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린 시절 ‘소련’이라고 배웠던 그 시절에는, 그 나라에서 정말 전쟁이 일어난다 해도 왠지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던 때였다. 당시 국가에 대한 개념이 제대로 있지 않은 어린 아이였기도 했고, 학교에서도 매번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인 우리나라의 역사부터 가르치기 바빴던 터라, 지구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는 낯선 나라에 대해서는 별로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생각보다 멀지 않은 미래에 또다시 우려했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다.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크든 작든) ‘만약 전쟁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이런저런 상상을 해본 일이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고, 특히 아이를 낳고 키우며 엄마로 사는 동안 그 불안이 혹시 현실이 될까 봐 사서 걱정을 한다는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상념에 잠긴 적도 있었다. 불행히도 그 생각은 이제 현실이 되어 지금 이 순간에도 끔찍한 뉴스들로 전달되고 있다. 이제는 지구 반대편이라 해도 멀지 않게 느꼈을 테지만, 심지어 러시아는 북한과도 이어지는 아주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다. 혹 거리를 생각하지 않더라도 핵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에서 섣불리 전쟁을 시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온몸이 떨리게 무서운 상황이지 않은가. 모든 전쟁이 그렇겠지만 민간인 피해자, 특히 노약자들의 피해가 보도될 때마다 나라와 이념을 떠나 한마음으로 애달프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러한 와중에서도 교육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는 우크라이나의 교사들이 각자 휴대폰을 이용해 영상으로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을 보며, 상상할 수도 없는 공포 속에도 희망은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아이들 또한 그 순간만큼은 잠시 전쟁이라는 상황을 잊고 각자에 학업에 매진할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과거 우리가 겪었던, 비슷한 상황만 보더라도 어느 상황에서나 미래를 위한 아이들의 교육과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는 것만큼 중요한 일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와 더불어 정말 충격적인 소식도 함께 접하게 되었다.
바로 러시아의 애국 교육 ‘Z’프로젝트라는 것이었다. ‘Z’는 러시아 제국주의의 새로운 상징물로 알려져 있으며, 러시아군의 표식이기도 하다. 최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부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Z 애국 교육’을 펼치고 있는데, 미국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세르게이 크라브초프 러시아 교육부 장관이 지난 3일 500만명 이상의 학생들이 ‘평화의 수호자’라는 수업을 이수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앞서 러시아 교육부 장관은 서방의 정보전·심리전에 대항하는 중심 기지로 학교를 꼽은 바 있다고 한다. 여기서 말한 ‘평화의 수호자’ 수업은 정부 제작 수업 자료 중 하나로, 주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역설한 우크라이나 역사와 수정주의 이론 등이 주 내용이라고 한다. 해당 자료에는 우크라이나가 실제로 국가로 존재한 적이 없는 말로로시야(소 러시아)로 불리는 작은 땅이라는 내용과 함게 우크라이는 소련이 만들었고, 크림반도는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 우연히 우크라이나에 넘어갔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고 한다.
즉 그들이 가르치는 애국 교육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처음부터 국가로서 존재했던 영토가 아니며, 자국의 이론에 따라 침공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내용인 것이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세뇌와 같은 방식의 교육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일인가! 더군다나 사실을 기반으로 한 내용도 이니며 침략의 정당화라니! 러시아의 일부 지도자들은 이제 본인들의 잘못을 떠나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까지 위협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렇게 보면 전쟁이 참담한 것은 단지 피해자에 국한되어 있지 만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제 우리는 전시 상황에 살아가고 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선전물, 거짓 정보 등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각자 옳은 판단을 내리기가 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도 아이들에게 현재의 난국을 헤쳐 나갈 지혜를 가르쳐 주고 싶다면, 아마 가장 진실에 가까운 질문과 대답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기록에서도 전쟁을 일으킨 쪽이 영원히 승자로 남은 역사는 없었다. 부디 이 전쟁이 평화적인 방법으로 하루빨리 종식되기를, 무엇보다 몸과 마음에 상처로만 남을 희생자들이 더 늘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칼럼니스트 여상미는 이화여자대학교 언론홍보학 석사를 수료했고 아이의 엄마가 되기 전까지 언론기관과 기업 등에서 주로 시사·교양 부문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은 아이와 함께 세상에 다시 태어난 심정으로 육아의 모든 것을 온몸으로 부딪히며 배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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