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가정 밖 청소년들의 홀로서기
폭력을 피해 집을 나온 가정 밖 청소년들의 홀로서기
  • 기고=정수빈
  • 승인 2022.05.23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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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품다] 12. 시설 퇴소 자립준비청년 정수빈(가명) 님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이 커지는 현재, 보호대상아동 및 보호종료아동에 대한 관심은 더욱 높아져야 할 것입니다. 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세상이 함께 키워가야 할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고자 하는 마음을 담아 ‘세상이 품다’ 연속 특별기고를 마련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아이들과 학부모, 전문가들과 함께 아동자립역량강화를 위한 글을 전해드립니다. - 편집자 말

남자중장기쉼터의 청소년들이 자립준비의 일환으로 바리스타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남자중장기쉼터의 청소년들이 자립준비의 일환으로 바리스타 교육에 참여하고 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단기 쉼터로 생존형 가출을 한 아이가 있다. 단기 쉼터에서의 생활이 길어져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남자중장기쉼터로 이관됐다. 그곳에서 3년간의 생활은 의와 식이 다양하게 지원되고 잠자리도 편안해 생활하기 좋았다. 하지만 성인이 된 아이는 더 이상 쉼터에서 지낼 수 없었다. 퇴소와 함께 보호가 종료되는 가정 밖 청소년인 이 아이의 홀로서기에는 오로지 쉼터에서 모아둔 후원금과 자신뿐이었다. 쉼터를 퇴소하는 가정 밖 청소년에게는 일반 보육 시설을 퇴소하는 청소년에게 주어지는 자립정착금이 지원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주인공, ‘아이’는 바로 나 자신이다. 쉼터 퇴소를 앞두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던 중 LH 주거지원 제도를 알게 되었고, 쉼터 퇴소 청소년의 건강한 자립을 지원하는 ‘자립지원관’이라는 기관을 알게 되어 한시름 걱정을 놓을 수 있었다. 조건에 맞춰 얼른 주거지원을 신청했고, 계약하기 전까지 쉼터에서 운영하는 자립훈련공간에서 음식 만들기, 빨래, 청소 등 자립 필수 요소들을 훈련하면서 홀로서기를 준비했다. 드디어 계약을 하고 집에 들어가는 날이 돌아왔다. 비록 나의 소유는 아니지만 나만의 공간이 생겨 기쁘고 뿌듯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잠시였다. 만 20세 이하이기에 LH 주거지원의 이자(월세)는 면제되었지만, 뒤따라오는 관리비, 식비, 생활비, 휴대폰 요금 등의 부담은 마냥 즐거울 수 없었다.

시설을 퇴소하는 아동에게는 자립정착금이 지원된다. 2022년 발표된 ‘보호종료아동 지원강화 방안’에 따라 기존 500만 원이던 자립정착금 지원을 최대 1500만 원까지 지원하는 지자체도 생겼다. 자립에 필수적인 두 가지 요소, ‘독립된 주거’와 ‘취업을 통한 생계유지 가능’ 두 가지 중 자립정착금은 ‘주거’라는 걱정을 해소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여전히 가정 밖 청소년에게는 자립정착금이 주어지지 않는다.

또한 자립을 앞두고 사회생활을 준비하고 있는 쉼터 퇴소 청소년들에게는 형제나 부모를 대신해 정보를 주고 세상을 가르쳐주는 어른이나 멘토가 여전히 필요하다. 쉼터에 거주하는 대부분의 청소년은 가정에서 학대를 겪어 사회와 소통하는 일에 위축되거나 어려움을 느낀다. 물론 누구나 어려움을 극복하며 인생을 살아가지만, 사회적 능력을 회복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지해 주고 정보를 주는 선배나 어른이 있다면 쉼터 퇴소 후의 사회생활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집을 구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하면서 나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됐다. 주방 보조로 일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또래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윗사람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이 쉽지 않았다. 부모님의 지지를 받으며 자립하는 것이 아니라 만 18세가 되면 즉시 ‘어른’이 되어 나 자신을 부양해야 하는 자립준비청년들은 늘 생각해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돈은 얼마나 모을 수 있는지, 내가 가진 돈을 어떻게 분배해서 효율적으로 사용할 것인지 등 자립 이후의 가장 현실적인 고민부터 배운 적 없는 인간관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의 가치를 얼마나 증명할 수 있는지, 나의 목표와 꿈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지 인생 설계에 대한 고민도 다 본인의 몫이다.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미정인 것이 많고, 해답을 찾지 못해 계속 풀어가고 있다.

때로는 질문 자체가 버겁고 힘들어 아직 풀지 못한 것들이 많지만 많은 어른들의 도움과 관심으로 여기까지 왔다. 항상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을 위해 고생하는 쉼터 선생님들과 후원자들의 지원 등 가정 밖 청소년들을 향한 사회의 응원과 관심은 쉼터를 퇴소하고 자립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가정 밖 청소년들이 학대와 가정불화 등으로 생긴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고, 시설을 퇴소하며 어엿한 성인으로 자리를 잡으며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을 때까지, 심리적 지지와 사회생활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도록 정책과 제도가 조금 더 보완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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