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아이의 중학교 졸업... 이제는 함께 버티는 시간
큰아이의 중학교 졸업... 이제는 함께 버티는 시간
  • 칼럼니스트 최은경
  • 승인 2023.01.11 0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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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육아] 큰아이 중학교 졸업에 부쳐

코로나 이전에는 늘 연말이면 가족 모임을 해 온 조리원 동기 O가 있었다. 남자들의 군대동기만큼이나 끈끈하다는 엄마들의 조리원 동기, 일명 ‘조동’. 그와의 인연은 올해 아이들이 예비고1이니 무려 16년의 세월이다.

코로나 때문에 서로 조심하는 차원에서 연말 모임을 계속 하지 못하다가, 2022년 마지막 날 조촐하게 밥이나 한 끼 하자며 집에 오라고 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초등학교 교사인 O가 그날(토요일)도 학교에서 일을 하고 왔다는 말을 들었다.

“응? 곧 방학인데 그렇게 일이 많아?”

“아, 딴 게 아니고 우리 반 학급 문집을 만드는데 자잘하게 해야 할 일들이 좀 있어.”

‘아, 학급 문집. 그래 그거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친구의 남편(역시 교사)이 말을 거든다.

“뭐 이렇게 열심히 해도 학교에서 크게 알아주지도 않는데 그렇게 열심히 해요. 오늘 다 못해서 내일도 학교에 가서 해야 한다고.”

“내일? 1월 1일 쉬는 날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O를 바라봤다. 그 옆에서 내 남편은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게 된 썰을 풀며 이렇게 말했다.

“열심히 하는 것을 당연하게 아는 분위기, 알아주지도 않는 회사 분위기 때문에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일 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고 O가 말하길, 

“회사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아니 학교도 그래요. 선생들이나 교장, 교감이 알아주는 것도 없고요. 근데, 제가 열심히 하면 아이들은 알더라고요. 그래서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아하, 그 기분 나도 알지. 회사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 말고, 상사 말고,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알아줄 때의 기쁨, 희열, 보람 같은 그 벅찬 감정들 말이다. 남편처럼 나도 회사에 기대할 게 별로 없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런 나의 태도에 변화가 생긴 건 내가 검토하는 글을 쓴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가 기사 하나를 꼼꼼하게 볼 때마다 회사 사람은 아무도 몰라도 그 글을 쓴 사람들은 내 수고를 알아주었다. 문장을 고치고, 문단을 나누고, 소제목을 뽑고,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더 읽힐 만한 제목을 뽑는 과정이 전혀 무용하지 않음을 알게 해 준 사람들. 소소한 나의 노력을 알아봐 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니 나도 O처럼 소홀할 수 없었다. 어쨌거나 일하는 동안은 내 일이 나를 말해주는 것이므로. 조리원 동기도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몸은 힘들지 모르겠지만 아이들이 좋아할 것을 알기에 주말에도 기꺼이 기쁘게 나섰으리라.

큰아이의 중학교 졸업식 꽃다발. ⓒ최은경
큰아이의 중학교 졸업식 꽃다발. ⓒ최은경

이렇듯 O와 내가 직장맘으로서 긴 시간 동안 일의 기쁨을 조금씩 알아가며(물론 그렇지 않은 일의 슬픔도 비일비재하지만) 육아하며 살림하는 동안 아이들은 쑥쑥 커서 최근 중학교를 졸업했다(시간이 참...). 그 과정이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예비고1이 되기까지 어린이집(or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마다 엄마들도 그 시기를 용케도 잘 넘겼다. 몸이 힘든 시절에서 정신이 힘든 시절로, 그리고 이제는 함께 버티는 시절로 건너왔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내가 '버티는 시간'이라고 한 건, 한국 사회에서 고등학교 학생들의 생활이 녹록지 않음을 넘치도록 많이 들어서다. 바라건대 지칠 때면 엄마를 떠올려 봐도 좋겠다. 해야 할 일들 앞에서 지치고 힘든 적은 많았어도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으니까. 어디서든 희망과 의미를 찾아냈으니까. 일에서도 육아에서도. 

몸과 마음이 힘든 가운데서도 일하는 기쁨을 하나씩 알아가고 또 잘 자라주는 아이들을 보며 그 시간을 버티었듯, 내 아이도 고등학교 생활을 버텨낼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되었으면. 친구와의 우정이 되었든 동아리가 되었든 취미가 되었든 덕질이 되었든 좋은 스승이든 공부라는 험로에서 잠시 비켜설 수 있는 우산 같은 무엇이 있다면 덜 고달플 테니까.

*칼럼니스트 최은경은 오마이뉴스 기자로, 두 딸을 키우는 직장맘입니다.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 연재기사를 모아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성에 대해 아는 것부터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서 성교육 전문가에게 질문한 성교육 책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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