도 한다는데 정말 형식적이에요. 담당자들이 피해자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피해 조사하는 공무원들에게 이 사건은 '일거리'일 뿐이에요. 피해자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합니다."

스스로 피해자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자료들을 어렵게 모아 환경부에 제출했으나 지한이는 4단계, '피해 가능성이 거의 없는 단계' 판정을 받았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접수 초기에는 폐질환에 국한해 피해 인정을 받았고, 지한이는 뇌사와 심정지로 사망했기 때문에 4단계가 나왔던 것이다. 현재는 재심사 절차가 진행 중이다. 전 씨 또한 가습기살균제 특별법 개정 이후 피해자 구제 신청을 해둔 상태다.

◇ 가습기살균제 때문에 꿈도 포기…“엽기적인 테러”

전성희 씨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엽기적인 테러'라고 표현한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전성희 씨는 가습기살균제 사건을 '엽기적인 테러'라고 표현한다. 최대성 기자 ⓒ베이비뉴스

가습기살균제 피해로 첫째 아이를 잃은 뒤 갖게 됐다는 둘째 아들은 현재 고등학교 1학년이다. 둘째는 어떻게 양육했는지 물었다.

"둘째는 자다가 기침만 해도 제가 깨서 호들갑을 떨었어요. 조금만 이상해도 병원 데려갔고요. 아내는 아이 유아기 때는 일을 안 하고 애만 봤어요. 아무래도 첫째 아이를 그렇게 잃고 나니 트라우마가 생겨서 과잉보호를 했어요. 아이 입장에서는 많이 답답했을 거예요."

전성희 씨 가족 모두에게 큰 영향을 미친 가습기살균제 사건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아직도 피해 인정을 받지 못했고, 성희 씨의 건강은 여전히 좋지 않다. 아내도 첫째 아들을 잃은 후 심장 통증과 우울증, 불면증으로 20년 가까이 고통 받고 있다.

"지한이 사망 후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고, 가습기살균제를 사용하면서 제 몸도 다 망가져서 조종사가 꿈이었던 저는 꿈도 모두 포기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하루도 아이를 잊어본 적이 없어요. 생각을 안 하려 해도 불쑥불쑥 생각이 나요. 이게(가습기살균제 사건이) 테러가 아니고 뭡니까. 10여 년간 정부가 안전하다고 허가해준 물질에 수많은 사람들이 질병을 얻고 사망했어요. 아주 엽기적인 테러에요. 근데 정부가 이걸 제대로 해결도 안 해주고 질질 끌고 가는 게 이해가 안돼요."

대선을 앞둔 지금,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로서 대선 주자들에게 바라는 건 없는지 물었다. 

"정부에서 책임감을 가지고, 하루하루 숨 못 쉬고 사는 피해자들을 공감 의식을 가지고 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살다가 피해 인정도 못 받고 가족들만 힘들게 하다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이 늘 있거든요. 가습기살균제 사건이 수면 위에 오른 지 10년도 넘었는데 아직까지 이 엽기적인 사건이 해결이 안됐어요.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제발 이 사건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말아주세요. 적극적으로 나서서 피해자들의 아픔을 헤아려주고 지원해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Copyrightsⓒ베이비뉴스 pr@ibaby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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