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악, 아주머니, 제발 그만해요!’ 화면 안으로 들어가 밍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뜯어말리고 싶었다. 밍은 열세 살 소녀 메이의 엄마. 딸 메이가 혼자 낙서한 노트에서 동네 마트 알바생 데번과 메이가 하트를 내뿜으며 포옹하고 있는 그림을 발견한다. 이 남자애가 너한테 이런 짓을 한 거냐면서 그 길로 밍은 마트로 달려가 데번에게 호통을 친다. “순진한 내 딸 건드리지 마!”
나까지 얼굴이 빨개지고, 수치스러웠다. 아아 아주머니 왜 그러세요. 당신 딸은 다음날 무슨 낯으로 학교에 가라고요. 또래 집단에서 친구들에게 인정받는 것, 아니 인정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창피 당하지 않는 것이 그 나이 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저렇게 아이들의 영역을 마구 파헤치고 들어가 침범하다니. 나는 메이에게 한껏 감정을 이입했다.
‘메이의 새빨간 비밀’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거대한 레서 판다로 변하는 가문의 저주에 걸린 중국계 캐나다인 소녀 메이의 이야기다. 이 저주를 풀려면 가문의 전통 의식을 치러야 하는데, 그 의식의 날짜가 메이가 사랑해 마지않는 아이돌 ‘포타운’의 콘서트 날과 겹치면서 모녀간 전쟁이 벌어진다. 공부도 잘하고, 집안일도 잘 돕고, 부모 뜻을 거스른 적이 없는 모범생 메이는 13년 평생 처음으로 엄마에게 반기를 든다. 딸을 어떻게든 보호하려는 엄마 밍과 아이돌 콘서트 관람을 사수해야 하는 딸 메이의 정면 대결!
영화는 내내 유머가 넘치고,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나는 메이의 엄마 밍이 메이를 과보호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짜증이 났다. 웃자고 만든 영화에 진지하게 달려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부정할 수 없이, 밍을 보면 사춘기 시절 나의 엄마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엄마는 ‘사막에 원숭이, 뱀, 새와 함께 가야 한다면 어떻게 동행하겠는가’라는 심리 테스트에서 “새는 날아가 버릴지도 모르니까 새 발에 끈을 묶어서 안전하게 데리고 가야지”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그 심리 테스트에서 사막은 인생, 새는 자식을 상징했다. 나는 엄마의 대답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엄마가 날 키웠던 방식이잖아! 엄마는 밍처럼 딸의 선정적인(?) 낙서를 보고 바로 차를 마트로 몰아갈 만한 행동력은 없었지만, ‘딸을 구속하지 말아야지!’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면서 ‘구속하려고’ 내 뒤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다 티가 나는 양육자였다.
메이에게 아이돌 ‘포타운’이 있었다면, 사춘기 시절 나는 가수 이적이 속해 있던 ‘패닉’의 광팬이었다. 패닉의 소극장 콘서트 예매 날짜만 기다리고 있던 중에, 공연에 다녀오라고 흔쾌히 허락했던 엄마가 말했다. “나도 같이 가면 안 돼? 나도 궁금해.” 울며 겨자 먹기로 같이 가서 콘서트를 관람했다. 극장 내에 중년 여성은 엄마뿐이었고, 콘서트를 그다지 즐기는 것 같지 않아 보였던 엄마는 공연이 끝나고 말했다. “위험할 줄 알고 따라왔는데, 아니네.”
한 마디로 대격돌을 피할 수 없는 메이와 밍과는 달리, 우리는 은은하게 구속하려는 엄마와 이에 대응하여 잔잔하게 짜증을 내는 딸의 조합이었다. 그런데 사춘기 시절을 지나도 한참 지난 40대 한국 여성인 내가, 이민 1세 중국계 캐나다인 엄마 밍 캐릭터에 이토록 분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부정할 수 없이, 내가 우리 딸에게 밍 같은 엄마, 내 친정 엄마 같은 엄마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 없이 가는 곳이라곤 어린이집밖에 없는 네 살 딸 아이를 두고도 이렇게 작고, 소중하고, 부서질 것 같고, 깨질 것 같아서 안절부절 못하는데, 나중에 커서 혼자 학교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어딜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디든지 쏘다니고 다닐 청소년이 되면 나는 그 걱정을 어떻게 다루면서 살아야 하나.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되기 싫은데 결국엔 우리 엄마 같은 엄마가 될 것 같다. 이 질기고 질긴 밧줄을 어떻게 끊어야 하나!
초보 엄마가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영화를 보는 동안, 영화 속의 밍과 메이는 육탄전을 벌인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히는 못 쓰지만, 진짜 ‘몸을 총알 삼아 적진에 뛰어드는 전투’ 육탄전이다.) 한바탕 격렬한 싸움을 마치고 밍은 말한다. “네가 더 멀리 날아갈수록 엄마는 더 자랑스러울 거야.” 이 영화는 실제로 이민 2세인 도미 시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인데, 이 영화의 제작 과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판다를 안아줘’에서 감독은 말한다. 사춘기란 통제 불가능한 자기 안의 야수(레서 판다)와 싸워야 하는 때라고.
딸의 사춘기는 너무 머나먼 일이지만, 그때 분명히 괴로워 할 미래의 나를 위해 미리 써 둔다. 딸이 멀리 날아갈수록 엄마는 자랑스럽다고. 가장 혼란스러운 건 엄마인 내가 아니라, 자기 안의 야수와 싸우며 사춘기를 통과해야 하는 딸이라고.
쿨한 엄마처럼 멋지게 써 본다. 소녀는 반항하며 자란다. 그리고 세속적인 엄마의 관점에서 솔직히 다시 쓴다. 반항하며 엄마 속을 태우던 소녀가 자신의 알 껍질을 부수고 저렇게 멋진 감독이 되다니, 감독님 어머니 너무 좋으시겠어요!
*칼럼니스트 최가을은 구 난임인, 현 남매 쌍둥이를 둔 워킹맘이다. 아이들을 재우고 휴대전화로 영화를 본다. 난임 고군분투기 「결혼하면 애는 그냥 생기는 줄 알았는데」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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